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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C020103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삼덕리 2구 옹암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종호

널따란 덕문이들상덕마을, 하덕마을과 함께 옹암마을이 둘러싸듯 하고 있는 삼덕리는 마을 안이나 바깥으로 높은 산이 없다. 마을 안에서 옹암마을 뒤편으로 작은 산 모양을 하나 볼 수 있으나, 다른 지역의 동산보다도 높이나 규모가 작아 마을 사람들은 이것을 ‘아랫집너머’ 혹은 ‘윗집너머’ 등으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덕문이들 바깥쪽으로 나 있는 2차선 도로에서 옹암마을 쪽을 바라보면 옹암마을 뒤에 위치한 산이 소가 누워 있는 형태를 띠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마을 사람들에게 옹암마을 뒷산과 관련해 전해 오는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을 한 뒷산]

삼덕리 옹암마을 뒷산에는 옹암마을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독바위가 있는데, 이 독바위가 위치한 곳이 소의 머리 부분이다. 그리고 길게 늘어선 옹암마을이 끝나는 부분이 소의 꼬리가 된다.

“이 뒷산을 갖다가 바위형 소가 들어오는 형국이라는 얘기가 있는데 그게 사실인 것이 여기 남아 있는 바위 세 뿔 저쪽에 원래 또 있었어. 그 전에 그 저 군에서부터 내려오는 물 내려오는 산, 닿는 데 소 이빨 같은 게 또 있었어.”

원래는 소의 머리를 상징하는 소의 뿔과 같은 형상으로 독바위 주변에 바위들이 더 많았으나, 언제인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바위들이 없어졌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도 그 이유는 잘 모르지만, 전보다 소의 형국을 알 수 있는 모습들이 사라진 건 독바위 근처에 위치했던 바위들이 없어진 뒤부터라고 한다.

소의 형국을 한 산이었으므로 소의 머리가 되는 독바위 근처에는 집을 지으면 안 된다는 금기가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아직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소가 머리를 흔들면 집안이 흔들려서 망한다는 속신 때문이었다. 실제로 언제인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한 스님이 옹암마을에 와서 독바위 근처 자리에 절을 지으려고 한 적이 있었으나 산의 형국이 소의 머리가 되는 부분이라 하여 다른 지역으로 갔다고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도 마을 사람들은 지금까지 독바위를 마을의 상징으로 여기고 신성시하며 잘 관리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 준 산]

예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소의 형상을 띠고 있는 산의 아래쪽에 있는 마을은 소가 감싸고 있는 형국이라 부자도 많고 잘산다고 믿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옹암마을은 옛날부터 부자가 많고 농사도 잘되는 마을이었다고 한다.

독바위에 제일 중요한 게 뭐냐면, 여기 들어오면 독같이 생긴 바위를 옹암이라고 하고, 산도 소가 드러눕는 형이라고 해서 부자가 많이 있었다고. 여기 들어오면 못 사는 사람이 없었다고 해. 나중에 다 잘살고 크게 안 된 사람이 없고. 이래 가지고 옛날에 조리가 쌀을 이루고 처음에는 부인 탓하지만 톡 털고 나중에는 돈 벌어서 나가서 다 잘산다고 해서 조리 터라고도 하는 거여.”

실제로 옹암마을 독바위는 쌀독을 의미한다고 하는데, 그 독에 쌀을 채울 수 있을 만큼 쌀이 많이 나서 부자동네로 소문나 있었다. 그래서인지 마을 어른들은 독바위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못산 사람들이 없이 다 잘살다가 나갔다고 말하고 있었다. 실제로 옹암마을에는 이름난 부자 김씨가 대궐 같은 집을 짓고 살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마을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부자 김씨가 얼마나 큰 부자였던지, 여러 번 기생들을 불러 집에서 잔치도 했다고 한다. 나중에는 뭐가 잘못 되었는지 집안이 망하여 옹암마을을 떠나긴 했지만 엄청나게 떵떵거리며 큰 부자로 살았단다.

삼덕리 옹암마을에 사는 어른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어린 시절에는 마을 뒷산을 놀이터삼아 놀았다고 한다. 그때는 산에 큰 나무도 많아서, 아이들끼리 그네도 매어 놀았고 풀뿌리로 공도 만들어 찼다. 어른들도 봄이면 노상 올라 다니며 나물을 캐서 춘궁기를 나곤 했다.

그러나 현재는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데, 이는 1997년 마을에 발생했던 화재 사건 때문이라고 한다. 바람이 몹시 심하게 불던 어느 봄날, 마을 뒷산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나서 소 형국을 하고 있던 숲을 다 태워 버렸던 것이다. 아직 복구가 되지 않은 탓에 듬성듬성 심어져 있는 나무들이 을씨년스러워서, 마을 사람들은 산을 볼 때마다 늘 안타까운 마음뿐이라고 했다.

[정보제공]

  • •  김진업(남, 1928년생, 삼덕리 2구 옹암마을 주민)
  • •  김혁태(남, 1931년생, 삼덕리 2구 옹암마을 주민)
  • •  김복남(여, 1940년생, 삼덕리 2구 옹암마을 주민)
  • •  김춘자(여, 1940년생, 삼덕리 2구 옹암마을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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