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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C030102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삼덕리 1구 하덕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보은

[5남매를 다 가르쳤어]

조숙자 할머니께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보람된 일이 무엇이었느냐고 묻자, 5남매를 모두 대학에 보낸 것이라고 대답했다. 시골에서 살면서 다섯 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모두 대학에 보냈다면 그야말로 많은 희생과 고통이 필요했을 것이다. 할머니는 5남매가 하다못해 9급 공무원이라도 해야 먹고살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일을 했다고 털어 놓았다.

“말도 못해. 우리는 또 원래 재산이 없었어. 없었는데, 그냥 두면은 안 되겠고, 내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하다못해 공무원 시험이라도 보도록 해서 9급 공무원이라도 돼서 밥이라도 먹고 살라고 했었어.”

그래서 할머니는 5남매 전부를 인문계 고등학교에 보냈다고 한다. 실업계 고등학교보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보내야 대학도 보내고 할 것 같았다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 할머니는 그 나이 또래의 어르신들에 비해 훨씬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생각을 가졌던 것 같았다.

[아이들이 공부 잘하는 것도 복이지]

할머니의 자식 자랑은 끝이 없었다. 5남매가 모두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상도 많이 타고 1등을 놓치지 않아서 가끔은 대학 시험 보러 갔을 때 한 명이라도 좀 떨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단다. 애들이 공부를 못해서 대학을 못 가면 나중에 부모 원망은 안 할 텐데, 시험만 보면 어느 학교든지 척척 붙으니까 힘들어도 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때 옆에서 할아버지가 할머니 자랑을 했다.

“이 할머니가 시방 팔십 살이여. 팔십 살인데 그때 학교를 나왔어. 소학교 왜정 때 입학해서 제정 때 졸업했어. 팔십 살 넘은 늙은이가 소학교 나온 게 아마 별로 없을겨. 충청북도에서 여자를 학교 보낸 게 몇 없을겨.”

할아버지가 자랑할 만도 한 게, 할머니가 소학교를 다녔다는 1930년대 후반은 먹고사는 것도 힘들어서 농촌의 경우 남자아이들도 학교를 다니는 게 힘들던 시절이었다. 그러고 보면 할머니의 교육열은 어렸을 적에 받은 교육의 힘이 크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자 쑥스럽다는 듯 할머니가 다시 아이들을 가르치던 때로 화제를 넘겼다.

“할아버지도 대학까지 나왔는데 뭘. 그래 가지고는 인저 시험을 3학년이 되면 많이 보니까 대학에 전부 다 진학을 하니까 이 마음이 인저 암만 강한 애도 학교에 가고 싶지. (중략) 그래서 원망하지 말고 봐봐라. 봐서 붙으면 다행이고 못 붙으면 나는 그 이후로 뭐 보결도 못 들여보내고 재수하기도 힘들고 애들 다 있으니까 말여. 하나만을 특히 내가 가르칠 수 없다. 그러니까 가서 시험을 봐라 그럼 보면 붙는 거야. 또.”

부모가 아무리 자식들을 가르치고 싶어도 자식들이 따라 주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고 보면 알아서들 대학에 척척 붙은 자식을 둔 김상근 할아버지와 조숙자 할머니는 유난히 자식 복이 많은 것 같았다.

[애들 학교 보내려고 안 해 본 일이 없어]

자식들도 대학교에 들어간 뒤로 고생이 많았다고 할머니는 말했다.

“그니까 어떻게 해서라도 입학금은 대주는디, 그 다음은 어떡할겨. 지들도 아르바이트 별별 짓 다했지 그러니 엄마 아부지하고 애들하고 합심이여. 1원 한 푼이라도 절약을 해야 되니까. 그냥 그렇게 해가지고 인제 졸업을 마치게 되더라구. 일단은 학교에 들어가면 말여. 시작이 어렵지 일단 하면 굶어죽지 않고 또 살어.”

그렇게 할머니는 시작이 어렵지 일단 하면 굶어죽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자식들을 가르쳤는데, 동네 사람들로부터 집안 형편도 어려운데 굳이 딸들까지 대학을 보내면서 죽는 소리를 한다고 타박도 많이 들었다.

“동네에서도 흉 봤지. 그렇게 가난하면서 딸꺼지 왜 학교에 보내느냐. 그래서 내가 이랬어. 제 자식으로서의 책임 없이 희생을 안 하면 남이 누가 희생을 해 줄 거냐. 내가 부모로서 희생하는 것은 나를 위해서다. 해 주면 땡이여. 그러니까 그런 소리는 할 필요가 없어. 안 가르치면 안 가르치는 걸로 족하지. 그런 말은 하지 말어라. 내가 그랬지 인저.”

할머니는 자식들 가르치면서 고생도 많았지만, 그러면서 한편으론 자식들끼리 서로 돕고 사는 법을 알게 된 것도 큰 복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하나 학교 보내면 굶어죽지 않고 먹고살고, 또 걔가 동생들 가르쳐. 그러면 또 부모도 살 수 있고 자식도 부모 원망 안 하고 저 갈길 가고. 대학만 나오면 성인 아녀? 그래서 지들이 스스로 저 갈 길을 찾는 거여.”

조숙자 할머니는 그렇듯 뚜렷한 교육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할머니네 집 자식들이 모두 대학교를 나오고 번듯하게 살게 되면서 마을 사람들의 인식도 많이 달라졌단다. 지금은 마을 사람 모두 자식들이 공부를 못해도, 하다못해 전문대학이라도 보내려고 기를 쓴다는 것이다. 진취적이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모두가 힘들고 어렵던 시절에도 자식 교육에 매진했던 조숙자 할머니의 삶이 위대하게 보이는 대목이었다.

[정보제공]

  • •  김상근(남, 1922년생, 삼덕리 1구 하덕마을 주민)
  • •  조숙자(여, 1930년생, 삼덕리 1구 하덕마을 주민)
이용자 의견
김** 정말 재밌었다 나도 대학갈거야 입학금을 잘 모아났다가 대학교에 들어가면 써야지
  • 답변
  • 디지털진천문화대전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0.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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