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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말장 터줏대감 상인들 이야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B020302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용몽리 시장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서영숙

용몽리 시장마을 상인들에 따르면, 1985년 새마을 사업의 일환으로 용몽리 시장도로가 정비되면서 옛날보다 길이 넓어져서 사람들이 드나들기도 전보다 수월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길이 넓혀지고 시내버스가 오가면서 사람들이 용몽리 시장으로 오지 않고 바로 진천읍으로 빠져 버려 시장을 찾는 발길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도 안타까운 현실이란다. 이곳에서 30년 이상 장사를 했던 상인들의 말을 들어 보았다.

[싸게 판 데다 손님도 많아서 잘되었지]

지금의 자리에서 36년 동안 빨간 간판의 왕자신발을 운영하는 조성계 씨는 한창 장사가 잘되었을 때를 회상하며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처음 신발 장사를 시작할 때 두 내외는 팸플릿을 만들어서 덕산중학교 교문 양쪽에 서서 학생들에게 나눠 주었다고 한다. 지금이야 300명도 안 되지만 당시 덕산중학교 학생이 1,200명이 넘었단다.

그때만 해도 전국의 학생들이 신는 운동화가 다 똑같아서 남자는 스파이크, 여자들은 오리발이었다. 그때는 숫자만 많이 팔면 되기에 태화고무공장에서 직접 들여와서 다른 데보다 싸게 한 켤레에 550원씩 팔았다. 대리점을 거치지 않고 가져와서 중간 마진을 먹게 되니 남들보다 싸게 팔아도 되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박리다매다. 덕산장에 한창 신발가게가 많을 때는 일곱 군데나 됐지만 지금은 여기 왕자신발 한 곳뿐이라는 얘기에, 그 당시 얼마나 시장이 번창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덕산장에서 최고로 많은 매출을 올릴 수 있는 때는 뭐니 뭐니 해도 추석 대목이었는데, 30년 전 추석 전에 그때 돈으로 80만 원을 벌어 보기도 했단다. 30년 전에 80만 원이면 지금의 800만 원보다도 많은 액수다. 어른들 하얀 고무신 한 켤레가 250원, 210원 하던 시절에 80만 원을 벌었다니,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그만큼 이곳에서 장을 보는 인구가 많았다는 의미다.

[마늘 장사만 30년인데 이제는 힘들지]

덕산장날만 되면 장터 어귀에 꼭 그 자리에서 마늘과 곡물을 늘어놓고 파는 할머니 한 분이 있다. 어디를 가도 다 알아주는 덕산장 토박이다. 그 할머니에게서 덕산장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옛날부터 이렇게 곡물을 같이 팔았냐는 물음에, 할머니는 옛날에는 마늘만 팔았다고 대답한다. 옛날에는 머리에 이고 와서 팔아야 했기에 마늘만 팔았지만, 지금은 아들이 차로 다 옮겨다 줘서 마늘도 팔고 곡물도 팔고 참기름도 파는 것이라고 한다.

어디 장이나 그렇듯 장사하는 사람들은 다 자기 자리가 있다. 할머니도 처음 장사를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몇 십 년 시장 어귀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으레 그 자리는 할머니 자리라고 알고 아무리 늦게 나가도 다른 사람들이 피해 준다.

“옛날에는 참 잘됐지. 시방은 뭐. 옛날에는 특별히 잘되고 하는 게 뭐 있어. 다 잘됐었지. 꽁치 썩은 것도 누가 와서 팔아도 잘되었다고 하던데 뭐. 그만치 잘됐어. 남편은 남편대로 벌고 나는 마늘장사하고 해서 자식들을 다 키워 내고 했는데, 지금은 뭐 다 잘 살려고 먹고 살려고 저들 일 하면서 노력하고 있어. 다들 열심히 해서 출세를 해야지. 여자나 남자나 상관없어 시방은. 나, 내가 하기 나름이지. 옛날에는 남자만 가르치고 남자만 출세했지만, 요즘은 남자나 여자나 지 앞길은 지가 해 나가야 되고. 열심히 해야 해.”

[정보제공]

  • •  조성계(남, 1945년생, 용몽리 상가번영회장, 왕자신발 운영)
  • •  덕년이 어머니(여, 1930년대생, 덕산장에서 마늘 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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