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6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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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益精 |
영어공식명칭 | Kim Ikjeong |
이칭/별칭 | 운암,문비,복창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상호 |
활동 시기/일시 | 1396년(태조 5) - 김익정 식년문과에 장원 급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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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422년(세종 4) - 김익정 승정원지신사가 됨 |
활동 시기/일시 | 1425년(세종 7) - 김익정 대사헌을 지냄 |
활동 시기/일시 | 1431년(세종 13) - 김익정 이조참판|형조참판을 지냄 |
몰년 시기/일시 | 1449년(세종 31) - 김익정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820년 - 후손 김사준 사망 후 김익정|김사준 쌍효정려 건립 및 중수 |
출생지 | 김익정 출생지 - 경기도 개성군 송도면 |
묘소|단소 | 김익정 묘소 - 경기도 양주군 고령사 서남쪽 400m |
사당|배향지 | 안동김씨 쌍효 정려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양곡리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안동 |
[정의]
조선 전기 세종 지역 출신의 문신이자 효자.
[개설]
김익정(金益精)[?~1436]의 자는 문비(文斐), 호는 운암(雲庵)이다. 경기도 개성군 송도면에서 태어난 김익정은 1396년(태조 5) 식년문과에 장원 급제한 뒤 삼사의 요직을 역임하였다. 태종의 의중을 잘 알아 세종의 치세를 준비하였다. 성종조에 좌리공신(佐理功臣)으로 복창군(福昌君)에 봉하여졌다.
[가계]
김익정은 김휴(金休)의 아들이며,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활동 사항]
김익정은 문과에 장원하여 관직에 올라 습유(拾遺)·헌납(獻納)·사간(司諫)을 역임하고 대사헌의 직을 맡고 있던 중 노친을 모시기 위하여 잠시 관직에서 물러났다. 부모가 사망하자 6년간을 시묘하였다. 태종의 부름을 받고 다시 정계에 진출하여 동지총제와 경창부윤을 거쳐 충청·전라·경기의 관찰사를 지냈다. 다시 내직으로 돌아와 1422년에는 승정원지신사(承政院知申事)가 되어 군정(軍政) 확립을 건의하였다. 1425년에는 대사헌, 1431년에는 이조참판과 형조참판을 지냈다. 1435년(세종 17)에 경상관찰사에 제수되었으나 병으로 부임하지 못하였다.
[묘소]
김익정은 전의 지역을 떠나 벼슬길에 올랐기 때문에 묘는 경기도 양주군 고령사(高嶺寺) 서남쪽 400m 지점에 있었다. 그러다가 실전(失傳)[묘지나 고적 따위에 관련되어 전하여 오던 사실을 알 수 없게 됨]하여 전의면 양곡리 압실 마을에 단을 마련하였다.
[상훈과 추모]
김익정이 영월군수로 있을 때 청렴하고 흥학(興學)[교육 사업을 일으킴]에 공이 커서 지금까지도 칭송되며, 김익정의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송덕비가 세워져 있다. 김익정은 훈몽강학(訓蒙講學)[글을 가르치며 학문을 닦고 연구함]하였다. 김익정이 죽자 세조는 정문을 세울 것을 명하였다.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양곡리에 효자 김사준(金師俊)과 함께 안동김씨 쌍효 정려로서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16호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