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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00661
한자 李挺
영어음역 I Jeong
이칭/별칭 춘길(春吉),사암(思庵)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사양리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전호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사양리
성별
생년 1297년연표보기
몰년 1361년연표보기
본관 청주(淸州)
대표관직 형부상서

[정의]

고려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청주(淸州). 초명은 춘길(春吉), 호는 사암(思庵). 문정공(文貞公) 이공승(李公升)의 5세손으로 할아버지는 판도총랑(版圖聰郞) 이창우(李昌祐)이고, 아버지는 낭성군(琅城君) 이계함(李季瑊)이며, 어머니는 도첨의참리(都僉議叅理) 김련(金聯)의 딸이다. 부인은 통례부사(通禮副使) 김계초(金繼貂)의 딸이다. 아들로 이거이(李居易)가 있다. 이정의 친족은 모두 현달하여 고려 후기의 세신대가(世臣大家)로서 영록을 누렸고, 이성계의 위화도회군 이후 집정 기간에는 유력한 지지 세력으로서 조선 건국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활동사항]

이정(李挺)[1297~1361]은 지금의 진천군 문백면 사양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났으며 매우 총명하여 모든 학문에 능통했다. 1325년(충숙왕 12) 29세에 문음(門蔭)으로 팔관보판관(八關寶判官)에 보임되었다. 이듬해 문과에 병과 2등으로 급제하여 봉거직장(奉車直長)을 거쳐 전법좌랑(典法佐郞)을 역임하였다. 1335년(충숙왕 복위 4) 판도정랑(版圖正郞)을 지내고, 지초계군사(知草溪郡事)로 나아가 선정을 베풀었다. 그 뒤 감찰·장령·전법총랑(典法總郞)을 역임하였고, 경상도찰방으로 나아갔다가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10년간 한가로이 지냈다.

1353년(공민왕 2) 중정대부에 개자(改資)되어 성균좨주에 탁용되었고, 이어 봉순대부판전교시사(奉順大夫判典校寺事)에 가자되었다. 1354년(공민왕 3) 판통례문사(判通禮門事)에 오르고, 1355년 판위위시사(判衛尉寺事)·보문대제학(寶文大提學)에 보임되었다가 다시 봉익대부(奉翊大夫)로 승위하여 우상시(右常侍)에 임명되었다. 1357년 영록대부우산기상시(榮祿大夫右散騎常侍)로 집현전학사에 올랐다. 공민왕의 각별한 총애를 입어 내불당(內佛堂)을 감역하였는데, 어제친필(御製親筆)의 「탄상하교문(嘆賞下敎文)」을 친수하여 공적을 찬양받았다. 1358년 벼슬이 형부상서(刑部尙書)에 이르렀다.

이정은 항상 청렴하고 검소한 것으로 자신의 율법으로 삼았다. 예의 법칙을 좇아 속된 것을 따르지 않았으며, 향리에 머무르면서 벼슬길에 나아가는 것을 구하지 않았다. 공민왕이 불러서 이정의 청렴하고 삼감을 가상히 여겨 높이 쓰려 하였으나, 다시 벼슬을 버리고 진천 옛 집으로 돌아가 지내다가 6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묘소]

묘소는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사양리 뒷산에 위치하며, 양촌(陽村) 권근(權近)이 지은 신도비가 있다.

[상훈과 추모]

아들 이거이의 녹공으로 삼조(三祖)를 추증할 때 서원백(西原伯)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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