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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A020301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구산동마을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윤정아

진천군청에서 동남쪽으로 약 5.4㎞ 지점에 위치한 구산동마을은 본래 진천군 문방면 지역으로, 굴테고개[일명 굴티고개] 밑에 있다고 해서 굴테[일명 굴티] 또는 구곡이라고도 불렸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내구리, 외구리와 덕문면 차상리 일부를 구곡리라고 하고 문백면에 편입하였다.

한편 중리마을 앞에는 마을 주민들의 휴식처가 되어 주는 느티나무와 함께 한자로 거북 구(龜)자를 쓴 ‘구산동’이라고 오목새김 한 자연 석비가 세워져 있는 선바위가 있다. 여기서도 알 수 있듯 마을의 원래 이름은 거북 구(龜)자를 쓰는 구산동이었다. 외부 사람들은 구곡리(九谷里)라는 지명에 이끌려 구산동마을이 아홉 골짜기로 이루어진 마을이라 오해도 한다. 하지만 옛 지명에 거북 구(龜)자가 사용된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구산동마을은 지나온 세월만큼이나 많은 거북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거북이 무서워 외세가 묻은 바위]

임준호 할아버지는 농다리 이야기에 이어 구산동이라고 적힌 바위를 가리키며 말을 이어나갔다.

“일본 놈들이 거북이에 아주 망한 사람들이거든, 거북이라면 아주 질린 사람들이야. 그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에. 그래서 이놈들이 일제 통치하면서 거북이의 ‘거’자만 나와도 다 없앤 거야. 그래서 구산동 저 돌도 일본 사람들이 파묻어 놓은 거지.”

일본 사람이 이 동네에 왔다가, 바위에 거북 구자가 쓰여 있는 것을 보고 파묻었다는 이야기다. 그 후 해방이 되자 동네 사람들이 다시 파내어서 세운 것이라고 말하는 할아버지의 표정에는 자부심이 서려 있었다.

[구곡리로 바꿔도 구산동으로 부르다]

마을의 터줏대감으로 불리는 임상직 할아버지도 임준호 할아버지와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금 말하자면 일본 놈들이 임진왜란이니 뭐니 때문에 거북선을 무서워했다구. 그래서 거북이라면 진저리가 나서 구곡리로 바꿔 버린 거야. 그래서 우리 마을 사람들은 원래 이름이었던 구곡리로 불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

할아버지는 거북선 때문에 거북과 관련된 것이면 무조건 진저리를 내던 일본 사람이 바꿔 버린 마을 이름을 다시 찾고 싶다면서, 그게 전체 마을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이라고 힘주어 강조하였다.

[정보제공]

  • •  임상직(남, 1925년생, 구곡리 구산동마을 주민)
  • •  임준호(남, 1935년생, 구곡리 구산동마을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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