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의사(義士). 본관은 안동(安東). 김사렴(金士廉)의 10세손이며, 형은 김천주(金天柱)이다. 아들로 김성옥을 두었다. 1728년(영조 4년) 이인좌가 주동이 되어 소현세자의 증손인 밀풍군 탄(坦)을 추대하고 반란을 일으킨 무신란이 일어났다. 이인좌가 이끄는 반군은 청주성을 함락하고 신천영을 충청병사로 삼은 뒤 북진하여 진천에 이르렀다. 당시 진천현...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수백(壽伯). 남연년(南延年)[1653~1728]은 1653년(숙종 2) 무과에 급제한 후 선전관(宣傳官)과 고부군수를 역임하였으며, 한때 당파 싸움에 휘말려 파직되기도 했다. 다시 벼슬길에 올라 훈련원판관(訓練院判官)과 황해도우후(黃海道虞候)로 있다가 이산군수·박천군수·안동부진영장(安東府鎭營將)을 역임하...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지역 출신의 의사(義士). 본관은 여흥(驪興). 영의정을 역임한 여흥부원군 묵헌공 민청(閔清)의 14세손이다. 민진동(閔鎭東)[1660~?]은 이인좌의 난이 일어났을 때 출전하여 공을 세웠다. 영조의 즉위를 두고 소론을 중심으로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반란을 모의하자, 영조가 반란 모의 세력을 색출하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이에 이인좌 등이 1728년...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진천(鎭川). 송인(宋仁)의 17세손이며, 송광보(宋匡補)의 10세손이다. 송재태(宋載泰)는 숙종이 죽음에 임박하여 병약한 경종의 왕위가 위태로워질 것을 염려하여 노론의 영수 이이명과 독대하여 연잉군[훗날 영조]을 세제에 책봉되도록 하였다. 경종이 승하하자 영조가 노론의 뒷받침으로 왕위에 올랐다. 당시 소론은 정치적 주도권...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중어(仲魚) 이타(李鼉)의 후손이다. 이성문(李成文)[1703~1728]은 지금의 진천군 백곡면 사송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타고난 성품이 용맹하고 효성스러워 고을에 이름이 났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가 청주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충청병사 이봉상(李鳳祥)이 의병을 모집하여 방어하려는 계책을 세...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열녀. 본관은 경주(慶州). 남편은 이인좌의 난 때 의병을 일으킨 이성문(李成文)이다. 이성문의 처 경주정씨[1707~1731]는 어릴 때부터 천자(天姿)가 정숙하였고 혼인해서는 시어머니께 효를 다하여 봉양하고 남편을 예로서 섬기었다. 남편이 난을 막으러 나갈 때는 힘을 다하여 충성하라고 하였다. 남편이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난으...
1392년부터 1910년까지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역사. 1413년(태종 13) 행정단위 및 명칭으로서 ‘진천현(鎭川縣)’이 제정되어 오늘날의 ‘진천(鎭川)’이라는 지칭의 기원을 이루었다. 행정직제상으로는 종6품관 수령인 현감이 설치되었으며, 진천현감은 청주진관 소속의 절제도위를 겸하였다. 지리적으로는 한양에서 경기도 죽산을 거쳐 충주와 청주를 잇는 교통로와 경기도 소사를 거쳐 청...
충청북도 북서부에 위치한 군. 진천군은 차령산맥이 북동쪽에서 서남쪽으로 달리고 있어 산악이 많고 동북부는 광혜원면과 백곡면의 경계를 흐르는 미호천 지류들이 남류하여 비교적 넓은 진천평야를 이루고 있다. 진천군은 충청북도 3시 10군 중의 하나로서 삼한시대에는 수지(首知) 또는 신지(新知)로, 고구려시대에는 금물노군(今勿奴郡)으로, 신라 관할 이후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