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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풍수 도선 이야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01607
한자 明風水道先-
영어의미역 Story of Famous Geomencer Doseon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금곡리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
집필자 박명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전설|풍수담
주요 등장인물 도선|묘 주인|주인영감
모티프 유형 명당 복|명당 임자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금곡리에서 명풍수 도선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채록/수집상황]

「명풍수 도선 이야기」는 서원대학교 호서문화연구소에서 초평면 금곡리에 사는 김학수[남, 80]에게서 채록한 것으로, 1997년 편찬한 『진천의 민속』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옛날에 도선(道先)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풍수에서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일인자였다. 이 도선이 중국에 가서 10년이나 지리 공부를 했다. 10년을 배우고 나니 더 이상 배울 게 없다고 생각하여 조선에 나와서 어떤 묘를 하나 보게 되었다. 쓰긴 잘 썼는데 ‘수만광중(水滿廣中)’이라, 시신을 묻은 광중에 물이 잔뜩 고여 있는 형상이었다.

아무리 살펴봐도 이상해서 묘 주인을 찾아가 인사를 하고, “그 묘가 이 집안의 산소라는데, 아는 건 없지만 내가 보니 수만광중이라 광중에 물이 가득합니다.”고 말하였다. 주인이 깜짝 놀라 “그러냐.”고 하면서, “하여튼 파 봅시다. 파 보면 알 거 아니겠습니까.” 하고 말했다. 그리하여 사람을 시켜 묘 옆을 파고 굴을 뚫어 물이 있나 없나 봤더니, 물은커녕 시신이 뾰얗게 잘 있었다.

멀쩡한 묘를 두고 물이 찼다고 했으니 염치가 없어도 이만저만 없는데 묘 주인이 도선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였다. 그 사람 말이, “내가 우리 아버지를 여기에 모시고 늘 궁금했는데, 당신 때문에 이렇게 파서 확인을 했으니 이제 마음이 놓입니다.” 하고 몇 번이고 고맙다고 하였다.

도선은 할 말이 없어서 그 묘 위에 앉아서 그 언저리 묘들을 모두 그렸다. 그렇게 그려 가지고는 중국으로 갔다. 10년 공부 도로아미타불이 됐으니 어떡하면 좋으냐고 선생에게 가서 한탄을 하였다. 그런데 그 선생이 그림을 자세히 보는데 아무래도 수만광중이 분명하였다. “선생님이 봐도 수만광중이 분명하다면 어떻게 된 일입니까?” 하고 선생에게 물었다. 그러자 선생이 하는 말이, “그 사람이 효자라. 하늘이 낸 효자. 그런 효자는 수화(水火)가 범치 못한다. 불이고 물이고 범치 못해서 그자리가 물날 자리이지만 효자라서 물이 범치 못했다.” 하였다.

이에 도선이 다시 조선으로 돌아와 다시 그곳으로 찾아갔다. 직접 그 주인에게 가지는 못하고 근방에서 그 집 내력을 물었다. 그랬더니 3대 효자라고 칭찬이 자자하였다. 그리하여 도선은 그 묘 임자에게 칭찬을 많이 하고는 거기를 떠났다.

도선은 어머니가 죽은 지 오래 되었으나 마땅한 명당자리를 찾지 못하자, 늘 어머니의 뼈를 자신의 바랑에 넣어 짊어지고 다녔다. 어디든지 명당자리만 발견하면 묻으려고 그렇게 돌아다녔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가만히 보니 누구네 집인지는 알 수 없으나 뒤꼍 장독대 옆이 그야말로 명당자리였다. 어쩔 수 없이 도선은 어머니니 유골을 묻으려고 한밤중에 호미로 땅을 팠다. 그런데 살금살금 파는데도 박박 소리가 났다.

조심해서 땅을 파고 있는데 안에서 주인 여자가 “여보 영감, 저 뒤에서 자꾸 박박소리가 나오.” 하였다. 그러니까 그 영감이 하는 말이 “저 도선이라는 놈이 즈 어미를 우리 장독대 옆에 쓸려고 그러는구만.” 하는 것이 아닌가. 도선이 그 얘기를 듣고 놀라서 땅을 파다 말고 쫓아 들어갔다. 들어가서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었다.

그 주인영감은 수염이 덥수룩했는데, “거 당신 어머니 묘는 암만 명당을 찾아 써도 안 돼. 명당은 다 임자가 있는 것이라, 당신 어머니는 저 진개명개[갯벌이나 흙탕물이 지나간 자리에 앉은 검고 보드라운 흙]에 한 자리가 있으니, 거기 갔다 쓰면 들밥은 실컷 먹을 것이오.” 하고 말하였다. 도선은 두말도 하지 않고 주인영감이 시키는 대로 어머니를 묻었다.

그런데 그 해에 도선의 어머니 묘 주위에 있던 벼들이 안 되었다. 그리하여 다음 해에 논주인 부인이 밥을 내와서는, “아, 왜 이리 벼가 안 되나. 여기 묘에 밥이나 한 그릇 갔다 줘 봐야겠다.”고 밥을 먼저 떠다 갔다 놨는데, 그래서인지 그 해에는 그 집 논만 소복하게 벼가 잘 되었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도 들밥을 가져가면 으레 먼저 떠다 놓곤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모두 벼가 잘 되었다. 그 후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 도선의 어머니 묘 가까이 갈 수 없는 사람들은 들밥을 먹기 전에 음식을 멀리 던지면서 ‘고시네!’ 했다고 한다. 도선이 성이 고씨였기 때문이다.

[모티프 분석]

풍수지리에서는 명당은 반드시 덕(德)과 선(善)을 쌓아야 차지할 수 있다거나, 최고의 명풍수(名風水)를 초빙해서 명당을 잡는다 할지라도 그 땅을 쓸 사람이 생전에 악행을 많이 했으면 소용없는 허혈(虛穴)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명당 복’과 ‘명당 임자’라는 모티프에서도 알 수 있듯 「명풍수 도선 이야기」는 예부터 민간에서 전해 오는 풍수담의 전형을 보여 주고 있다. 명당은 주인이 따로 있어서 억지로 명당을 찾아서 쓰려고 해도 인물이 맞지 않으면 화를 입고, 이와 반대로 참된 명당의 주인이라면 굳이 길지를 찾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명당을 사용하게 된다는 민간의 인식이 오롯하게 담겨 있는 이야기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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