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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B030203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용몽리 시장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송수연

[물난리가 나도 머리는 마무리해 줘야지]

한 2년 전, 그러니까 2007년에 별안간 덕산에 물난리가 나서 미장원 안으로 물로 차오른 적이 있었다.

“그날, 여기 물 차던 날도 손님이, 오전 손님은 내가 모셔다 드리고, 그 맹동면장 사모님이 여기서 파마를 말았는데 물이 들이닥친 거야. 그 양반이 그냥 어깨까지 다 젖었지. 마루도 다 뜨지. 그래서 할 수가 없어서 내가 손자들 둘을 데리고 있었는데 고무다라에다가 손자들을 태워 가지고 이제 밖으로 나간 거야.”

문금자 씨는, 당시 미장원 앞길이 강물처럼 변해 있었다고 기억했다.

“내 차가 또 저기 가서 좀 더 높은 곳에 놔뒀는데, 물이 차서 시동이 안 걸리잖어. 그래서 이제 택시를 태워 가지고 저 바깥에서 머리 약 칠을 해서 끄를 건 끌러야 되잖아, 이게. 이게 이게 복잡하거든. 하다 말 수도 없는 거라고 이게. 그러니까 거기 앉아서 이 머리를 중화제를 칠해서 끌렀어. 그 양반도 옷 다 버린 채 택시로 모셔다 드리고 그랬지.”

물난리가 났는데도 머리는 말아 놓았으니 혹시라도 파마가 잘 못 나올까 봐, 경황이 없던 중에도 택시 안에서 파마를 끝냈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정말 재밌고 흔하지 않은 이야기였다.

그래서 집수리를 했는데, 수리를 하는 날에도 손님들이 머리를 하러 왔단다. 결국 미장원 안에서는 파마만 말고 바깥에서 머리를 감겨 주었으나, 누구 하나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았다. 그때를 떠올리며, 문금자 씨는 손님들이 얼마나 착한 분들이냐며 순박하고 속 깊은 시골 어른들 칭찬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계속하였다.

[노인 양반들이 주손님이라 관찰을 잘해야 돼]

한 군데서 몇 십 년 동안 해서인지 금잔디미장원은 단골손님이 많다. 그래서 어떤 때는 단골손님이 수술을 했거나 병이 나서 부득불 움직일 수가 없으면 문금자 씨한테 전화를 한다. 그럼 이사구 씨가 문금자 씨를 차에 태우고 단골손님 집으로 간단다.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의 경우 드러누워 있는 상태에서 문금자 씨가 머리를 깎아 주기도 하고, 파마도 해 준다. 그런데 파마를 할 경우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꽤 되기 때문에, 그럴 때는 얼른 가게로 와서 기다리는 손님 머리를 해 주고, 다시 가서 중화제를 바르고 가게로 올라오고를 반복한다.

그러면 동네 친구들이 이사구 씨한테, “이런 바보 같은 사람아. 파마해서 얼마나 남는다고 기름이 비싼데 차를 굴리느냐?”고 타박을 한단다.

그럴 때마다 이사구 씨는 인생이 어떻게 돈만 가지고 살겠느냐고 대답해 준다고. 그러면서 이사구 씨는 우리한테, 거동이 불편한 노인 분들을 손님으로 맞이하다 보니, 직접 가서 해 주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고 했다. 또 인생은 누가 뭐라 해도 정으로 사는 것이 최고라고 덧붙였다.

문금자 씨도 말을 거들었다.

“노인 양반들이 많이 오시기 때문에 내가 관찰력을 많이 가져야 돼. 어떤 분은 미장원 오셔서 막 쓰러져. 그러면 병원에 모시고 가야 되고 그래. 막 오줌을 싸는 손님도 있어. 노인들을 모시다 보면 깜짝깜짝 놀랄 일이 많아. 젊은 사람들은 이해 못하는 게 많지. 병원 데리고 가서 수액도 맞혀 드리고 링거도 꽂아 드리고. 집으로 연락하면 아들 며느리가 와서 비용 주고 모시고 가고 하는 일도 많아.”

얼마 전에도 노인 분이 미장원에 왔다가 쓰러졌는데, 다행히 이사구 씨 부부의 도움으로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무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나중에 병원에서 퇴원한 그분이 와서 고맙다고 하면서, “내가 미장원으로 안 오구 혼자 집에 있었더라면 바보가 됐던지 했다.”고 말했단다.

[단골도 많고 진천서도 알아줘]

한때 금잔디미장원은 덕산장날만 되면 손님들로 발 디딜 곳이 없었다고 한다. 보통 30~40명이 왔는데, 음성군과 맹동면, 대소면, 진천군, 이월면, 초평면 등에서 다 왔었다고 부부가 자랑을 한다. 지금도 외지에서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다면서 활짝 웃는 아주머니의 모습에 뿌듯함과 고마움이 묻어났다.

“아직은 진천서도 오니까. 여기서 살다가 서울로 아들한테 가서 몇 년을 두고 우리 집에 와서 머리를 하고 가시던 분도 있어. 근데 지금은 안 와. 돌아가셨나 봐.”

서울 딸네 집에 가서 사는 양반도 엊그제 와서 파마를 하고 갔단다. 딸, 며느리들이 자기들이 가는 미장원에 가자고 해도 싫다고 하고 와서 머리를 하고 간다는 것이다. 부부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자신들을 인정해 주고 좋아해 주는 것 같아서 가장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언제 가장 바빴냐고 물었더니, 명절을 앞에 둔 장날은 그야말로 눈코 뜰 새가 없었다고 이사구 씨가 말했다.

“인기가 참 좋았어. 미장원이 화려해서가 아니라. 대목 때는 앉을 자리가 없었어. 아침에 머리하러 온 양반이 밤에 갔으니까. 제일 적게 와야 열댓 명이야. 이이가 혼자 손수 하고 있는데 쭉 기다리고 앉아 있는겨.”

그 말에 문금자 씨가, “내가 정성을 다 보여 드리며 하니까 신뢰감을 가지시는 거지.”라고 대답했다.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갖고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정보제공]

  • •  이사구(남, 1934년생, 금잔디미장원 운영)
  • •  문금자(여, 1942년생, 금잔디미장원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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