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617
한자 朴伯凝
영어공식명칭 Park Baekeung
이칭/별칭 혼원(混元),취죽헌(翠竹軒)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정윤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25년연표보기 - 박백응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55년 - 박백응 사마시 급제
활동 시기/일시 1564년 - 박백응 사헌부감찰 역임
활동 시기/일시 1567년 - 박백응 진원현감 역임
부임|활동지 진원현 - 전라남도 장성군
묘소|단소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해리 지도보기
사당|배향지 해촌서원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해리2길 50[해리 90-2]지도보기
성격 문인
성별
본관 무안(務安)
대표 관직 진원현감

[정의]

조선 전기 해남 출신의 문신.

[개설]

박백응(朴伯凝)[1525~?]은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공부하였으며 학행과 효행에도 뛰어나 해남의 육현(六賢) 중 한사람으로 존경받고 있다.

[가계]

박백응의 본관은 무안(務安)이며 자는 혼원(混元), 호는 취죽헌(翠竹軒)이다. 아버지는 기자전참봉(箕子殿參奉) 박안(朴晏)이며 어머니는 석천 임억령의 누이 선산임씨(善山林氏)이다.

[활동 사항]

박백응은 어려서부터 임억령 문하에서 성리학을 공부하였다. 박백응의 스승이자 외삼촌이기도 한 임억령은 박백응의 학문이 깊고 문장 또한 수려하여 경학에 탁월한 재능을 가졌다고 칭찬하였다고 한다.

박백응은 1555년(명종 10) 사마시에 급제하였다. 1564년 사헌부감찰을 역임하였고, 1567년에는 통훈대부에 오르고 진원현감(珍原縣監)에 제수되었다. 진원현감 재임 시에는 학교를 일으키고 충효를 강조했으며 세정에 영합하지 않고 덕으로 정치를 한 목민관이었음이 『진원읍지』에 기록되어 있다. 이후 벼슬에 뜻이 없어 낙향했으며 해남읍 해리에 부춘재(富春齋)라는 서재를 세우고 후학을 양성하였다. 1587년(선조 20) 10월 11일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박백응의 저서로는 『취죽헌유고』가 있었다고 하나 전하지 않으며, 「부춘재원운」이라는 시 한 편이 집안에 전해져 온다.

[묘소]

박백응의 묘소는 해남군 해남읍 해리 무안박씨 문중제각 옆에 있다.

[상훈과 추모]

박백응해남읍 해리 해촌서원(海村書院)에 배향되어 있다. 해촌서원에는 1922년 추배된 박백응을 비롯해 최부(崔溥)·임억령(林億齡)·유희춘(柳希春)·윤구(尹衢)·윤선도(尹善道) 등 이른바 해남육현을 모시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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