항목 ID | GC077009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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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孝子林命楫旌閭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어진동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고순영 |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나성동에 있었던 임명즙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
[개설]
효자 임명즙 정려는 임명즙(林命楫)[1744~1808]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871년(고종 8)에 세워졌다. 임명즙은 본관이 부안(扶安)이고, 자는 백섭(伯涉)이다. 1774년(영조 20) 임종유(林宗儒)와 전주이씨 사이에서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남달리 효성이 지극하였다고 전해지는 임명즙은 조부가 병환으로 눕게 되자 어린 나이에도 곁을 떠나지 않고 4년 동안이나 간호하였다고 한다. 임명즙은 어린 나이에 어버이가 늙어서 과거 공부를 사양하고 오직 부모님 돌보기에만 마음을 다하였다. 두 아우와도 우애가 깊어 집안 재산을 분간하지 않고 부모를 기쁘게 모셨다. 소에 부모가 집안 노비에 이르기까지 모두 자애롭게 돌보았기 때문에 임명즙 역시 부모의 뜻을 따라 실한 자가 있으면 의복 등을 후하게 주었다. 1783년(정조 7년)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출상을 하는데 상여가 지나가는 길에 그의 효성으로 인하여 신이(神異)[신기하고 이상함]한 일이 일어났다고 한다.
수년 후 어머니의 팔꿈치에 단독(丹毒)이 생겼으나 백약이 무효였다. 이때도 하늘이 기도를 들어 주었는지 어느 날 갑자기 약이 되는 솔개의 깃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어머니가 거동할 수 없게 되자 항상 곁에서 시중하였고, 모친의 속옷을 빨고 변기를 비우는 일까지 직접 하는 등 주변 사람들을 수고롭게 하지 않고자 하였다. 1803년(순조 3) 모친이 세상을 떠나니 임명즙은 날마다 애통해 하면서 식음을 전폐하고 호곡하였다. 매년 기일에는 마치 상을 당한 것처럼 슬퍼하여 갈수록 몸이 쇠약해져 모친이 세상을 떠난 지 5년 뒤인 1808년(순조 8)에 64세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부인 보성오씨(寶城吳氏)와의 사이에 둔 4남도 모두 효자였다.
[위치]
효자 임명즙 정려는 옛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 나성리에 있었으나 세종특별자치시 개발로 현재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해체 보관 중이다.
[변천]
임명즙은 1808년(순조 8)에 죽었으나 명정을 받은 것은 63년 후로, 사후에 어떤 포장 작업이 이루어졌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그의 묘갈명에 의하면 죽은 후 61년 만인 1869년(고종 6)에 호서 선비들이 임명즙의 효행을 관찰사를 통하여 상언(上言)[백성이 임금에게 글을 올리던 일]하였다고 한다. 1868년(고종 5) 7월에 ‘서림거사임공명즙효행장록통문(書林居士林公命楫孝行狀錄通文)’이 작성되었고, ‘서림거사임공명즙효행장록통문’을 기반으로 진사 김용현(金龍鉉)이 상서를 올리고 1871년(고종 8) 조정에서 ‘통정대부승정원좌승지경연참찬관(通政大夫丞政院左丞旨經筵參贊官)’을 증직하고 정문을 내렸다.『부안임씨전서공파문헌록(扶安林氏典書公派文獻錄)』에 임명즙의 효행 기록이 남아 있다.
효자 임명즙 정려의 중수는 1906년 5대손인 임동수에 의해 이루어졌다. 정려각 내에 걸려 있는 중수기 현판에 의하면 중수 직전에 효자 임명즙 정려가 너무 오래되어 건물이 넘어갈 우려가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수리를 계획하였고, 토목(土木) 및 와석(瓦石)[기와와 돌]을 준비해 수리를 마치니 예전에 초가이던 것이 새롭게 완비되었다고 한다. 그 후로도 몇 차례의 중수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자세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형태]
효자 임명즙 정려가 해체되기 전에는 정면 1칸 측면 1칸의 겹처마에 맞배지붕을 한 건물로, 화강석재를 가공한 방형 기단 위에 축조하였다. 8각의 높은 주초석(柱礎石) 위에 둥근 나무기둥을 올렸으며, 효자 임명즙 정려의 아랫부분은 벽돌을 쌓아 막아 놓았다. 4면에 홍살을 돌렸으며 양 측면의 박공 밑에는 방풍판을 설치하였다.
[현황]
효자 임명즙 정려가 해체되기 전 정려각의 내부 중앙에는 말각 장방형의 화강석 대좌 위 호패형 비석과 1906년 5대손 임동수가 기(記)한 중수기 현판이 걸려 있었다. 효자 임명즙 정려는 2014년 9월 30일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13호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효자 임명즙 정려는 어릴 때부터 조부와 부모에게 지극한 효심을 실천하여 주변의 칭송을 받은 임명즙의 효행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 많은 사람에게 모범 사례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