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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00639
한자 宋儲
영어음역 Song jeo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낙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충청북도 음성군
성별
몰년 1445년연표보기
본관 진천(鎭川)
대표관직 상의원정

[정의]

조선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진천(鎭川). 진천송씨의 시조인 상산백(常山伯) 송인의 8세손이다. 아버지는 송광도(宋匡度)이다. 아들로 송석동(宋石同), 손자로 송일창(宋日昌)과 송일녕(宋日寧)·송일안(宋日安)을 두었다.

[활동사항]

송저(宋儲)[?~1445]는 문과에 급제하고 1417년(태종 17) 홍천현감이 되었다가 1422년(세종 4) 사헌부지평이 되었다. 1441년(세종 23) 평양소윤(平壤少尹)으로 있으면서 요동에서 보낸 동녕위(東寧衛) 천호(千戶) 김보(金寶)가 가지고 온 칙서를 받고 행궁에 이르러 전하였다. 이후 상의원정을 지냈다.

당시 조선의 정치적 상황은 세종의 뒤를 이어 즉위한 문종이 병약하여 재위 2년 8개월 만에 승하하고, 12세밖에 되지 않은 단종이 왕위에 올랐다. 어린 왕이 즉위하자 황보인김종서 등 대신의 권한이 커졌다. 이때 단종의 숙부인 수양대군권람·한명회 등을 통해 황보인김종서 등을 제거하였다. 또한 그의 강력한 경쟁자인 안평대군도 모반죄를 씌워 강화도로 유배한 뒤 사사(賜死)하였다.

실권을 장악한 수양대군은 영의정부사·이조판서·병조판서·내외병마도통사 등의 직책을 겸직하며 병권을 장악하였다. 한편 단종노산군으로 강등하고 영월로 유배 보낸 뒤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세조가 왕위에 오른 뒤 계속해 단종 복위 운동이 일어났다. 당시에 진천군 출신으로 송저의 아들 송석동이 문과에 급제하여 군수를 역임하고 있었다.

1456년(세조 2) 성삼문·박팽년·하위지·이개·유성원·유응부 등 사육신이 단종을 다시 즉위시키기 위해 동지를 규합하다가 사실이 발각되어 성삼문·박팽년 등이 살육을 당하였다. 이때 송저도 그의 아들 송석동과 손자 송일창·송일녕·송일안 등 삼형제와 일가친척이 함께 참살되었다. 이러한 송저 일가에 관한 활동이 『상산지(常山誌)』『진천군지』 등에 실려 전한다.

[묘소]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용산리에 위치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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