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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A010201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구산동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윤정아

구산동마을로 향하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넓게 펼쳐진 황금빛 논과 따사로운 가을 햇살이 일상에서는 느낄 수 없던 가을을 느끼게 해 준다. 여름과는 또 다른 풍경으로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 주는 구산동마을에서 계절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구수한 바람 냄새와 이제는 친할아버지, 친할머니 같은 구산동마을 사람들의 웃음일 것이다.

구산동마을로 들어가는 초입에는 버스정류장이 하나 자리하고 있다. 여느 시골마을처럼 버스가 한 시간에 한 대씩밖에 오지 않기 때문에 몇 번이나 답사를 나갔음에도 버스가 오고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힘들었다. 버스정류장을 지나 길을 따라가면 왼편으로 은진송씨 열녀문장렬사 등을 차례로 볼 수 있고, 오른편으로는 돌담길을 볼 수 있다.

[걸어서 증평, 천안, 목천까지도 갔지]

임필수 할아버지는, 바로 이렇게 난 길이 옛날에는 증평으로 통하는 유일한 길이었다고 말했다.

“이 도보로 갈 때는 이리 가고, 위에서 두태산[두타산] 아홉살이고개라고 있어. 두태산, 아홉살이고개, 그리 넘어서 바로 가면 증평이여. 신작로 안 났을 때는 그리 도보해서 갔단 말이여.”

그런데 이 길은 증평뿐만 아니라 천안, 입장, 목천을 가기 위해서도 통과해야 하는 길이었다고 한다.

“그 위로만 가는 게 아니구, 천안, 또 위에가 입장, 또 있지 왜 고 위에 목천. 이리 도보로 해 갔어.”

중리 느티나무 아래에 앉아 있던 임준호 할아버지도 임필수 할아버지와 비슷한 말을 해 주었다.

“옛날에는 보행길이었지. 여기가 아주 증평 장사꾼 통로였어. 그때는 차도 없고 모두 이렇게 등에다가 짊어지고 다녔지. 봇짐꾼들이 이 길로만 다녔어, 여기가 유일한 길이었으니께. 다 걸어서, 우리 어려서만 해도, 아, 70년 전 얘긴데 그때만 해도 차가 어딨어. 증평 진천서 아침에 한 번 버스가 가구 저녁에 한 번 들어오고. 그거밖에 없었어, 그때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니 사극을 통해서만 보았던 옛 풍경이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듯했다. 할아버지는 장사꾼들이 묵어가던 주막집이 있던 자리를 가리키며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주막이 있던 곳은 중리 느티나무 맞은편 즈음이라고 했다.

주막이 있던 곳은 지금 돌담이 쌓아져서 마을 주민들은 그곳을 돌담길이라고 불렀는데, 보기에도 좋고 구산동마을의 분위기와도 어울려 정겨운 느낌을 주었다. 임필수 할아버지께 그 곳이 언제부터 돌담길로 변했냐고 묻자, 2009년 봄 진천군에서 예산을 조성해서 만들어 준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정보제공]

  • •  임필수(남, 1932년생, 구곡리 구산동마을 주민)
  • •  임준호(남, 1935년생, 구곡리 구산동마을 주민)
이용자 의견
임** 쿠웨이트 정부병원에 1978년부터 현재까지도 근무하고 있는 초평면 화산리(붕어마을) 출향인 임충섭입니다.
예전에 운송수단이 발달하기 전에는 진천에서 증평으로 도보로 가는 가장 빠른 지름길은 구곡리 앞을 통과해서 농다리(鎭川籠橋)를 건너 초평면 화산리 뜰(현재는 초평저수지 - 일부는 구곡리 주민들의 농경지)을 지나서 증평을 왕래하였습니다.
필자가 소년시절 엄마 따라 외가 집을 갈 때, 진천 장 구경갈 때, 진천 중학교를 다닐 때 3년동안을 구곡리 앞 현제의 농다리길을 걸어 다니며 학교를 다녔던 중요한 교통로이었습니다.
2011.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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