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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00393
한자 鎭川龍華寺石造如來立像
이칭/별칭 만덕불상(萬德佛像),송덕불상(頌德佛像)
분야 종교/불교
유형 유물/불상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신정리 584-4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정연승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석조 불상
제작시기/일시 통일신라 말~고려 전기
제작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재질 화강암
높이 705㎝
소장처 용화사 지도보기
소장처 주소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신정리 584-4
소유자 법주사
문화재 지정번호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38호
문화재 지정일 1984년 12월 31일연표보기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신정리 용화사에 있는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전기의 석조 불상.

[개설]

진천군 진천읍 신정리 584-4번지 용화사 경내에 있는 진천 용화사 석조여래입상은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측되며, 1984년 12월 31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38호로 지정되었다. 법주사에서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

[형태]

진천 용화사 석조여래입상은 화강암으로 조성되어 있다. 하단 폭이 170㎝, 높이가 705㎝에 이르는 거구의 서 있는 부처로, 몸체는 긴 기둥처럼 단순화되어 있다. 타원형의 얼굴 미간에는 백호(白毫)가 박혀 있고, 서쪽을 바라보고 있는 눈은 작아서 감은 듯 보이며, 코는 길고 큼직하며, 볼에는 보조개가 있어 전체적으로 은근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다.

몸체의 앞부분에는 목 부분에 삼도와 목걸이, 가슴 부분에 손과 연꽃줄기·불의가 조각되어 있다. 몸체 뒷부분은 머리 부분의 나발과 귀, 그리고 뒷덜미의 통견을 식별할 수 있는 선이 단순하게 보일 뿐, 마멸된 까닭인지 아무것도 조각되어 있지 않다. 전체적으로 조각은 단순하며 빈약하다.

그러나 얼굴이나 몸의 전체 윤곽, 그리고 옷 주름선의 표현 등은 단정하고 원만하여 전체적으로 위엄을 풍기고 있다. 법의(法衣)는 가슴을 거의 드러낸 채 여래상처럼 거칠고 얇은 통견을 입고 있는 모습이며, 하체는 U자 모양의 옷 주름이 중첩되어 표현되어 있다. 머리에는 팔각형의 보관을 쓰고 있다.

[특징]

진천 용화사 석조여래입상의 가장 큰 특징은 거불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큰 키에 비해 양감 없는 돌기둥형 신체, 거친 세부 표현 등은 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의 거대 불보살상의 특징을 보인다. 이 불상은 섬세하게 조각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언뜻 보면 불상으로 보기 힘들 정도이다. 그러나 목·팔 등을 치장한 구슬을 꿴 장식인 영락(瓔珞)과 왼손에 쥐고 있는 줄기와 오른손에 쥐고 있는 연꽃이 있어 불상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장신의 거구, 양감 없는 직사각형의 불신, 거칠게 표현된 세부 조각 등에서 충청도 지역에 남아 있는 고려시대 불상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 주고 있다.

[의의와 평가]

진천 용화사 석조여래입상은 충청남도 논산에 있는 관촉사의 석조여래입상이나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에 있는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처럼 고려시대에 유행하던 거불의 한 유형이다. 그리고 진천 용화사 석조여래입상진천읍의 중심에서 멀지 않은 지리적 배경으로 볼 때, 당시 진천 지역에 거주하던 호족 세력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 석불은 삼국을 통일한 신라 김유신 장군의 위업을 기리기 위해 세운 불상이라 하여 송덕불상(頌德佛像), 혹은 만덕불상(萬德佛像)이라고도 불린다. 또 『상산지(常山誌)』에서는 임진왜란 때 한양을 향해 북진하던 왜군이 진천에 이르러 불상 맞은편인 삼덕리에 진용을 갖추고 침입하려다, 눈앞에 10척 거구의 일원대장(一員大將)이 위풍당당하게 우뚝 서있는 것을 보고 놀라 주눅이 들어 피해가는 바람에 화를 면했다고 한다. 이처럼 진천 용화사 석조여래입상에는 국난에 얽힌 전설이 많아 호국과 관련하여 진천의 수호신으로 모시고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5.04.27 항목명 수정 진천 용화사 석불입상->진천 용화사 석조여래입상으로 수정(2015.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