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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01350
한자 民間信仰
이칭/별칭 자연종교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전재원

[정의]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민간에서 오래 전부터 믿어져 온 신앙.

[개설]

민간신앙은 민간에서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종교적 또는 주술적 믿음 체계를 말하는데, 일반 종교처럼 교리나 교단이 체계화된 것이 아니라 일반 민중들의 생활 속에서 예전부터 전승되어 오는 자연적 신앙을 의미한다. 자연적 종교란 인간 본연의 종교적 욕구에서 발생하여 민간에서 일상적으로 믿어 온 신앙의 질서와 체계를 말한다.

이러한 민간신앙의 원류는 예부터 전통적으로 믿어 온 제천행사(祭天行事)이다. 고대신앙으로서의 제천행사는 민간신앙으로서 개인은 물론 공동의식으로 이어져 왔으나 오늘날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고 극히 드물게 행해지고 있다.

민간신앙은 매우 폭넓은 개념이어서 민속학에서도 한정된 분야에 그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마을신앙·가정신앙·무속신앙·풍수신앙·점복신앙, 그리고 자연물신앙 등이 모두 민간신앙에 들며, 금기(禁忌)·주부(呪符)·주술(呪術) 행위 등도 포함한다. 여기서는 진천 지역의 민간신앙을 개인신앙과 공동신앙으로 구분하여 살펴본다.

[개인신앙(個人信仰)]

개인적인 민간신앙은 주로 주부가 제주가 되어 장독대나 대청에 시루떡과 정화수(井華水)를 차려 놓고 치성을 올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선 한 집안의 평안과 영복(迎福)을 비는 고사(告祀)·안택(安宅) 등이 있다. 지금도 이 풍습이 남아 있는데,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나 집들이를 할 때에 사업이 번창하도록 빌거나 집안이 평안하기를 비는 의미에서 고사를 지낸다. 집안의 안녕을 수호하는 성주신에 올리는 성주제와 택지의 안전과 보호를 다스리는 터주[垈主]에 올리는 터주제도 있다.

부엌의 모든 일을 다스리는 불신[火神]인 조왕(竈王)할미와 주부의 수태(受胎), 출산을 다스리는 삼신(三神)할미에게 올리는 치성도 있다. 또한 집안에 따라서는 칠성신을 모시는 칠성제(七星祭), 산신을 모시는 산신제(山神祭), 숲속이나 길가에 돌을 쌓아 만든 성황당(城隍堂)에 올리는 성황제(城隍祭) 등이 있다.

특히 진천 지역에서는 문백면 평산리 평사부락에 있는 소두머니[牛潭]의 용신제(龍神祭)를 빼놓을 수 없다. 지금부터 20~30년 전만 하더라도 주부들이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치성을 드리고 집안의 행운을 빌기도 했다고 한다.

[공동신앙(共同信仰)]

부락의 공동신앙인 부락공동제도 개인제와 거의 비슷했으나 부락민 전체가 혼연일체가 되어 부락의 발전과 번영을 기원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진천 지역의 부락제는 원동의 성황제, 교성리 성황제, 문덕리 장승제, 미륵골의 미륵제(彌勒祭) 등이 있었다. 해마다 10월이면 부락민 전체가 합심하여 공동제를 올렸다고 하는데, 지금은 전해오는 맥이 끊긴 상태라 할 수 있다.

진천 지역에서는 조선시대부터 사직단(社稷壇), 성황단(城隍壇), 여단(厲壇)이 있어서 약 100여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매년 봄과 가을에 수령관리(守令官吏)와 백성들이 함께 모여 기도를 드리고 치성하였다고 한다.

사직단은 토지가 비옥하고 곡식들이 풍요하기를 기도 치성하던 제단이었다. 사직단은 학당리(學堂里) 앞산에 있었고, 성황단은 봉화산(烽火山)문안산(文案山) 사이에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 진천군청 근처로 추측된다. 여단은 관아로부터 북쪽에 있었다고 하는데 그 위치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성황단은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빌며 소원 성취를 기원하던 곳이었고, 여단은 여귀(厲鬼)를 제사 지내는 제단으로서 무주고혼(無主孤魂)이 된 귀신을 제사 지내던 곳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제단들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고 지금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으니 아쉬운 일이다.

다만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기우제(祈雨祭)를 지냈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가뭄이 극심하면 우선 현재 진천삼수초등학교 뒷산의 충혼탑(忠魂塔)이 있었던 곳에서 군민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기우제를 지냈다. 다음에는 문안산에 올라가서 올리고, 그 다음에는 진천읍 장관리 상산(常山) 즉 지금의 테마공원 옆 백원정 뒤편 산에서 올렸다. 그래도 비가 오지 않으면 소두머니에 모여 흐르는 물에 도리깨질을 하거나 키질을 하며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도리깨질이나 키질을 하는 이유는 도리깨나 키로 물을 치거나 날리면 물방울이 수증기가 되어 빨리 비가 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원시신앙의 한 형태인 미신에 가깝지만 그 까닭은 몰라도 소두머니에 기우제를 지내면 꼭 비가 왔다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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