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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A020303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구산동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설

구산동마을의 명물 중 하나가 소습천이다. 소습천은 산비탈 들머리의 평평한 품(品)자형 반석인 세습바위 사이에서 솟아나는 샘물로, 농다리로 가는 길 약 200m 지점에 자리 잡고 있다.

소습천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소습천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는 표지판과 함께 소습천을 표시하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흐르는 물소리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면서 더불어 서늘한 기운에 더위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소습천과 관련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중리 느티나무 아래에 모여 있는 할아버지들에게 소습천에 대해 물어 보았다. 그러자 할아버지들 모두 소습천은 풍습에도 좋고 안질에도 효험이 있는 신비한 샘물이라고 입을 모은다. 느티나무에서 소습천으로 가는 길 중간에 자리 잡고 있는 조롱박터널을 관리하고 계시는 임준호 할아버지가 우리를 소습천까지 데려다 주면서 소습천에 전해 오는 이야기들을 전해 주었다.

[임금의 병을 고친 어수천(御水泉)]

임준호 할아버지가 소습천과 관련해서 제일 먼저 해 준 얘기가 소습천이 어수천(御水泉)으로 불리게 된 내력이었다.

세종대왕소습천 물을 먹고 피부병을 고쳤다는 거 아니여. 초정에 갔다가 오는 길에 소습천에 들려서 물을 먹고 서울에 갔대.”

소습천 앞에 세워 놓은 알림판에는, 세종대왕이 안질 치료차 초정에 가는 도중 이곳을 지나가면서 이 물을 마시고 눈을 씻어 가서 눈병이 씻은 듯 나았다고 적고 있었다. 그런데 임준호 할아버지는 세종대왕이 초정약수에 갔다가 소습천에 들려 물을 마시고 피부병 치료에 효과를 보았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아마도 어린 시절부터 들어왔던 이야기여서 눈병인지 피부병인지 헷갈리신 모양이다. 어쨌든 임준호 할아버지를 포함하여 구산동마을 사람들은, 소습천 물을 먹거나 몸을 씻으면 병이 깨끗하게 나을 정도로 소습천이 영험한 기운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신성한 샘물에 얽힌 신기한 이야기]

임금의 병을 낫게 했다는 이야기뿐 아니라 소습천에 얽힌 다른 이야기들도 마을 할머니들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할아버지들에 비해 아이를 키우면서 민간신앙의 힘에 적잖이 기대었던 할머니들이라 소습천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들을 좀 더 많이 알고 있었다.

“요기에 지렁이 같은 게 있더라는겨. 실지렁이가 있었다는겨. 그런데 그 실지렁이가 소습천의 지킴이었던 거지. 그래서 그거를 먹지를 말아야 되는데 먹고 말았지. 그래서 그 여인이 자식을 낳긴 낳았는데, 귀가 한 짝이 없는 아이를 낳았어. 귀는 없고 구녕[구멍]만 이렇게 있지.”

보호수 아래에서 잠시 더위를 피하고 있던 마을 할머니들이, 뱃속에 아이가 있는 여자가 소습천에 갔다가 소습천 지킴이인 실지렁이를 먹고 귀가 없는 아이를 낳았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한 할머니가, “목욕을 하러 오다가서는 뱀 죽은 거 쥐 같은 거, 집에서두 비린 거 먹고 오면 효험을 못 봐유. 그 전에는 개고기 같은 거 먹은 사람이 그 물을 안 먹었대유.” 하면서, 소습천은 마음과 몸을 정갈하게 한 사람들만이 가야 하는 곳이라고 일러 주었다.

그런데 얼마 전까지도 구산동마을 사람들에게 소습천은 단순한 샘물이 아니라 신이 깃들어 있는 신성한 장소였다고 한다. 그래서 밥과 미역국 등을 차려 놓고 소습천을 향해 절을 하곤 했단다.

“그 전에는 그래도 밥 해 놓고 공들이러 오는 사람 많았는데, 그려, 샴 거기다가 미역국 끓인 것도 넣어 놓고 밥도 이렇게 해서 거기다가 물에다가 집어넣어 놓고 그랬는데.”

그러면서 할머니들은 소습천을 위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예전과 같지 않아 아무나 와서 물을 먹고 하는 것이 “사람으로 말하면 늙었다고 천대받는 거유.”라며 안타까워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증평과 진천을 비롯한 타 지역에서도 소습천을 찾아와 정성을 올리고 가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요즘에는 단순한 약수로만 취급을 한다면서, 그래서인지 소습천이 옛날처럼 영험한 기운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아낙들의 쉼터]

마을 아낙들에게 소습천은 정성을 들이는 곳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목욕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며 더위를 피해 잠시 쉬어 가기도 하는 친근한 휴식처이기도 했단다.

“그래, 우리네 저녁에 그때 해 넘어갈 때쯤, 술 가지고 가서 먹어 가면서. 거기 말하자면 쌓지 안 보였거든. 노인네들 저기 하니까, 술 같은 거 있으면 한 병씩 가져가서 먹구 그랬는데.”라며 할머니들이 소습천에 얽힌 추억담을 말해 주었다.

또 “물은 밥 해 먹고 미역국 끓여서 해 먹는 거 우리도 얻어 먹구 했어요, 할머니들이 저기 고개 너머 저 저수지가 굴테 사람 밭이었어유. 거가서 일하고 오다가 할머니들이 거기서 잡숫고 그러면은 우리가 무거운 거 들고 오면 쉬잖아요? 그러면 우리네들 한 그릇 준단 말이에요. 그럼 얻어도 먹고 그랬는데.”라며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소습천에서 잠시 쉬며 밥을 먹곤 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이렇게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소습천은 끊임없이 물을 흘려보내면서, 현재의 모습보다 좀 더 큰 규모로 마을 사람 누구나 쉬어 가며 물을 마시고,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쉼터로서의 역할도 했던 곳이라고 한다.

[365일 마르지 않는 물]

우리가 할머니들에게, 소습천의 물이 겨울에는 얼지 않았느냐고 묻자 하나같이 손사래를 쳤다.

“아유, 안 얼어요, 다른 데 가물어서 등이 이렇게 쫙쫙 갈라져두, 거기는 물이 많이 나오덜 안 하고 고대로여, 참 고대로 지금 고대로 나오는겨. 장마가 져두 그렇구, 뭐 고대로.”

할머니들의 말처럼 현재도 소습천에서는 그 신성함을 증명이라도 하듯 일정한 양의 물이 연중 마르는 날 없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단다.

[정보제공]

  • •  임준호(남, 1934년생, 구곡리 구산동마을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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