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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01366
한자 歲時風俗
이칭/별칭 세시,월령,세절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집필자 전재원

[정의]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한 해를 단위로 일정한 시기에 관습적·주기적·전승적·반복적·의례적으로 거행하는 행동 양식이나 생활 행위.

[개설]

세시풍속은 음력 정월부터 섣달까지 같은 주기에 반복하여 거행하는 주기전승(週期傳承)의 의례적인 행위이다. 이를 세시(歲時), 월령(月令), 세절(歲節)이라고도 한다. 일 년 혹은 수년을 단위로 같은 시기에 반복되는 주기전승 의례이기에 시계성과 주기성·순환성을 특징으로 한다. 또한 세시풍속은 농사의 시작에서 파종, 수확, 저장에 이르기까지 농경주기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음력 1월]

1. 설날

새해의 첫날로서 세수(歲首) 또는 연수(年首)라고도 한다. 아침에 온 식구가 설빔으로 새 옷을 갈아입고 먼저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는데, 이 때 4대조까지 모신다.

차례를 지낸 다음 집안의 손윗사람들에게 세배를 드린다. 그 다음, 친척이나 가까운 이웃의 노인들을 찾아다니며 세배를 올린다. 이 때 연장자들은 손아랫사람에게 “복 많이 받아라. 소원 성취해라.” 등의 덕담을 한다.

설날은 조상의 산소에 가서 성묘를 하는데, 이런 설날의 풍속은 진천뿐만 아니라 현재까지도 전국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설날의 풍속만 보아도 주지할 수 있듯이 손윗사람인 연장자뿐만 아니라 현존하지도 않는 선조들에게까지도 공경을 했으며, 정성을 다하여 모심을 알 수가 있다.

설날에는 줄다리기 놀이를 위주로 하여 윷놀이, 제기차기 등을 한다. 줄다리기는 암줄과 수줄로 편을 나누어서 경기를 한다. 경기에 임하기 전에 당산나무나 서낭당에 가서 치성을 드린 다음 경기를 하였다고 한다. 줄다리기 경주를 할 때 암줄이 이겨야 그해 농사가 풍년이 든다고 한다. 이들의 싸움에서 풍년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수줄 편이 져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진천 지역에서는 설날부터 12일 동안을 일진(日辰)에 의해서 유모일(有毛日)과 무모일(無毛日)로 나눈다. 설날이 유모일, 즉 쥐·소·호랑이·토끼·말·양·원숭이·닭·개·돼지 등의 날이면 한 해 농사가 풍년이 들며 그와 반대로 무모일, 즉 용·뱀 등이 날에 들면 그해는 흉년이 든다고 한다.

우리 선조들은 새해의 첫날을 매우 중시하였다. 그 해의 운수라든지 풍작·흉작을 설날을 기점으로 자연력에 의존하여 점을 치고 있으며, 그날의 놀이도 협동·단결을 필수로 하는 농경생활에 맞게 단결력을 요구하는 줄다리기·윷놀이 같은 것을 중점으로 했다.

2. 입춘(立春)

진천 지역에서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집의 기둥이나 문설주에 입춘이 드는 시간에 맞추어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수여산부여해(壽如山富如海)’, ‘거천재래백복(去千災來百福)’ 등 소원을 나타내는 글을 써서 붙인다. 그리고 논에 가서 보리 뿌리를 캐 봐서 그 해 농작물의 풍흉을 점치는데 보리 뿌리가 세 갈래면 풍년이고 갈래가 없으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 입춘에 행해지는 의례나 행사는 특별한 것이 없고 그저 평상시의 생활처럼 변함없이 생활하거나 간혹 절에 가서 빌기도 한다. 그리고 이날은 보리밥을 먹는 풍습이 있다고 하는데 연유는 잘 모른다.

3. 정월 대보름

정월 대보름 전날인 14일 밤에는 온 집안에 불을 켜고 밤새도록 잠을 자지 않았다. 이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된다고 하여 보름새기를 한다.

그리고 14일에는 풍년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과일나무 장가들이기’를 하는데, 나뭇가지 사이에 돌멩이를 얹어 놓고 과일을 많이 달리게 해달라는 기원을 한다. 이와 더불어 이날 떡을 찌는데 노간주나무로 불을 때면 풍년이 든다고 하며, 이때 소나무를 지붕에 얹기도 한다.

14일 밤에는 귀신이 내려와 신발을 훔쳐간다고 하여 신발을 방안에 들여놓기도 하고 아이들을 밖에 나가지 못하도록 했다. 또한 일꾼들은 밥을 아홉 사발을 먹고 나무 아홉 짐을 해 오면 큰 부자가 된다고 하여 아침부터 주식으로 포식을 한 다음 산에 가서 나뭇짐을 해온다. 밥 아홉 그릇과 나무 아홉 짐은 대단히 추상적인 말로써 그만큼 열심히 일을 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것으로 백성들의 생활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암시해 주고 있다.

14일에는 소의 혼이 밤이면 제방으로 나간다고 하여 혼이 나가지 못하도록 고사떡을 갖다놓기도 했다. 이 날의 놀이로는 ‘타작놀이’, ‘더위팔기놀이’ 등이 있는데 밤이면 아이들이 수수깡으로 벼이삭이나 보리이삭처럼 만들어 퇴비 위에 심어놓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그 이삭들을 타작한다고 두드린다. 이 때 집집마다 미리 음식을 장만하여 두었다가 아이들이 오면 내주는데 이것을 ‘타작놀이’라고 한다.

‘더위팔기놀이’는 14일 해 뜨기 전 만나는 사람에게 그 상대방의 이름을 부르고 무심코 상대방이 대답할 때 ‘내 더위’하면 일 년 더위가 상대방에게 옮겨 본인은 한 해 동안 더위를 모르고 여름을 난다고 한다. 이 때 상대방이 먼저 눈치를 채어 ‘내 더위’라고 하면 본인이 상대방의 더위까지 합해 그 해 두 배의 더위를 먹는다고 한다.

그리고 정월 대보름인 15일은 아침 식전에 호도·잣·밤 등을 깨물어서 지신에게 먼저 던져주고 먹으면 일 년의 부스럼이 없어진다고 하며, 귀가 밝아지라고 귀밝이술을 먹는다. 또한 15일은 약밥을 지어서 찰밥으로 까마귀에 제를 지내는데 이날은 처가에 가서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한다.

15일 저녁에 보름달이 뜨면 마을 동산에 올라가서 달을 향해 한 해의 소원을 비는데, 처녀 총각은 혼인 성취를 빌고 아낙네는 무위질병과 집안의 안녕을 빈다고 한다. 그리고 진천에서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달빛을 보아서 한 해 농사를 점친다고 하는데, 달빛이 빨갛게 물들면 가뭄이 들어 농사가 흉년이 들고, 하얗게 물들면 홍수가 나서 흉년이 든다고 한다. 그래서 달빛을 보고 그해의 풍년을 기원하며 빌기도 한다.

4. 상자일(上子日)

정월 들어 첫째 자일(子日)[쥐의 날]을 상자일이라고 한다. 상자일에는 농부들이 들에 나가 제방과 논두렁에 불을 놓아 잡초 등을 태워 동면하고 있는 벌레와 유충을 없애는데, 이것은 농사에 피해를 주는 해충을 없애고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서이다. 진천 지역에서도 마찬가지로 행해지고 있다.

상자일에는 인근 동리 사람들이 패싸움을 하여 힘자랑과 친목을 도모함으로써 단결력을 과시했다. 그리고 저녁에는 콩을 솥에 넣고 볶는데 콩을 볶음으로 해서 쥐가 죽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때 볶은 콩은 저녁에 밥으로 먹는다. 이날 밤에는 가족들이 둘러앉아 팀을 짜서 윷놀이를 즐기기도 했다.

또한 12지와 관련된 행사로는 소달기 날[上丑日], 용날[上辰日], 닭날[上酉日] 등이 있다.

1)소달기 날: 정월 들어 첫째 축일(丑日)을 소달기 날이라고 하며, 이 날은 소에게 일을 시키지 않고 쉬게 한다. 이 날 소에게 콩과 나물을 삶아 먹이면 살이 찌고 건실하다고 한다. 오늘날 쇠죽을 끓일 때 주로 콩깍지와 여물, 시래기 등을 넣는 것은 이것에서 유래한 것 같기도 하다.

2)용날: 정월 들어 첫째 진일(辰日)을 용날이라 한다. 용날에는 하늘에 있는 용이 땅에 내려와 우물에 알을 낳는다고 한다. 부녀자들이 아침 일찍 우물에 가서 물을 길어다[용알 뜨기라 함] 이 물로 밥을 지어 먹으면 그 해 운수가 좋고 농사가 풍년이 든다고 한다.

3)닭날: 이날에 부녀자들이 일을 하면 손이 닭발과 같이 된다고 하여 일을 하지 않는다. 또 부녀자가 남의 집에 가면 그 집의 닭이 죽는다 하여 피하고, 닭이 쪼아 먹는 곡식을 마당에 널지도 않는다.

4)인일(人日): 정월 초이레가 인일인데 이 날 날씨가 좋으면 농사가 잘 된다고 한다. 보리 뿌리를 뽑아 그 수효에 따라 점을 치기도 하였다. 나라에서는 인일에 과거를 실시하면 훌륭한 인재를 얻는다 하여 인일제라는 과거를 실시하였다. 또한 인일에는 남의 집에 가는 것을 피했다. 다른 사람이 집에 와서 자면 운수가 불길하다 하여 만일 친척이나 인척이 와서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때에는 주인과 머리를 반대로 두고 자는 것이 법처럼 지켜지기도 했다.

[음력 2월]

2월 초하루에는 콩으로 속을 넣어서 송편을 만들고 머슴들에게 나이 숫자대로 떡을 먹이는데 이를 나이 떡이라고 한다. 나이 떡을 머슴들에게 먹이는 것은 이때부터 농사일이 시작된다고 해서 열심히 일을 하라는 뜻에서이다.

2월 초하루는 영등할머니가 얼어 죽은 날이라 해서 하늘에서 영등할머니가 내려온다고 한다. 그날 바람이 불면 딸을 데리고 내려오는 것이고, 비가 오면 며느리를 데리고 내려오는 것이라고 했다. 이날은 비가 와야 풍년이 든다고 전해진다.

초하루는 남의 집에 여자가 첫 손님으로 가면 재수가 없어 털이 있는 짐승이 잘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마을에서 나이가 많고 복 많은 남자가 새벽에 먼저 방문한 후에야 여자들이 남의 집에 갈 수 있는데 대부분의 여자들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이 날 하루는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집에 있었다. 또한 초하루에는 누가 어떠한 일을 하든지 탈이 없는 날이라고 해서 아이들이 잘못을 해도 용서해 주었고, 이사 가는 날로 정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이 날은 노래기날이라 하여 콩을 볶는데, 이를 ‘좀 볶기’라 한다. 좀 볶기를 하면 노래기가 없어진다고 한다. 또한 좀생이별을 찾아서 그 위치에 따라 그 해의 농점(農占)을 쳤는데, 좀생이별[겨울 남쪽 하늘 황소자리에 있는 플레이아데스성단에서 가장 밝은 6~7개의 별의 우리말 이름이며, 우리 별자리에서는 이십팔수(二十八宿)의 열여덟째 별자리의 별인 묘성(昴星)에 대한 속칭]이 달 뒤로 돌아가면 그해 농사가 풍년이고 앞으로 나오면 흉년이 든다.

[음력 3월]

1. 한식(寒食)

동지 후 105일째 되는 날이 한식일이며, 2월이나 3월 안에 든다. 한식날은 쑥떡으로 차례를 지내며 조상을 모신 산소에 가서 성묘를 한다. 이날은 뜨거운 음식을 먹지 않고 찬밥을 먹는데 불을 조심하라는 뜻에서 이날 하루만은 찬밥을 먹는다고 한다. 한식 때쯤 봄갈이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데 그만큼 얼었던 날씨가 풀리고 생명력이 움트는 시기인 것이다. 한식날은 겨울잠을 자던 모든 동물들이 땅속으로부터 나온다고 한다. 이때 동물들이 밖으로 나와서 처음 보는 돌멩이를 핥고 돌아다닌다고 한다. 한식날은 식목일로 지정되어 나무를 심고 조상의 묘에 성묘를 한다. 불조심 캠페인과 함께 식목일 행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걸 보면 선조들이 한식날만큼은 불을 사용하지 않고 찬밥을 먹는 풍속과 유관하다고 할 수 있다.

2. 삼짇날

3월 3일은 3이라는 숫자가 겹쳐 있는 날이라 하여 길일(吉日)로 여겨 왔다. 삼짇날은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고 하는데, 이 때 쯤 진천에는 제비들이 날아다니기 시작한다. 나비를 보면서 한 해의 운수를 점쳤는데, 처음 본 나비가 흰나비이면 그해 상복(喪服)을 입게 되고 호랑나비를 보면 운수 대통한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흰나비보다는 호랑나비가 널리 분포되어 있고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말들이 전해지지 않았나 싶다. 삼짇날에는 진달래꽃전을 부쳐서 먹었으며, 술과 꽃전[花煎]으로 동네 노인들을 대접하기도 했다.

[음력 4월]

초파일[初八日]은 석가모니(釋迦牟尼)가 탄생한 석탄절(釋誕節)이다. 삼국 시대부터 고려 중엽까지 불가에서 가장 성했던 이 행사는 지난 1975년부터 공휴일로 정해져 더욱 성행하게 되었다. 이 날 절에 가서 연등(燃燈)을 하고 불공을 올리는 풍속은 지금까지도 그대로 전해져 불도는 물론 보통 사람들도 절을 찾고 부처님의 덕을 기린다. 또한 보통 민가에서는 느티떡과 검은 콩, 어채, 미나리강회 등을 만들어 먹으면서 부처님의 은공을 빌기도 한다. 쑥 범벅, 수리치 범벅 등도 유명한 음식이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는 계절 음식을 집에서 만들어 먹는 풍습은 사라지고 절기 음식을 먹으려면 시장에서 먹을 수 있을 뿐이라 아쉬움이 남는다.

[음력 5월]

단옷날[端午日]은 5월 5일인데 ‘수리’, ‘수뢰’, ‘중천절’이라고도 하였다. 단옷날 아침에는 창포(菖蒲)를 끓인 물로 세수와 머리를 감고 녹색과 홍색의 옷을 많이 입는다. 창포물에 머리를 감으면 머리털이 빠지지 않고 윤기가 있으며 소담하다고 하며, 소녀들은 창포에 맺힌 이슬을 받아 얼굴에 바르면 예뻐진다고 하여 즐겨 했다고 한다.

단옷날 먹는 음식으로는 쑥을 멥쌀가루에 섞어 만든 수레바퀴 모양의 쑥떡이 있다. 이 떡의 모양 때문에 단옷날을 ‘수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 이 날 뜯는 쑥과 익모초는 약효가 있다 하여 잘 보관하게 되는데, 쑥은 방문 위에 걸어 놓아 독기를 없애고 익모초는 여름에 더위를 먹었을 때 약효가 있다고 한다. 또한 단옷날 약쑥을 뜯어서 하룻밤을 재워 두고 그 쑥 김을 산모에게 쏘이면 산모의 회복이 빠르고 여러 가지 병이 잘 낫는다 하여 들로 쑥을 캐러 다니기도 했다.

단오놀이로는 남자는 씨름, 여자는 그네뛰기가 있다. 그네뛰기는 흔히 동네 어귀의 큰 느티나무에 새끼를 꼬아 만든 동아 밧줄로 매는데 단옷날 그네를 뛰면 모기에 물리지 않는다 하여 성행하였다. 그리고 단오는 우리 민족의 큰 명절이기 때문에 이 날은 특별히 남녀가 같이 어울려 그네를 뛸 수 있었다. 단오를 제외한 다른 날들은 감히 밝은 대낮에 남의 이목이 두려워 그네를 뛸 수 없었고 늦은 밤이나 되어야 동네 처녀들이 모여서 그네를 뛸 수 있었다.

씨름은 주로 냇가 모래밭에서 샅바를 매고 힘과 기술로 상대방을 넘겨 쓰러뜨리면 이기는 것이다. 씨름에서 우승한 사람을 장사(壯士)라고 하여 상으로 황소나 광목, 포목 등을 주었다.

[음력 6월]

6월 15일은 유두(流頭)라 하는데 부녀자들이 동쪽으로 흐르는 맑은 냇물을 찾아 머리 감는 풍속이 전한다. 예부터 동쪽은 밝고 맑다는 뜻이 있어서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으면 길조가 있고 더위를 이긴다고 믿었다. 또한 논에 가서 빈대떡을 부쳐서 버리면 논의 벼가 잘 된다고 해서 들기름을 써서 빈대떡을 부치고 물가에 놓고 고사를 지낸다. 고사를 지낸 다음 빈대떡을 이웃과 나누어 먹으면서 친목을 다졌는데, 빈대떡을 논에 가서 버리는 행위는 논에 가서 기름 냄새를 피워야 벌레가 없어진다고 해서 행해졌다. 유두일에는 새해의 밀가루로 국수나 떡을 마련하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냈다. 현재 유두절의 이런 행사는 전해지지 않고, 이날 동네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물가에 나와서 물에 발을 담그고 수박이나 참외를 먹는다.

[음력 7월]

1. 복(伏)날

복에는 초복(初伏), 중복(中伏), 말복(末伏)의 삼복(三伏)이 있다. 하지(夏至)로부터 세 번째 경일(庚日)이 초복, 네 번째 경일이 중복, 입추(立秋)로부터 첫째 경일이 말복이다. 이 날은 찌는 듯한 더위를 피하여 시내에서 물고기를 잡아놓고 술과 함께 먹거나 개를 잡아 개장을 만들어 먹어 몸을 보신하면서 더위를 피한다. 진천 지역에서는 지금까지도 이런 풍습들이 이어져 복날이면 으레 더위를 피해 시내나 산으로 가기도 한다. 일 년 열두 달 편히 쉴 날이 없었던 조상들은 찌는 듯한 불볕더위를 벗어나 이 날 만큼은 사람들과 어우러져 시내에서 목욕을 하거나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면서 술을 마시며 피로를 풀었다. 이런 잠깐의 휴식들이 생활의 큰 활력소가 되어 그들 노동력의 원동력이 되었다.

2. 칠석(七夕)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애타게 서로를 그리워하다가 일 년에 한 번 만나는 날이다. 아낙네들은 북두칠성을 보며 무병장수를 빌고 칠성당(七星堂) 앞에 백설기를 쪄 놓고 소원을 빌기도 한다. 그리고 처녀들은 바느질을 잘 하게 해달라고 비는데, 옛날에는 여성이 필히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바느질 솜씨가 들어가기 때문에 이런 소망이 있지 않았나 싶다. 또한 소년들은 습기 찬 장롱 속의 책들을 햇볕에 내놓아 말리며 학문이 높아지기를 기원한다.

칠석날 아침저녁으로는 대개 비가 오는데, 아침의 비는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기쁨의 눈물이고 저녁의 비는 이별해야 하는 슬픔의 눈물이라 한다.

칠석날은 터주단지에 곡물을 올려놓고 집안의 안녕을 위해 불공을 드린다. 몇몇 집에서는 이웃에서 들어오는 물건들을 왕신(王神)단지 위에 올려놓고 제(祭)를 지내기도 한다. 왕신단지를 모시는 집안에서는 무엇보다도 왕신단지를 최고로 친다. 이날 제사를 올리지 않으면 집안에 분란(紛亂)이 일어난다고 하며, 섬김을 소홀히 했을 때도 큰 재앙이 닥친다고 믿는다.

진천에서는 아이들이 잘못했을 때 “왕신단지 같다.”라고 말을 했는데, 그만큼 왕신단지를 두려워했으며 높이 받들었다. 아직까지도 몇몇 집안에는 왕신단지를 모신다고 하는데, 그전처럼 신격화하는 일은 없다고 한다.

3. 백중(伯仲)

진천 지역에서는 백중 무렵이 일 년 중 가장 한가한 날들이 계속되는데, 이 때 쯤 농사꾼이나 머슴들은 조금 편해질 수 있었다. 백중날을 일꾼들의 명절이라고 한다. 이 날 만큼은 일이 있어도 일을 하지 않는다. 특별히 장만한 밥을 먹고 주인에게 새 옷과 백중 돈을 타서 노는데, 이날 장터에는 특별히 백중장이 선다. 백중장에선 백중날에 임하여 씨름판이 벌어지고 농악이 있어서 농사꾼 노비들이 맘껏 즐길 수 있었다. 백중날은 또 총각이나 홀아비를 장가들여 주기도 하는데, 마을에서 돈과 곡식을 추렴해서 살림을 장만해 준다. 백중날은 저녁 늦게까지 먹고 마시고 놀며, 그 동안 쌓였던 피로를 풀고 주인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기도 했다.

백중이 가까워지면 밭농사가 거의 끝나게 되어 호미가 필요 없으므로 호미를 씻어 잘 보관해 둔다는 ‘호미 씻기[洗銑]’라는 행사를 마을별로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날 하루를 즐긴다. 특히 그 동네에서 농사가 제일 잘 된 상머슴을 뽑아서 말이나 소에 태워 마을을 돌며 축하해 준다. 또 금년 가을에는 장가를 들게 해주겠다는 주인의 약속도 받아낸다. 우리 속담에 ‘백중날 상머슴 장가간다.’라는 말이 여기에서 나왔다. 그러나 지금은 옛날의 정겨운 풍습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진천 지역에서는 사회단체인 진천문화원이 주관하는 민속행사로 그 명맥을 겨우 이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음력 8월]

추석(秋夕)은 달거리 중에서도 큰 명절에 속하며 중추절, 한가위, 가배(嘉俳)라고도 부른다. 전국적인 큰 명절이기도 한 추석은 진천 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8월에는 온갖 곡식들이 성숙하고 풍요로워지는데 추석에는 햇곡식과 햇과일로 조상의 은덕에 감사하다는 뜻으로 차례를 지내며 산소에 가서 성묘를 한다.

추석에 행해지는 놀이로는 거북놀이, 소 놀이, 강강술래, 달맞이 등이 있다. 거북놀이는 수숫대 잎이나 짚을 써서 거북이 모양과 농기를 만들어서 어른들은 농악을 치고 동네 아이들이 거북이 안으로 들어가서 거북이가 되며 마을 사람들이 뒤를 따른다. 마을의 집집마다 들어가서 농기를 든 사람이 우물 옆에 그 농기를 세워 놓고 거북이는 안마당에 들어가서 반주에 맞추어서 무병장수를 위해 한바탕 논다. 이런 놀이가 끝나면 집주인이 음식을 장만하여 대접한다. 소 놀이 또한 거북놀이의 일종으로 무병장수를 빌고 동네 어귀의 잡귀들을 쫓는다는 뜻에서 행해졌다.

진천의 일부 작은 마을에서는 동네 청년들이 짚으로 만든 도롱이[옛날의 비 옷]를 등에 걸치고 거북이 차림을 하여 집집마다 도는데, 거북놀이와 같이 찾아가는 집집마다 마당에는 미리 음식을 장만해 놓고 있다가 이들이 오면 대접을 하기도 했다.

추석날 밤에는 강강술래와 달맞이가 행해졌다. 강강술래는 여자들의 놀이로써 마을 여자들이 손을 맞잡고 둥그런 원을 만들어서 돌아가면서 목소리가 크고 좋은 사람이 먼저 선창을 하면 후렴구 부분은 다같이 “강강술래”하고 부른다. 강강술래를 하기 위해서 동네 처녀들은 초저녁부터 달이 가장 환히 보이는 동네 어귀에 와서 달이 뜨기를 기다려 달이 솟아오를 때 각각의 소원을 빈다.

[음력 9월]

9월 9일은 ‘9’라는 양수가 두 번 겹치기 때문에 중양절(重陽節)이라고 한다. 중양절에는 3월 3일 삼짇날에 땅으로부터 나왔던 모든 동물들이 다시 땅속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동물들이 땅속으로 들어갈 때는 나올 때 돌멩이를 핥고 나오듯이 돌멩이를 핥고 들어가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겨우내 배고픔을 모르고 지낸다고 한다. 그리고 9월의 꽃이 국화인 만큼 진천 지역에서는 이날 국화전을 부쳐서 먹고 산소에 가서 제사를 지내는데 특별한 일이 있어서 추석에 제사를 지내지 못한 사람이 지내는 것이다. 중양절에 특별히 행해지는 행사는 없었다고 하며 평상시와 다름없이 생활을 한다. 중양절에 이렇다 할 행사가 없는 것은 추수가 한창일 때라 일손이 바쁘기 때문이라고 생각되는데 선조들의 합리적인 생활방식을 여기서도 엿볼 수 있다.

[음력 10월]

진천 지역에서는 10월을 상달[上月]이라고 한다. 이 달은 길일을 택하여 5대조 이상의 먼 선대에게 시제를 지낸다. 가을 떡을 만들어서 터주단지에 갖다 놓았다가 먹었으며, 힘든 농사일에 지친 소에게도 먹였다. 그리고 가신(家神)에게 제사를 지내는데 대문에 황토를 깔고 금줄을 쳐서 부정을 막았으며 지붕을 새로 올리기도 했다.

1)안택(安宅)굿: 10월 중에 길일을 잡아 성주에게 제사를 지낸다. 이것이 성주제인데 성주굿, 성주맞이굿이라 하며, 특히 진천 지역에서는 안택굿이라 하였다. 햇곡식과 과일을 정결하게 차리고 술을 빚어 성주께 바치며 집안의 평안을 비는 것이었다. 요즈음은 가을 떡이라 하여 시루떡을 해서 터주에 바치고 먹기도 했는데 지금은 많이 사라지고 있다.

2)시제(時祭): 10월 15일을 전후해서 시제를 지냈는데 요사이는 시향(時享)이라는 말을 더 많이 쓴다. 각 곳의 후손들이 모여 5대조 이상의 조상님의 묘소를 찾아가서 한꺼번에 지내는 제사로 제물은 종손(宗孫)이나 산지기가 장만한다.

3)손돌바람[孫乭風]: 10월 20일 경에는 바람이 무척 세차게 부는데 손돌바람 또는 손석풍(孫石風)이라고 부른다. 고려시대 뱃사공이었던 손돌이가 왕을 태우고 강을 건너던 중 배를 험한 곳으로 물고 갔다 하여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그 후로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손돌의 혼이 바람이 되어 분다는 전설이 있다. 날씨가 차츰 추워지기 시작하므로 부녀자들은 김장을 서두르는 달이기도 하다.

[음력 11월]

진천에서 맞이하는 11월은 동지(冬至)가 끼었다 하여 동짓달이라고 한다. 동짓날은 일 년 중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날로서 팥죽을 쑨다. 팥죽에는 찹쌀로 새알심[새알수제비]을 만들어 넣는다. 쑨 팥죽을 한 그릇 가득 떠서 장독대 위에 내다 놓고 동지 할머니를 접대한다. 옛날 중국의 얘기에 공공씨(共工氏)의 아들이 매우 불효자(不孝子)였는데, 이 불효자가 동짓날 죽어서 귀신이 되었다 한다. 그 귀신은 팥죽을 몹시 싫어하여 팥죽을 쑤어 악귀를 물리치게 되었다고 한다.

또 팥죽을 온 집안에 뿌리는 습속도 있다. 요즈음은 이사를 하는 날도 팥죽을 쑤어 행운을 비는 습속도 생겼다. 11월에 먹는 음식으로는 동치미가 제법 맛이 들어 별미이고, 곶감을 꿀물에 담그고 생강·잣·계피(桂皮)가루 등을 넣어 만든 수정과(水正果)도 유명하다.

[음력 12월]

섣달 그믐날을 음야(陰夜)라고 한다. 진천 지역에서 섣달 그믐날 새벽에 복을 받으라고 복조리를 집집마다 던져주는데, 이 복조리를 집안 기둥에 걸어놓으면 복이 들어온다고 한다. 이날 던져준 복조리 값은 초하룻날 받는다. 이것은 서로간의 무언의 약속으로 해마다 행해지는 행사이다. 그리고 그믐날 밤에는 웃어른에게 묵은세배를 한다. 밤에 자면 눈썹이 하얘진다고 하여 이날 잠을 자는 사람이 있으면 눈썹에 하얀 색을 칠해서 놀려주기도 한다. 그리고 아녀자들은 사당에 가서 새해의 안녕을 빌기도 한다.

[윤달]

진천에서의 윤달[閏月]은 한 달이 더 있는 달이라 무슨 일을 해도 탈이 없는 달로 되어 있다. 그래서 공달[空月]이라고도 하는데 부정(不淨)을 잘 타는 일을 많이 한다. 집을 수리하거나 이사를 해도 아무 탈이 없고 결혼이나 수의(壽衣)를 만드는데 좋다고 한다. “송장을 거꾸로 세워 놓아도 아무 탈이 없다.”는 과장된 속담도 여기에서 유래된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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