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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여지도』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484
한자 大東輿地圖
영어공식명칭 Daedongyeojido
분야 지리/인문 지리,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문서
지역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집필자 이경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작성 시기/일시 1861년(철종 12) - 『대동여지도』 편찬 및 간행
관련 사항 시기/일시 1864년(고종 1) - 『대동여지도』 재간
문화재 지정 일시 1985년 8월 9일 - 대동여지도(1985) 보물 850-1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02년 12월 7일 - 대동여지도(2002) 보물 850-2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08년 12월 22일 - 대동여지도(2008) 보물 850-3호 지정
성격 지도첩
관련 인물 김정호
문화재 지정 번호 보물[대동여지도(1985)|대동여지도(2002)|대동여지도(2008)]

[정의]

1861년 김정호가 편찬·간행한 분첩절첩식 전국 지도첩 중 세종 지역 관련 내용.

[편찬경위]

김정호(金正浩)는 1834년(순조 34) 그의 첫 번째 역작인 『청구도』 2책을 제작한 후 1840년대까지 이용의 편리에 초점을 맞춰 3번에 걸쳐 개정판 『청구도』를 지속적으로 제작하였다.

1850년대에는 분량이 적어 휴대와 이동에 편리한 『청구도』의 책 형식을 버리고 동서와 남북의 이어 보기에 초점을 맞춘 병풍식 또는 절첩식 형식을 채택하여 『대동여지도』 18첩부터 산줄기, 물줄기, 해안선, 지명의 위치 등 기본 정보의 대대적인 교정을 하였다. 필사본의 『동여도』 23첩(帖)에서 절정에 달한다.

[서지적 사항]

일반적으로 호칭되는 목판본의 『대동여지도』 22첩은 조선 후기의 지리학자 김정호가 1861년에 편찬·간행하고 1864년에 재간한 22첩의 병풍식 또는 절첩식의 전국 지도첩이다.

1861년에 간행되어 성신여자대학교 박물관과 서울역사박물관에 소장된 1본과 2본이 각각 보물 850-1호 및 보물 850-2호로 지정되고, 1864년에 간행되어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된 것이 보물 850-3호로 지정되었다.

목판본 『대동여지도』 22첩은 우리나라 전체를 남북 120리 22층, 동서 80리 간격으로 각각 나누고 19판(版)으로 각 층에 해당하는 지역의 지도를 각 1권의 책으로 접어서 엮었다.

1첩 한 면의 남북 길이가 약 30㎝이기 때문에 22첩을 모두 연결하면 세로 약 6.6m, 가로 4.0m에 이르는 초대형 조선 전도가 된다.

책으로 제본된 이전 시기의 지도와 달리 첩을 펼쳐서 상하·좌우로 연결시켜 볼 수 있도록 고안된 지도라는 특수성이 있다.

[내용]

『대동여지도』에는 세종 지역과 그 주변 지역의 교통·통신 조직이 나타나 있다. 『청구도』와 다르게 곡선의 길은 직선화되어 역(驛)은 중요 도로에 약 30리 간격으로 설치되었고, 말과 역졸(驛卒)을 두어 공문을 전달하는 이외에 공무 여행자에게 말을 제공하고 숙식을 알선하였으며, 그 밖에 관물(官物)[정부나 관청 소유의 물건] 수송도 담당하였다.

세종 지역 및 인근의 역[⦶:역을 나타낸 기호]으로는 금사역[연기], 광정역, 일산역[이상 천안-공주 간], 장명역[전의-청주 간], 저산역[연기-청주 간] 등이 나타나 있다. 원(院)은 공무로 출장하는 관리의 편의를 위하여 역로(驛路)에 설치한 숙박 시설이다. 세종 지역 인근의 원(院)으로는 인제원, 궁원, 모로원[이상 천안-공주 간] 등이 그려져 있다.

『대동여지도』에는 연기대첩의 승전지인 정좌산과 원수산이 그려져 있어 현재 위치 확인에 단서를 제공한다. 봉수대는 세종 지역에는 그려져 있지 않고 공주의 고등산 봉수대가 나타나 있다.

『대동여지도』에는 배가 드나들 수 있는 수로를 두 줄로 표기하고 있어 수로 교통로가 어느 정도 발달할 수 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육상 및 수로 교통로와 통신 조직을 통하여 조선시대 지방 제도 중 역원과 봉수 제도, 조운 제도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의의와 평가]

『대동여지도』 지도 제작 측면에서 볼 때 김정호의 궁극적인 목표는 많은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대중적인 지도책 제작이었다.

김정호의 희망은 지도 제작뿐만 아니라 이용과 교정 및 필사 부분까지 세밀하게 고려한 『청구도』에서부터 풍부하게 담겨 있으며, 한 번에 많이 찍어 낼 수 있는 목판본 『대동여지도』에서 가장 극명하게 실현되었다.

지도의 정확성도 중요하였지만 산맥의 분명한 표기에서 알 수 있듯이 김정호에게 더 중요한 것은 편리성이었다.

평면 위의 직선거리가 아니라 산 넘고 물 건너 구불구불 실제로 가는 거리 정보를 기초로 지도를 제작하였기 때문에 근대적인 삼각 측량이나 경위도 측정에 기초하여 제작된 근대 지도의 정확성에는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김정호의 지도에는 근대·현대의 대중적 지도책에 담겨 있는 아이디어가 거의 모두 담겨 있다. 이용 문제만을 고려한다면 『대동여지도』 22첩은 지도사적 가치로 보아 이미 근대를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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