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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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때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地理志)」에 고구려의 금물노군(今勿奴郡)을 황양군(黃壤郡)이라고도 한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고려사(高麗史)』「지리지(地理志)」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및 『여지도서(輿地圖書)』「충청도(忠淸道) 진천현(鎭川縣)」 조에는 금물노군은 고구려 지명으로 만노군(萬弩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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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때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 만노군(萬弩郡)이라는 지명은 『삼국사기(三國史記)』「김유신열전(金庾信列傳)」에 처음 나타난다. 진평왕 때 김서현(金舒玄)을 고구려와의 접경 지역인 만노군 태수로 파견하였는데 여기서 김유신(金庾信)이 태어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려사(高麗史)』「지리지(地理志)」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및 『여지도서(輿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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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 지역 주민의 생활인 동시에 생활의 계속, 또는 반복에서 이룩되어 전승되는 민간 공동의 습속. 민속(民俗)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집단마다 고유하게 전해 내려오는 생활양식이나 풍습·미신·속담·민담·전설·신화 등을 포함한 구전문학, 그리고 음악·무용 등의 문화 양식을 한데 묶어 이르는 말이다. 사회 집단이 주변의 자연환경과 다른 사회집단, 더 나아가 집단이 속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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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역사. 진천은 삼국시대부터 중요한 요충지로 여겨져 왔다. 백제는 일찍이 한성시대에 진천을 자신의 세력권에 넣었으며, 백제의 세력이 쇠퇴하고 고구려가 남하정책을 추진하면서 남방진출의 교두보로서 진천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두었으며, 신라 역시 북방으로 영토를 확장하면서 진천을 장악하였다. 후삼국시대에는 후백제와 고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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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부터 1910년까지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역사. 1413년(태종 13) 행정단위 및 명칭으로서 ‘진천현(鎭川縣)’이 제정되어 오늘날의 ‘진천(鎭川)’이라는 지칭의 기원을 이루었다. 행정직제상으로는 종6품관 수령인 현감이 설치되었으며, 진천현감은 청주진관 소속의 절제도위를 겸하였다. 지리적으로는 한양에서 경기도 죽산을 거쳐 충주와 청주를 잇는 교통로와 경기도 소사를 거쳐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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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북서부에 위치한 군. 진천군은 차령산맥이 북동쪽에서 서남쪽으로 달리고 있어 산악이 많고 동북부는 광혜원면과 백곡면의 경계를 흐르는 미호천 지류들이 남류하여 비교적 넓은 진천평야를 이루고 있다. 진천군은 충청북도 3시 10군 중의 하나로서 삼한시대에는 수지(首知) 또는 신지(新知)로, 고구려시대에는 금물노군(今勿奴郡)으로, 신라 관할 이후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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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에 있는 진천군 관할 행정 기관. 진천군청은 진천군의 행정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고구려시대에 금물노군(今勿奴郡), 만노군(萬弩郡), 수지(首知), 신지(新知)라 했으며 통일신라 때에는 흑양군(黑壤郡)이라 고치고 그 후 황양군(黃壤郡)이라 하였다. 고려 초에 이르러 강주(降州)라 한 후 다시 진주(鎭州)라 개칭하고 성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