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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평윤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00572
한자 坡平尹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사송리|초평면 용정리
집필자 강민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세거지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사송리|초평면 용정리
입향시기/연도 조선 후기
성씨시조 윤신달
입향시조 윤상경|윤휘서|윤휘석

[정의]

윤신달을 시조로 하고, 윤상경·윤휘서·윤휘석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 성씨.

[개설]

파평윤씨(坡平尹氏)는 윤신달(尹莘達)을 시조로 하고, 윤상경(尹相徑)과 윤휘서(尹彙瑞)·윤휘석(尹彙晳) 형제가 각각 이주하여 백곡면 사송리초평면 용정리를 중심으로 세거하기 시작하였다.

[연원]

시조 윤신달은 고려조에 벽상삼한 익찬공신 삼중대광 태사(壁上三韓翊贊公臣三重大匡太師)를 지냈다. 그의 출생에 관하여 재미있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893년(진성여왕 7)에 파평산(坡平山) 아래 큰 못에 옥함이 떠 있는 것을 윤온(尹媼)이란 할머니가 건져 와서 열어보니 사내아이가 있었다. 할머니는 아이를 거두어 기르고 자기의 성을 따라 윤씨라 하고, 파평산 아래 못에서 나왔다 하여 본관을 파평(坡平)이라고 하였다. 파평윤씨의 중흥조는 문숙공(文肅公) 윤관(尹瓘)[ ?~1111] 장군이다. 조선조에 들어와서도 왕비 4명, 상신 11명, 대제학 1명, 호당 6명, 청백리 5명, 공신 19명, 문과 급제자 332명을 배출하여 조선조 500년 동안 크게 세력을 떨쳤다.

[입향경위]

조선 후기 명재(明齋) 윤개(尹槪)의 후손 윤상경이 충청남도에서 진천읍으로 이주하여 백곡면 사송리에, 회재(晦齋) 윤기(尹旣)의 후손 윤휘서와 동생 윤휘석이 함께 초평면 용정리 부창마을로 이주하여 세거하기 시작하였다.

[현황]

2000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진천군에 세거하고 있는 파평윤씨는 326가구 931명으로 나타났다. 최근 진천군에 있는 파평윤씨는 160여 가구이며, 진천군 백곡면 사송리를 중심으로 30여 호가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참고문헌]
  • 한국인의족보편찬위원회, 「파평윤씨」(『한국인의 족보』, 중앙교육자료개발원,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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