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5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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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海南孟津里巖刻埋香碑 |
영어공식명칭 | Site of Maehyang Rock Engraving in Haenam Maengjinri |
이칭/별칭 | 매향 암각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 맹진리 산96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희태 |
건립 시기/일시 | 1406년 - 해남맹진리암각매향비 암각 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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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82년 8월 5일 - 해남맹진리암각매향비 발견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8년 12월 21일 - 해남맹진리암각매향비 전라남도 기념물 제137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해남맹진리암각매향비 전라남도 기념물로 재지정 |
현 소재지 | 해남맹진리암각매향비 - 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 맹진리 산96 |
원소재지 | 해남맹진리암각매향비 - 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 맹진리 산96 |
성격 | 매향 암각문 |
양식 | 바위에 음각 |
관련 인물 | 법각(法覺)|혜관(惠觀) |
재질 | 화강암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75㎝[높이]|75㎝[너비] |
소유자 | 국유 |
관리자 | 해남군수 |
문화재 지정 번호 | 전라남도 기념물 |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 맹진리에 있는 조선 초기 죽산현의 향도와 주민들이 매향 의식을 행하고 새긴 암각 비문.
[개설]
해남맹진리암각매향비는 해남 맹진리 만대산 장군바위에 있는 조선시대 초기 1406년에 세운 매향 암각비이다. 매향비 또는 매향 암각은 매향을 하면서 매향 연유와 시기, 장소, 관련된 사람이나 집단을 기록하는 기록물을 말하는데 돌 비석이나 바위에 새기는 형태로 남아 있다. 매향(埋香)은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에 향을 묻는 민간 불교 의식을 말한다. 미륵 신앙의 한 형태로 알려져 있는데, 매향을 매개체로 하여 발원자(發願者)가 미륵불(彌勒佛)과 연결되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순수 민간 신앙 형태로도 나타나며 주로 사회 혼란기에 많이 시행되었고 미래 구복적인 성향이 강하다.
해남맹진리암각매향비는 1982년 8월 5일 발견되었고, 이해준[당시 목포대학교 사학과 교수]이 확인하고 조사에 황도훈[해남 향토사가], 이태진[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조원래[순천대학교 사학과 교수], 이준곤[목포해양대학교 교수] 등이 참여하였다. 1988년 12월 21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137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남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건립 경위]
해남맹진리암각매향비는 1406년 죽산현의 미타향도(彌陀香徒) 58명과 상당(上堂) 주민들이 함께 모여 매향 의식을 행하고 기록한 것이다. 법각(法覺)의 주관 아래 혜관(惠觀) 등이 참여하였다. 죽산현은 현재의 해남군 마산면 일원에 있던 고려시대 고을 이름으로, 조선시대 초기에 해남에 합쳐졌다.
[위치]
해남맹진리암각매향비는 해남군 마산면 맹진리 만대산(萬垈山)[해발 480m] 북서쪽 능선에 있는 속칭 장군바위에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장군바위에는 예로부터 군량미 수천 석에 이르는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전설이 전하고 있다.
[형태]
해남맹진리암각매향비는 장군바위의 뒷편 작은 틈 사이[윗부분 너비 50~60㎝, 아랫부분 너비 130㎝ 정도] 70도 정도 내경화된 화강암 바위에 새겨져 있다.
[금석문]
해남맹진리암각매향비의 원문은 해서(楷書)체 10행 58자이다. 처음에 59자로 알려졌으나 교감을 통하여 58자로 보게 되었다. 원문과 풀이문은 다음과 같다. “죽산현(竹山縣) 동촌(東村) 좌구포(座具浦)에 향을 묻어 두었다. 미타향도(弥陀香徒) 58, 상당(上堂)과 일백 천인이 함께 발원하여 비문을 만들고 영락(永樂) 4년(1406, 태종 6) 병술년 3월 23일에 비를 세운다. 주관은 법각(法覺因)이고 연화(緣化)는 혜관(惠觀), 소명(小明)이다. 500보 거리이다[竹山縣東/村座具浦/埋香置弥陀香/徒五十八上堂一百/千人同發願碑文/永樂四年丙戌三月/二十三日立碑/主法覺因緣化/惠觀等衆小明/五百步].”
[현황]
해남맹진리암각매향비의 비문에는 매향처, 참여자[일반인]와 조직, 연대, 참여자[승려], 매향처와의 거리를 기록하고 있다. 글자 크기는 4~6㎝이다. 매향 기록에 있는 향도의 숫자로 조직의 규모를 알 수 있다. 그리고 향도와 상당마을 주민 일백인과의 상호 관계에서 매향 의식이 순수 민간 신앙 결사인 향도가 주도하였다는 점이 주목된다. 고려시대에는 향도 조직이 천여 명을 넘는 군현 전체적인 것이면서 행정 조직이나 불교와도 밀착되었다. 하지만 고려시대 말기와 조선시대 초기에는 자연촌을 중심으로 소규모 촌락 공동체적 성격으로 조직의 규모는 분화·축소되어 불교적인 본래의 기능은 퇴색되어 순수 민간 신앙 결사가 주도하게 된다. 해남맹진리암각매향비에 미타향도 58이라고 명시된 것은 아주 귀중한 사례이다. 전라남도 지방에는 7~8개소의 매향비[암각]가 발견되었는데 해남맹진리암각매향비의 상태가 가장 상태가 좋다.
[의의와 평가]
해남맹진리암각매향비는 조선시대 초기에 매향 의식을 행하고 새긴 기록 유산으로 발원자와 연대, 장소 등이 정확히 표기된 점, 신앙 주도 집단이 미타향도 58인으로 조직과 참여 인원을 알 수 있는 점, 왜구로 인해 극심한 피해를 당하는 혼란기에 구복적인 매향 의식이 성행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는 점 등에서 향촌 사회사, 민간 신앙사 연구에 있어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