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4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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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松亭里-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송정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백영종 |
건립 시기/일시 | 조선시대 - 가마터가 송정리 일대에 분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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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송정리 가마터 -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송정리 일대 |
성격 | 가마터 |
소유자 | 세종특별자치시 |
관리자 | 세종특별자치시 |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송정리 일대에 분포하는 조선시대 가마터.
[개설]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소재지에서 남서쪽으로 약 4.5㎞ 거리에 송정리 구리골 마을이 나오고, 구리골 마을의 북서쪽으로 송정리 솔치 마을로 넘어가는 곳에 ‘점고개’가 있다. 송정리 점고개 분청사기 가마터는 점고개의 상단부 도로 오른쪽 절개된 사면에 있다.
[위치]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송정리 일대에 분청사기 가마를 비롯하여 옹기 가마 등이 위치한 것으로 조사 및 보고되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90년 충청남도 연기군 의뢰로 고려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유적조사실과 공주대학교 박물관이 합동으로 가마터를 조사하였다. 충청남도 연기군 전동면 송정리 산28-2[현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송정리] 일대를 통과하는 도로 공사 중 유구 일부가 노출되어 긴급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현황]
송정리 분청사기 가마터 주변 지역은 기복이 가파른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남쪽이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는 곳으로 해발 약 150m에 있어서 요업에 필요한 입지 조건은 매우 양호한 것으로 판단된다. 조사를 통하여 확인된 가마터는 산사면을 중심축으로 하였을 때 약 20° 정도 비스듬히 조성되었다. 주변 지역의 조사에서도 같은 성격의 가마터가 다수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지표조사에서 수습된 유물은 인화분청사기가 주를 이룬다. 주로 사용된 문양은 단독국화문, 집단연권문, 여의두문이다. 흑상감된 조각도 일부 출토되어 주목받고 있다. 이밖에도 조사 전에 이 지역에서 수습되었다고 전해지는 명문접시가 있다. 접시 뒷면 굽 주위에 ‘관원해원주사영영(官員海員珠司永永)’이라 음각되어 있는 것도 있다. 이외에도 도침이 주로 여기저기서 발견되었다.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소재지에서 남서쪽으로 약 3.5㎞ 정도의 거리에 송정리 사장동 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남쪽에 있는 높이 167.7m의 산에서 북쪽 능선들 사이에 형성된 골짜기에 형성되어 있는 것으로, 송정리 사장골 옹기 가마는 이 마을 남쪽으로 길게 형성된 골짜기 안쪽에 위치한 양계장 뒤쪽 밭에서 확인되었다. 현재 가마터로 확인되는 곳의 주변은 밭으로 개간되거나 복숭아나무가 심어져 있어 전체적으로 삭평(削平)[깎아서 평평하게 함]되어 있는 상태이다. 유물 분포가 집중되어 있는 곳은 골짜기 끝나는 곳에 위치한 밭으로, 옹기편과 소토편이 흩어져서 발견되고 있다. 여기가 가마의 중심이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유물은 100여 평에 걸쳐서 흩어져 있었다. 가마는 이 일대에 1기 정도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가마터 주변에서 수습되는 유물로는 옹기 조각과 소토 조각이 있다.
[의의와 평가]
조사 과정에서 수습된 유물 가운데 안쪽 바닥에 ‘사선(司膳)’ 명이 흑상감된 조각이 있다. 15세기 초반에 왕실의 음식을 담당하던 ‘사선서(司膳署)’에 공납하던 물건으로, 제품의 질이 높았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