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603
한자 邊協
영어공식명칭 Byeon Hyeop
이칭/별칭 화중(和中),남호(南湖),양정(襄靖)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정윤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28년연표보기 - 변협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48년 - 변협 무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555년 - 변협 해남현감 역임
몰년 시기/일시 1563년 - 변협 제주목사 역임
몰년 시기/일시 1587년 - 변협 전라우방어사 역임
특기 사항 시기/일시 1555년 5월 - 변협 을묘왜변 당시 해남현감으로 왜구를 격퇴함
특기 사항 시기/일시 1587년 - 변협 전라우방어사 재직 시 녹도·가리포를 침입한 왜구 격퇴
외가|처가 전라도 화순군 - 전라남도 화순군
부임|활동지 전라도 해남현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지도보기
부임|활동지 전라남도 장흥군 - 전라남도 장흥군
부임|활동지 평안북도 강계군 만포읍 - 평안북도 강계군 만포읍
부임|활동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묘소|단소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 산26-4 -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 산26-4
성격 무신
성별
본관 원주(原州)
대표 관직 해남현감|제주목사|전라도우방어사|공조판서

[정의]

조선 전기 해남현감을 역임한 무신.

[개설]

변협(邊協)[1528~1590]은 해남현감 재임 시 을묘왜변이 일어나자 군민들과 함께 해남읍성을 사수하였으며, 이후 전라우방어사(全羅右防禦使)로 있으면서 여러 차례 왜구를 격퇴하였다.

[가계]

변협의 본관은 원주(原州)이며 자는 화중(和中), 호는 남호(南湖)이다. 아버지는 중추부경력(中樞府經歷) 변계윤(邊季胤)이며, 어머니는 참판 최자반(崔子泮)의 딸 화순최씨(和順崔氏)이다.

[활동 사항]

변협은 1548년(명종 3) 무과에 급제한 뒤 선전관을 거쳐 1555년 해남현감으로 부임하였다. 1555년 5월 일본 대마도 해적들이 병선 60여 척을 이끌고 전라도에 쳐들어와 노략질을 한 을묘왜변(乙卯倭變)이 일어났다. 왜구는 달량진[현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을 함락하고 진격을 거듭하여 장흥부사 한온(韓蘊)과 강진병영의 병마절도사 원적(元積)을 죽이고 영암군수 이덕견(李德堅)을 사로잡았다. 또한 어란진과 진도의 금갑진(金甲鎭)도 점령하여 살인과 약탈을 거듭하였다. 그러나 해남읍성만은 현감 변협의 뛰어난 지략과 해남군민의 용맹으로 함락되지 않았다. 뒤늦게 이 소식을 들은 조정에서는 호조판서 이준경(李浚慶)을 도순찰사로 임명하여 전주부윤 이윤경(李潤慶)과 함께 나주에서 왜구를 격퇴하였다.

을묘왜변이 진압된 후 조정에서는 큰 공을 세운 이윤경을 전라감사로 승진시키고 해남현감 변협은 장흥부사로 승진 발령했으며, 해남읍성 수성의 공훈을 기리고자 지금의 해남군 청사인 동헌 앞에 소나무 한 그루[천연기념물 제430호 해남 성내리 수성송]를 심어 기념하였다.

변협은 1563년 만포첨사(滿浦僉使)를 지낸 뒤 이듬해 제주목사가 되었는데 1565년 문정왕후(文定王后)가 죽고 보우(普雨)가 제주도에 귀양을 오자 조정의 명에 따라 참살하였다. 1587년(선조 20) 전라우방어사가 되어 녹도(鹿島)·가리포의 왜구를 격퇴하였으며, 그 뒤 공조판서 겸 도총관과 포도대장을 역임하였다. 변협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2년 전인 1590년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변협은 파주목사로 재직할 때 율곡(栗谷) 이이(李珥)[1536-1584]에게 『주역(周易)』 「계몽」 편을 강론받았으며, 천문·지리·산수에도 정통하였다.

[묘소]

변협의 묘소는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 산26-4번지에 있다. 부인인 정경부인 화순최씨와 합장묘이다.

[상훈과 추모]

변협은 사망한 뒤 좌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양정(襄靖)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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