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최석하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00828
한자 崔錫夏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신정리 원앙골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양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연극인|기자
출신지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신정리 원앙골
성별
생년 1935년연표보기
몰년 1977년 5월 12일연표보기
본관 경주
대표경력 제3대 충북 연극협회 지부장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 출신의 연극인이자 기자.

[개설]

최석하(崔錫夏)는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1935년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신정리 원앙골에서 최만석의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활동사항]

최석하는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상산초등학교를 다닐 때에는 칠판 가득 채워진 문제와 답을 그 이튿날 전부 암기했다는 말이 전해진다. 최석하의 부모는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못 배운 한을 풀기 위해 진천중학교를 졸업한 그를 청주공고 전기과로 유학 보냈다. 그러나 예능적 기질을 가지고 있던 최석하에게 공고 진학은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극단을 찾아다니며 공연을 즐겨 보았고, 구경한 내용을 옮겨놓기도 하였다.

서라벌예술대학을 졸업한 뒤 『충청일보』 기자로 활동한 최석하는 지방부장·문화부장·광고부장 등 업무부국장을 거쳐 『충청일보』 충주시 지사장을 역임하였다. 또한 1974년에는 한국기자협회장으로도 활동하였다. 그러나 최석하는 기자보다 연기자로서 두드러지게 활동하였다.

1962년에 방송국 성우로 재직하며 청주 연극계에 진출한 최석하는 「푸른 성인」, 「햄릿」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하였다. 1969년 희곡 데뷔 작품 「산적」에서 주역을 맡았고 직접 희곡도 썼으나, 가명으로 작품을 공연한 뒤 뒤늦게 자신의 작품임을 고백하여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1970년 10월 3일 청주시민극단을 창단하여 단원으로 활동하였고 대표까지 역임하였다. 이때 공연한 「오셀로」에서 오셀로 역을 훌륭히 소화해 관객들을 놀라게 하였다. 제3대 충북연극협회 지부장을 맡기도 하는 등 많은 활동을 하였으나, 1977년 5월 12일 42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저술 및 작품]

최석하가 연출 및 출연한 연극으로는 1955년 「선화공주」[원앙골], 1956년 「점백이」[원앙골], 1957년 「이차돈」[원앙골], 1958년 「월화삼경」[진천중학교] 등이 있다. 1962년 방송국 성우로 재직하면서 청주 연극계로 진출해서는 1966년 「푸른 성인」에 출연하였고, 1967년에 「불모지」, 1968년에는 「별은 밤마다」에 출연하였다. 그밖에도 1969년 연극 「산적」의 시나리오 작업과 함께 직접 출연하기도 하였다. 1970년 「햄릿」, 1971년 「오셀로」, 1975년 「혈맥」에 출연하였고, 그밖에 「최진사댁 경사」, 「즐거운 여행」 등 수십 편에 출연하였다.

[상훈과 추모]

청주시 문화상 연극 부문을 수상하였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