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3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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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錦江戰鬪 |
영어공식명칭 | Battle of Geumgang River |
이칭/별칭 | 대평리-공주지구 전투,금강 방어전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완호 |
[정의]
1950년 6·25전쟁 당시 금강에서 벌어진 전투.
[역사적 배경]
개미고개 전투 이후 조치원에서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던 미군은 금강 방어를 위하여 1950년 7월 12일 금강의 남쪽인 공주와 대평리[대평동]로 이동하였다. 미군은 금강을 건넌 후 금강의 다리들을 폭파하고 금강 남쪽 제방에서 포격 준비를 하였다.
[경과]
1950년 7월 13일 낮 미군 제24사단 제19연대는 제21연대로부터 대평리 부근의 진지를 인수하였다. 대평리는 북한군의 주 공격로로 예상되는 조치원과 대전을 잇는 국도의 길목에 위치하는 곳이었다. 제19연대 연대장 가이 멜로이 주니어 대령은 연대지휘소를 발산리에 두고 제1대대를 1선 방어, 제2대대를 제1대대 후방으로 각각 배치하였다. 제19연대를 지원하는 제52포병대대는 두만리, 제13포병대대와 제11포병대대는 안산리 부근에 진지를 구축하였다. 15일 금성교 서쪽 제방으로 진지를 확보하고 있던 B중대 3소대가 강 건너편의 나성리[나성동]로 적이 진입해서 도하하려는 것을 발견하였다. 또한 괴화산(槐花山)[201m]의 C중대 정면에서도 강을 건너려는 모습이 포착되어 화력으로 제압하였다. 그러나 16일 새벽 조명 지원 실수로 조명이 20여 분 꺼짐으로써 이 틈을 타 또다시 도하를 시도한 북한군의 공세를 막지 못하였다.
[결과]
7월 16일 밤 미군은 금강 방어에 실패함에 따라 대전 부근으로 후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