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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A030303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구산동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윤정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구산동마을에 가면, 농다리로 가기 전에 꼭 한 번 들러야 하는 곳이 있다.  농다리와 함께 구곡리 구산동마을의 또 하나의 명소가 된 농다리전시관이 바로 그곳이다. 많은 관광객의 사랑을 받고 있는 농다리전시관은 구산동마을의 자랑거리인 농다리를 보존하고 후세에 물려주고자 설립된 곳이기도 하다.

[마을 주민 모두가 농다리전시관 홍보대사]

우리는 느티나무 혹은 구산정에 삼삼오오 옹기종기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던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종종 농다리전시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곤 했다.

“저기 저거 보이지? 저게 농다리전시관이여. 농다리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 같은 게 저기 다 있다구. 얼마나 잘 꾸며 놨는지 몰러. 막 소리도 나오고 쪼마난 농다리 모형도 있구, 저기 오늘 꼭 한번 가봐, 응?”

구산동마을 할아버지, 할머니 모두는 농다리전시관의 홍보 대사 혹은 문화재 해설사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마을에 농다리 보러 관광객들이 오자너? 그럼 꼭 저기 농다리전시관에 가 보라구 얘기를 한다구. 얼마나 잘 해놨는지, 참 좋은 데라 우리가 꼭 저기 가 보라구 그래.”

[구산동마을과 잘 어우러지는 농다리전시관]

농다리전시관을 방문한 건 구산동마을 나무들이 단풍에 물들어 가는 10월의 어느 날이었다. 인상 깊었던 것은 농다리전시관의 외관이 얇고 긴 돌들을 쌓아 지어져 마을의 따뜻하고 정겨운 분위기와 어우러진다는 점이었다. 이는 농다리의 색채와 구조 디자인에 맞는 설계와 시공이라고 하는데, 한눈에 봐도 농다리가 떠오를 만큼 농다리의 특색을 잘 나타내 주고 있었다.

입구로 들어서는 길은 돌 징검다리 같은 모양인데, 올록볼록한 돌들을 건너는 재미가 꽤 쏠쏠했다. 전시관 입구 오른쪽에는 농다리 유래비와 원형복원 사적비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었다.

농다리 유래비는 2005년 3월에 세워진 것으로, 진천군농다리보존회장인 신응현 씨가 글을 쓰고 천안시의원인 김진성 씨가 글씨를 썼다. 비문에는 농다리 유래비의 건립 목적과 농다리의 문화재 지정 날짜, 농다리의 구조, 『상산지(常山誌)』와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 쓰여 있는 농다리에 관한 내용 등이 표기되어 있다.

농다리 유래비 옆에 있는 원형복원 사적비에는 농다리를 원래의 모양으로 복원한 내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는, 일제강점기 3칸이 손실되어 25칸이었던 농다리를 28칸으로 복원하기 위해 농다리보존회에서 2007년 3월 5일 충청북도와 진천군에 농다리 수문 28칸 원형 복원을 신청했고, 2008년 6월 19일 원형복원사업을 착공해 두 달간의 공사 끝에 8월 15일 완료했다고 쓰여 있다.. 이렇게 원형복원사적비는 농다리의 원형 복원을 기념하는 의미로 세워진 것이다

[작지만 알차게 꾸며진 공간]

농다리전시관 내부로 들어서면 바로 오른편에 사무실에 있는데, 전시관에 근무하는 직원 박인호 씨에게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농다리전시관은 2004년 사업을 시작하여 대지 2.192㎡, 건축면적 389.52㎡, 연면적 375.58㎡ 규모의 1층 건물로 사업비는 국비 7억 원, 도비 2억 원, 군비 5억 원 등의 예산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2007년 8월 24일 오후 7시 30분 제8회 농다리축제에 맞춰 문을 열었는데 이렇게 농다리전시관이 많은 사람들의 축하 속에 문을 열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는 말도 들을 수 있었다.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는 벽화가 그려져 있는 굴다리를 지나 해바라기를 심어 놓은 곳에 농다리전시관이 들어설 예정이었으나 행정상의 문제로 장소가 옮겨졌다. 결국 상산임씨 세거비와 중리 느티나무 맞은편인 현재의 자리에 농다리전시관이 세워졌는데, 이곳은 원래 개인이 소유자인 논이었다.

우리는 농다리전시관을 몸소 체험하기 위해 자리를 옮겨 전시관 내부를 천천히 둘러보기로 하였다.

전시실 입구로 가 보니 ‘천년의 숨결’이란 농다리전시관의 테마가 한눈에 들어왔다. 옆에는 사계절 별로 농다리의 아름다운 모습이 담겨진 사진과 귀여운 느낌이 들도록 꾸며진 작은 농다리의 모형이 있었고, 벽면의 TV 화면에서는 농다리 영상과 함께 농다리 유래 등을 설명하는 성우의 설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다음 코너는 ‘지구촌의 다리들’로, 각 나라의 유명 다리들에 대한 설명과 함께 조선시대, 고려시대,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등 시대별로 다른 한국의 옛 다리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입구 정면에는 임연 장군이 울고 있는 여인을 위해 다리를 놓아 주었다는 농다리 전설을 볼 수 있는 영상 자료가 있는데, 어린 아이는 물론 어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 옆으로는 『상산지』와 『조선환여승람』에 나오는 농다리에 관한 기록과 농다리에 담긴 동양 철학, 진천의 아름다운 비경, 농다리에 전해지는 다양한 전설 등을 설명해 놓은 공간이 있었다.

맞은편에는 농다리 축조 과정이 전시되어 있고, 농다리에 숨겨진 과학적 원리와 농다리의 구성도 등 농다리와 관련해 사람들이 궁금해 할 만한 점을 쉽고 친숙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모형으로 설명해 놓고 있었다.

출구 쪽에는 진천 지역의 특성과 진천군 안내도가 있으며, 임석동과 손영식·나순원 등이 농다리를 소재로 하여 지은 시들을 감상할 수 있다.

이처럼 농다리의 사계와 국내 및 세계의 다리 이야기, 농다리의 역사와 우수성, 영상 자료, 진천군 홍보 코너 등으로 구성된 전시관은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사진들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영상들로, 농다리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전시관을 한 바퀴 돌고 나면 농다리 해설사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알차게 꾸며져 있었다.

또한 올해로 3회를 맞고 있는 농다리사진공모전에 입상한 작품들이 농다리전시관 한 켠에 전시되고 있었다.  농다리의 역사, 축제 장면 및 풍경, 각종 행사, 농다리의 사계, 농다리의 추억 등 농다리와 어우러진 주위 경치 등을 소재로 한 다양한 작품들이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잡아끌고 있었다.

[많은 사람이 찾아와 주니 그게 일하는 보람이지요]

농다리전시관에서 일하고 있는 박인호 씨는 아침 10시에 개관하여 6시에 문을 닫기 전까지, 평일에는 30~40명, 주말에는 100여 명의 관광객이 찾아온다고 말해 주었다.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오는데, 중부고속국도 근처여서 찾아오기도 쉽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박인호 씨는 많은 사람이 찾아와 주어 일하는 보람과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사람들이 고속도로 타고 가다가 보고 많이들 와요, 찾아보기가 쉽거든요. 그래서 전시관 안이 북적북적하면 저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더라구요, 하하.”

[정보제공]

  • •  임준호(남, 1935년생, 구곡리 구산동마을 주민)
  • •  박인호(남, 구곡리 농다리전시관 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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