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5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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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朔寧崔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윤윤희 |
입향 시기/일시 | 1600년대 - 최종적의 증손자 최계현의 출생년이 입향 최종 시기로 추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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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관|분종 시기/일시 | 1500년대 - 삭녕최씨 사직공파 |
본관 | 삭녕최씨 본관 - 강원도 철원군 |
입향지 | 삭녕최씨 입향지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유천리 |
세거|집성지 | 삭녕최씨 입향지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유천리 |
성씨 시조 | 최천로 |
입향 시조 | 최종적 |
[정의]
최천로를 시조로 하고 최종적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개설]
최천로(崔天老)를 시조로 하고 최종적(崔宗迪)을 입향조로 하는 삭녕최씨 사직공파(司直公派) 후손이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유천리에 입향한 이래 지금까지 살고 있다.
[연원]
시조 최천로는 고려 때 문하시랑 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를 지냈다. 후손 최유가(崔瑜價)는 벼슬이 추밀원 부사(樞密院副使)를 거쳐 참지정사(參知政事)와 문하시랑 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올랐다. 이후 최선보(崔善甫)를 1대조로 하는 낭장공파(郎將公派)와 최연(崔珚)을 1대조로 하는 부사공파(副使公派)로 분파되어 세계(世系)[조상으로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계통]를 이어 왔다.
[입향 경위]
전의면 유천리의 삭녕최씨 사직공파 후손들은 입향조를 최종적으로 여기고 있다. 최종적의 할아버지 묘는 경기도 화성시 남양에 있고 아버지와 동생의 묘는 청주시 문의면에 있지만 최종적의 묘는 전의면에 있기 때문이다. 또한 후손들은 최종적의 어머니와 동생의 부인이 경주이씨로 청주 지역에 있는 묘소가 경주이씨 종산(宗山)이라고 전해진다 한다. 이에 최종적의 선대는 용인에서 살다가 청주로 내려왔고, 최종적이 가까운 전의 지역에 터전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최종적의 증손자 최계현(崔啓鉉)[1759~?]은 무과에 급제하여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와 훈련원 주부(訓鍊院主簿)를 거쳐 영덕현감(盈德縣監)을 지냈다.
[현황]
전의면 유천리의 삭녕최씨는 1988년 12가구가 거주한 것으로 확인된다.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연기군의 삭녕최씨는 1985년에는 16가구 56명, 2000년에는 12가구 39명이다. 2015년 세종특별자치시의 삭녕최씨는 148명이다
[관련 유적]
전의면 유천리 입향조 최종적이 살던 곳을 영성뜰이라고 한다. 영성뜰은 삭녕최씨 낭장공파 5세손으로 조선 전기에 영의정을 지낸 영성부원군(寧城府院君) 최항(崔恒)에서 유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