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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C030103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삼덕리 1구 하덕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보은

[이장허구 노인회장했을 때 아주 멀미가 났어]

삼덕리 하덕마을에서 노인회장을 18년이나 역임했다는 김상근 할아버지는 88세지만 매우 정정한 모습이었다. 할아버지는 노인회장을 하기 전에는 이장도 오랫동안 했다면서 이장을 하면서 있었던 재밌는 이야기와 애로 사항을 들려주었다.

지금은 마을 이장들도 일정한 봉급을 받고 있지만, 할아버지가 이장을 맡아 보던 시절에는 그런 제도가 없었다고 한다.

“그때는 이장 봉급도 없어. 그냥 손님은 말여, 차가 없으니까 옛날에 자전거로 오는겨. 여기 오면 점심때여. 삼덕리 2구, 3구 거쳐서 옆 동네 성석리 거쳐서 여기 오면 점심시간이여. 그럼 집에 사람이 오면 때가 됐는데 그냥 보낼 수가 없지. 그때는 사먹을 때도 없고. 그러니까 보리밥이라도 해서 줘야 된단 말야. 한 그릇이래두. 그래서 내가 그때 되게 고달팠어.”

옆에서 듣고 있던 조숙자 할머니가, 가난하기는 하지, 애들은 많지, 그때는 할아버지가 집안 살림에 전혀 도움이 안 되었다며 웃는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연말이 되면 열리는 마을 총회나 마을 행사를 이장 집에서 함께 밥을 먹으며 했기 때문에 할머니가 더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15년쯤 하니까 멀미나고 못해 먹겠어. 그래서 총회 때 사표를 내버렸어. 그때 부락 사람들이 뭐라 그랬냐면 정 하기 싫으면 딴 동네로 이사 가랬어. 이사 가면 하기 싫어도 못하고, 하고 싶어도 못하니까 가라는겨. 그래서 또 3년을 더 보다가, 18년 하다가 그만뒀어.”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이장에 이어 노인회장을 맡았을 때도 마을의 대소사에 늘 신경을 써서 분주했다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노인정에 무슨 일이 있으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나가서 준비를 하고, 집에 있는 음식이며 필요한 것들을 모두 아낌없이 마을 사람들과 나누었다는 지난날의 이야기였다.

할아버지가 마을 이장에 이어 노인회장까지 역임하면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마을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겉으로는 힘들다, 멀미난다 하며 그 과정이 고달팠다고 말하지만, 지금은 웃을 수 있는 추억으로, 마을에서 소중한 존재로 남아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별별 품팔이 다했어]

할아버지가 마을 일을 보러 다니느라 집안 살림은 온통 할머니 차지였다. 그래서 막내 자식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늘 고단했고 넉넉지 않은 삶이었다. 산더미 같았던 빚을 안고 온 가족이 나서서 배추 장사를 한 적도 있는데, 당시 중학생이었던 큰아들이 배추를 실은 리어카를 끌고 가서 함께 배추를 팔기도 했다. 그때는 연료를 뗄 나무가 없어서 방앗간에 가서 사오기도 하고, 그것도 마땅치 않으면 이웃집 사람과 함께 연료를 구하러 이 산 저 산 안 다녀 본 데가 없다고 했다.

파 장사, 배추 장사 등 별별 장사를 다 해 보고, 별별 품팔이를 다 해 봤다는 이야기 끝에 벽돌공장에 가서 일한 얘기도 들려주었다.

“지금은 다 기계로 해서 그렇제. 다 해 봤는데. 젤 어려운 게 저기 벽돌 찧는 거여. 벽돌 찧는 공장에서 일을 한 달 해 봤어. 근데 글쎄 다른 사람은 못해도 나는 해 냈다고 기술자가 나를 안 놔.”

자식들 학비를 벌고 살아 보겠다고 벽돌공장에 가서 일을 했는데, 그때까지 해 본 일 중에서 가장 어려웠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힘들어도 열심히 일한 보람은 있어서 벽돌공장 공장장이 계속 나와서 일을 하라고 했다면서 할머니는 빙긋이 웃는다. 언제나 모든 일에 성실하고 열심히 임했던 할머니의 품성을 잘 알 수 있는 이야기였다.

[정보제공]

  • •  김상근(남, 1922년생, 삼덕리 1구 하덕마을 주민)
  • •  조숙자(여, 1930년생, 삼덕리 1구 하덕마을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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