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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관 박상의 동생 이야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01616
한자 名地官朴尙義-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영구리
집필자 이동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담|풍수지리담
주요 등장인물 박상의|박상의 동생|박상의 부인|상제 삼 형제
모티프 유형 가짜 박상의 행세를 한 동생|명당자리를 고른 박상의 동생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영구리에서 명지관 박상의 동생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선조광해군 때 명풍수로 이름을 날린 박상의(朴尙義)와 관련된 이야기로서 지술(地術)을 전혀 모르는 동생이 박상의 행세를 하고 다니며 묏자리를 써 주었는데 마치 박상의가 써 준 것처럼 명당자리를 잘 잡아 주었다는 이야기이다.

[채록/수집상황]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영구리 주민 최신경[남, 72]이 구연한 것을 채록하여 1975년 서원대학교 호서문화연구소에서 출간한 『진천의 민속』에 수록하였다.

[내용]

박상의는 유능한 지관(地官)이었으나 박상의의 동생은 지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박상의 동생 부인이 형님처럼 돈을 벌어 와 보라며 바가지를 긁자 박상의 동생은 다짜고짜 쇠주머니가 있느냐고 물었다. 부인이 시아주버니 집에서 쇠주머니를 훔쳐 오자 동생은 쇠주머니를 가지고 지관 행세를 하며 박상의의 고향인 충청남도 아산으로 향하였다.

아산에 도착하자 마침 초상난 집이 있어 들어가 보니 지관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박상의 동생은 아는 게 없어 한구석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그런데 상제가 그 모습을 보고는 다른 지관들처럼 서로 자기가 잘 안다고 떠들지 않는 모습이 범상치 않다고 생각하여 사람을 시켜 박상의 동생을 따로 불렀다. 자신을 ‘박상의’라고 소개한 동생은 지관 행세를 하는 것이 탄로 날까 봐 걱정이 되었지만, 이튿날 상제 삼형제와 함께 선산을 보러 가기로 했다.

이튿날 아침을 먹고 상제 삼형제와 함께 상제의 조부 산소를 보러 간 박상의 동생은 산세가 좋다며 묏자리를 잘 썼다고 칭찬했다. 그러나 다음으로 부친의 묏자리를 봐 달라는 말에는 응하지 못하고 그만 줄행랑을 치고 말았다. 그러다가 발이 칡덩굴에 걸려 넘어졌는데, 상제가 쫓아 내려오다가 “여깁니까?” 하고 물었다. 그 말에 박상의 동생은 여기가 참 좋다고 얼떨결에 둘러대고 말았다.

관상명정을 쓰기 전 박상의 동생은 셋째 상제가 혼자 있을 때 이렇게 말하였다. “관을 엎어 놓고 관상명정을 쓰면 자네가 자네 형들보다 잘될 걸세.” 셋째 상제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면서도 막상 관상명정을 쓸 때가 되었을 때는 그 말을 기억하고 몰래 관을 엎어 놓았다.

그 후 동생이 큰돈을 벌어 왔다는 소식을 들은 박상의는 쇠주머니가 없어진데다 능력 없는 동생이 부자가 된 것을 수상히 여겼다. 그리하여 박상의는 동생의 행적을 눈치채고 물어물어 새로 장사를 지냈다는 어느 집을 찾아가게 되었다. 행여나 동생이 묏자리를 잘못 써 주었을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박상의는 동생이 자신의 이름을 대고 지관 행세를 하며 묏자리를 써 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상제를 따라 묏자리에 가 보니 묏자리를 제대로 써 주었다. 그런데 거기가 복시혈(伏屍穴)이어서 시체를 엎어 놓아야 하는 자리였다. 그 이야기를 했더니 셋째 상제가 몰래 관을 엎어 놓은 사실을 실토했다. 박상의는 동생이 자신의 이름으로 지관 행세를 했다는 사실을 밝히고, 모든 것이 제대로 처리된 것은 하늘이 도운 것이라고 말했다.

[모티프 분석]

「명지관 박상의 동생 이야기」의 주요 모티프는 ‘가짜 박상의 행세를 한 동생’과 ‘명당자리를 고른 박상의 동생’이다. 풍수 설화이면서도 독특하게 유명한 지관의 동생이 지술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형의 행세를 하며 우여곡절 끝에 묏자리를 잘 써 주었다는 다소 황당하면서도 흥미진진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동생이 형을 사칭하여 묏자리를 써 주었는데도 박상의가 한 것처럼 명당을 잘 골랐다는 것은 그만큼 박상의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가짜 박상의가 엉터리로 묏자리를 썼지만, 하늘의 도움으로 박상의의 명예를 지킬 수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참고문헌]
  • 『진천의 민속』(서원대학교 호서문화연구소, 1975)
  • 인터뷰(초평면 영구리 주민 최신경, 남, 7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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