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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00808
한자 朴瓚熙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 75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정제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출신지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 75 지도보기
성별
생년 1897년 1월 29일연표보기
몰년 1972년연표보기
본관 밀양
대표경력 동아일보 기자

[정의]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밀양(密陽). 1897년(고종 34) 1월 29일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 75번지에서 출생하였다. 일본 유학시절 항일운동을 하였고, 졸업 후 『시대일보』·『동아일보』·『조선농민』의 기자, 이사, 간행자로서 항일문화운동을 하였다.

[활동사항]

박찬희(朴瓚熙)[1897~1972]는 일본 동경 조도전대학 정경학과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학업을 중단하고 3월 25일 귀국하였다. 김태하(金泰河)[진천군 이월면 중산리 520번지]·이규원(李揆元)·장인환(張仁煥) 등과 3·1만세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6개월의 옥고를 겪었다. 석방된 후 다시 동경으로 돌아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동경 유학생 조직인 학우회에서 백관수(白寬洙)·김도연(金度演) 등과 항일운동을 하였다.

1924년 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하여 최남선(崔南善) 등과 함께『시대일보』를 창설하고, 1925년에는 『동아일보』 기자로서 선우전(鮮于全)·이창휘(李昌輝)·김준연(金俊淵) 등과 ‘조선농민사(朝鮮農民社)’를 창립하고 중앙 이사직을 맡아 월간 『조선농민』을 간행하는 등 항일 문화투쟁을 전개하였다.

1936년 8월 14일 베를린올림픽의 마라톤 경기에서 우승한 손기정(孫基禎)의 가슴에 붙은 일장기를 말살하여 게재한 사건으로 『동아일보』가 정간 처분되자 퇴사하였다. 해방 후 정당생활을 하다가 1960년 7월 29일의 총선거에서 초대 참의원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5·16군사쿠데타로 정계를 떠나 은퇴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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