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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00610
한자 姜栢年
영어음역 Kang baek nyeon
이칭/별칭 숙구(叔久),설봉(雪峰),한계(閑溪),청월헌(聽月軒)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낙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충청북도 진천군
성별
생년 1603년연표보기
몰년 1681년연표보기
본관 진주(晉州)
대표관직 판중추부사

[정의]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문신.

[가계]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숙구(叔久), 호는 설봉(雪峰)·한계(閑溪)·청월헌(聽月軒). 증조할아버지는 강인(姜璘)이고, 할아버지는 강운상(姜雲祥)이다. 아버지는 강주이며, 어머니는 안동김씨로 김응서(金應瑞)의 딸이다. 부인은 김광수(金光燧)의 딸로 안동김씨이다. 아들은 강선(姜銑)강현(姜鋧)을 두었다.

[활동사항]

강백년(姜栢年)[1603~1681]은 1627년(인조 5) 문과 을과에 급제하고 사간원정언과 사헌부장령을 지냈다. 1646년(인조 24) 소현세자비 강빈의 옥사가 일어나자 홍문관부교리로서 강빈의 무죄를 주장하는 상소를 하였다가 사직되었다. 그해 문과 중시(重試)에서 장원하여 승정원동부승지에 올랐고, 이듬해 상소하여 전국에 걸쳐 향교를 부흥케 하였다. 1648년(인조 26) 사간원대사간으로서 다시 강빈의 신원(伸寃)을 상소하였다가 청풍군수로 좌천되었다.

1653년(효종 4) 승정원좌승지에 오르고 충청도관찰사와 강원도관찰사를 거쳐 1660년(현종 1) 예조참판으로서 동지부사(冬至副使)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1670년(현종 11) 이후 승정원도승지·이조참판 등을 역임한 뒤 현종이 승하하자 왕의 시책문(諡冊文)을 지었다. 예조판서·의정부우참찬·판중추부사에 이르렀다. 관직 재직 중에 청백하기로 이름이 높았으며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향년 79세로 세상을 떠났다. 한때 사직되었을 때와 만년에 진천군 문백면 도하리 한계(閑溪)마을에서 지냈었다고 전해진다. 강백년의 뛰어난 학행과 업적에 대한 내용뿐 아니라 충효에 관해 『진천군지』에 수록되어 전하고 있다.

[저술 및 작품]

고금의 좋은 말과 선한 정치 사례를 모아 『한계만록(閑溪謾錄)』을 지었다. 약간의 시문이 『설봉집(雪峰集)』에 실려 있다.

[상훈과 추모]

1690년(숙종 16)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청백리에 녹선(錄選)되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충청북도 청원군 오창면의 기암서원(機巖書院)과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면의 정퇴서원(靜退書院), 황해도 수안의 용계서원(龍溪書院)에 제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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