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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롱이진천관상어(鎭川觀賞魚)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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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생산되는 관상어. 진천관상어는 국내 최대 규모의 관상어 생산단지에서 엄격한 선별과 특수 기술로 관리하여 신비한 색채와 아름다운 체형을 자랑한다. 진천관상어는 ‘아롱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다. ‘아롱이’는 진천군의 명품화 육성 사업의 하나로, 청정 진천의 맑은 물에서 생산된 체형이 올곧은 신선한 관상어를 의인화한 이름이다. 의기 당...

  • 아름다운 고향산천의 맛, 생거진천 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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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천군에서 생산되는 생거진천 지역의 50% 정도가 해발 200m 이하의 구릉지로서 자연재해가 드물다는 점도 생거진천 쌀의 품질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여건이 되고 있다. 금강(錦江)의 상류인 미호천(美湖川), 그 지류인 회죽천(會竹川), 백곡천(栢谷川), 초평천(草坪川)을 끼고 발달한 비옥한 평야 지역에서는 특히 맑고 깨끗한 저수지와 지하수를 농업용수로 공급받기 때문에 정갈한 맛의...

  • 아파트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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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에 있는 공동 주택 양식의 하나. 아파트는 5층 이상의 공동 주택으로서, 4층 이하의 연립주택과 구별된다. 아파트와 같은 공동 주택의 장점은 건축 대지와 공사비를 절약하고, 공공시설을 절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건축 설계나 시공의 우수성, 서비스 시설의 확충 등 여러 가지 면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세대 간의 단절, 비인간적인 환경 등을 초래할 수 있어 우리의 전...

  • 아홉 번 행동하기(-番行動-)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명암리에서 정월 열 나흗날에 9라는 숫자를 매개로 하여 모든 행위를 아홉 번씩 하던 풍속. 아홉 번 행동하기는 음력 1월 14일에 ‘오곡밥 아홉 그릇 먹기’, ‘나무 아홉 짐 해오기’ 등 9라는 숫자에 관련된 모든 행위를 일컫는다. 이를 ‘나무 아홉 짐하고 밥 아홉 번 먹기’라고도 한다. 속담에 ‘정월 열 나흗날에는 나무 아홉 짐 하고 밥 아홉 그릇 먹는다...

  • 악포(樂圃)안기중(安驥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낙경(洛卿), 호는 악포(樂圃). 진사 안형(安泂)의 8세손이다. 안기중(安驥中)[1865~?]은 어려서부터 효심이 깊어 아침저녁으로 부모님에게 문안 인사를 드리는 일을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음식은 떨어지지 않게 하였고, 성인이 되어서는 어버이의 뜻에 따라 행동하며 거스르는 법이 없었다. 아버지...

  • 안골관광농원(-觀光農園)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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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석현리에 있는 관광농원. 안골관광농원은 진천군에서도 지형적으로 산이 많이 분포하고 있는 백곡면에 위치한 관광농원으로 차령산맥이 병풍처럼 둘러진 산속에 위치하고 있다. 많은 관광객이 각종 휴양, 단합회, 야영 등을 위해 찾고 있다. 80여 명이 동시에 이용할 수 있는 3동의 숙박 시설이 있다. 식당은 실내 식당과 야외 식당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실내 식당은...

  • 안기중(安驥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낙경(洛卿), 호는 악포(樂圃). 진사 안형(安泂)의 8세손이다. 안기중(安驥中)[1865~?]은 어려서부터 효심이 깊어 아침저녁으로 부모님에게 문안 인사를 드리는 일을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음식은 떨어지지 않게 하였고, 성인이 되어서는 어버이의 뜻에 따라 행동하며 거스르는 법이 없었다. 아버지...

  • 안기중 처 여흥민씨(安驥中妻驪興閔氏)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개항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부이자 현모. 민씨의 본관은 여흥(驪興)으로, 아버지는 진사를 지낸 민경상(閔景祥)이다. 남편은 본관이 순흥(順興)인 안기중(安驥中)[1865~1892]으로, 안형(安逈)의 8세손이다. 아들은 안상욱(安商郁)으로 도회의원과 소수서원장·운곡서원장·묵정서원장·백진서원장과 군유도회장을 역임하였다. 민씨는 남편 안기중이 27세에 별세하자 따라 죽으려 했으나...

  • 안동김씨(安東金氏)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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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숙승을 시조로 하고, 김인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 성씨. 안동김씨(安東金氏)는 시조를 달리하는 두 계통이 있다. 김숙승(金叔承)을 시조로 하는 구 안동김씨와 김선평(金宣平)을 시조로 하는 신 안동김씨로 구분된다. 그중 신 안동김씨의 시조 김선평은 김알지(金閼智)의 후손으로, 930년(태조 13)에 왕건을 도와 후백제 견훤을 정벌하는 데 공을 세우고 왕건에 귀부하여...

  • 안동김씨 사충문(安東金氏四忠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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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사석리에 있는 안동김씨 일가의 충의를 기린 정려각. 안동김씨 사충문은 1728년(영조 4)에 김천주·김천장 형제와 그의 아들, 조카인 김성추·김성옥이 이인좌(李麟佐)의 난에 맞서 진천군 진천읍 사석리에서 의병을 일으킨 뜻을 기린 충신문으로 안동김씨 문중의 충의를 엿볼 수 있는 유적이다. 진천군청사거리에서 진천 길상사(吉祥祠) 방면으로 약 4.3㎞를 직진하면...

  • 안동김씨 충신문안동김씨 사충문(安東金氏四忠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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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사석리에 있는 안동김씨 일가의 충의를 기린 정려각. 안동김씨 사충문은 1728년(영조 4)에 김천주·김천장 형제와 그의 아들, 조카인 김성추·김성옥이 이인좌(李麟佐)의 난에 맞서 진천군 진천읍 사석리에서 의병을 일으킨 뜻을 기린 충신문으로 안동김씨 문중의 충의를 엿볼 수 있는 유적이다. 진천군청사거리에서 진천 길상사(吉祥祠) 방면으로 약 4.3㎞를 직진하면...

  • 안상욱(安商郁)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문삼(文三), 호는 가산(可山). 진사(進士) 안형(安泂)의 9세손이다. 안상욱(安商郁)은 상중에 유복자로 태어나 할아버지 슬하에서 장성하였다. 할아버지가 병중에 누워 계실 때 어머니가 할아버지를 병간하면 약국으로 달려가 약을 지어 왔고, 약을 달일 때는 할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고 병간했으며, 어머니가 다리를 찔러 피를 내어...

  • 안성이씨(安城李氏)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이중선을 시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성씨. 안성이씨(安城李氏)의 시조 이중선(李中宣)은 고려 때 안성군호장(安城郡戶長)으로 경군(京軍)에 뽑혀 공을 세우고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에 올랐다. 이에 후손들이 시조의 발신지인 안성(安城)을 본관으로 삼았다. 이중선의 손자 이원장(李元長) 이후 세계(世系)가 실전되어 합문부사(閤門副使) 이구(李玖), 이부시랑(吏部侍郞) 이희(李...

  • 안승갑 고가(安承甲古家)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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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연곡리 보련마을에 있는 안승갑의 가옥. 안승갑은 1934~1942년 지금의 화랑문화학교인 성압초등학교 연곡분교장 자리에 안중근 의사의 재종질 등 민족혼이 투철한 인사들을 초빙하여 한글과 우리나라의 역사, 민족의 사상 등을 교육하던 만뢰학원을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안승갑 고가는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연곡리 360번지 보련마을에 위치해 있다. 보련마을은 진천...

  • 안승갑 시혜기념비(安承甲施惠記念碑)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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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연곡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지역민 구휼에 앞장선 안승갑의 공적비.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연곡리 산 40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비는 월두형으로 40×12×103㎝의 크기이다. 앞면에 ‘안승갑 시혜기념비(安承甲 施惠紀念碑)’라 쓰여 있고, 좌우에 업적을 4언 8구의 시로 읊고 있다. 비문은 전면에 ‘안승갑 시혜기념비’라 적혀 있으며, 그 좌우에 ‘담중호세 매사...

  • 안전한 천연 요새 마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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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산동마을을 찾아서 농다리길을 따라가다 보면 문상초등학교를 지나 2㎞ 정도 지점에 외구마을을 알리는 버스정류장이 나타난다. 이 외구버스정류장에서 바라보면 마치 내구, 중리마을로 들어가는 관문처럼 도로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 우뚝 솟아 있는 산을 발견할 수 있다. 게다가 여기서부터는 약간의 경사가 있는 오르막길이 시작되기 때문에 외구마을쪽에서는 내구, 중리마을 모습을 볼 수 없다....

  • 안철중(安徹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개항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낙규(洛圭), 호는 다전(茶田). 진사 안형(安泂)의 8세손이다. 안철중(安徹中)[1869~?]은 성품이 온순하고 과묵하나, 과감하였고 재주가 뛰어났다. 12세에 “새들이 저 먼 봉우리에서 지저귀니 산 그림자가 사리지고, 지나는 길손이 다리를 밟으니 물소리가 들리는구나[原峀鳥穿山影去 短橋客踏水聲來]”라는 시를 지어 주...

  • 안택안택고사(安宅告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음력 10월에 길일(吉日)을 골라 가택신에게 지내는 고사. 안택고사는 백곡면 명암리에서 음력 10월 중에 길일을 택하여 한 해 농사를 무사히 마치게 된 것에 감사하고 가정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하여 가택신(家宅神)들에게 지내는 고사이다. 이를 지역에 따라 가을고사, 성주제, 성주굿, 성주받이굿, 안택, 안택굿, 도신(禱神), 지신제(地神祭), 상달고사 등으로...

  • 안택고사(安宅告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음력 10월에 길일(吉日)을 골라 가택신에게 지내는 고사. 안택고사는 백곡면 명암리에서 음력 10월 중에 길일을 택하여 한 해 농사를 무사히 마치게 된 것에 감사하고 가정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하여 가택신(家宅神)들에게 지내는 고사이다. 이를 지역에 따라 가을고사, 성주제, 성주굿, 성주받이굿, 안택, 안택굿, 도신(禱神), 지신제(地神祭), 상달고사 등으로...

  • 안택굿안택고사(安宅告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음력 10월에 길일(吉日)을 골라 가택신에게 지내는 고사. 안택고사는 백곡면 명암리에서 음력 10월 중에 길일을 택하여 한 해 농사를 무사히 마치게 된 것에 감사하고 가정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하여 가택신(家宅神)들에게 지내는 고사이다. 이를 지역에 따라 가을고사, 성주제, 성주굿, 성주받이굿, 안택, 안택굿, 도신(禱神), 지신제(地神祭), 상달고사 등으로...

  • 안택굿고사시루 해먹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음력 1월 14일 밤에 고사를 지내고 떡을 먹는 풍속. 고사시루 해먹기는 덕산읍 구산리 상구마을에서 음력 1월 14일 밤에 가정의 안녕을 빌기 위해 집집마다 고사시루를 준비하여 고사를 지내고 떡을 나누어 먹던 세시풍속이다. 이를 농사시루, 성주고사, 안택굿 등이라고도 일컫는다. 시루떡을 해서 고사를 지내는 시기는 대개 정월이나 10월이다. 고사의 제물은 지...

  • 알리코제약(-製藥)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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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회죽리에 있는 의약품 제조업체. 알리코제약(주)은 우수한 의약품을 생산·공급하여 질병으로 고통받는 모든 이들에게 건강과 행복을 안겨 주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95년 7월 설립되어 대표이사 이항구가 취임하였다. 2000년 5월 (주)한국알리코팜으로 상호를 변경하였다. 2001년 8월 진천공장으로 본사를 이전하였고, 2002년 2월 진천공장 KGMP 적격...

  • 압각수(鴨脚樹)은행나무(銀杏-)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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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을 상징하는 군목(郡木). 공손수(公孫樹)·행자목(杏子木)이라 하며 잎의 모양이 오리발을 닮았다 하여 압각수(鴨脚樹)라고도 한다. 연관종이 없는 특별한 종으로 은행나무문에 속하는 유일한 종이다. 열매가 살구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하여 살구 행(杏)자와 중과피가 희다 하여 은빛의 은(銀)자를 합하여 은행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진천군은 군을 상징하는 나무로 은행나무를...

  • 앵두불기까마중놀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여름철에 까마중 열매와 짚 대롱을 이용하여 부는 놀이. 까마중놀이란 까마중[때꽈리]을 따서 보릿짚이나 밀짚 대롱 위에 놓고 부는 민속놀이이다. 이를 ‘까막싸리몰이’, ‘앵두불기’라고도 일컫는다. 여름이 깊어 가면 텃밭이나 두엄더미에 까마중이 열린다. 까마중은 까맣게 익은 것은 따서 먹기도 하고 대롱 위에 놓고 불기도 한다. 대부분의 전래 민속놀이가 그러하듯...

  • 야광귀 쫓기신발 감추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음력 1월 14일 밤에 귀신이 신발을 신고 가지 못하게 신발을 엎어 놓거나 숨겨 놓는 풍속. 신발 감추기는 덕산읍 구산리 상구마을에서 음력 1월 14일 밤에 하늘에서 내려와 신발을 훔쳐가는 귀신이 신발을 신고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신발을 마루 밑 또는 방안에 감추거나 문에 체를 걸어 놓는 풍속이다. 이를 ‘야광귀 쫓기’라고도 하는데,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

  • 야은(夜隱)신현구(申鉉九)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신현구(申鉉九)는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아버지에게 순종하며 뜻을 따랐고, 언제나 부모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리려고 애썼다. 또한 한 푼의 돈이나 한 말의 쌀이라도 반드시 어버이에게 여쭌 뒤 허락을 받고 사용했으며,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음식을 대접함으로써 극진하게 봉양하였다.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시묘를 했으며, 아침저녁으로 곡을 하는...

  • 약수암(藥水庵)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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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사석리에 있는 대한불교 태고종 소속 사찰. 약수암은 1950년대 월만 스님이 창건하였으며, 현재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규모가 큰 대표적인 사찰로 중창되어 있다. 약수암은 대웅전·천불전·삼성각·종각 등 8채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전각에 모셔진 불상은 모두 근래에 절을 중창하면서 봉안된 것이고, 이 중 천불전의 왼쪽 한 켠에 다소 오래된 작은 소조여래좌상...

  • 양광도(楊廣道)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고려 후기 충청북도 진천 지역이 속한 지방 행정구역. 고려시대 지방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하여 성종대 전국을 10도(道)로 나누었다가 실효를 거두지 못하여 5도로 개편하였다. 이때 양주와 광주 소속의 기존 군현과 청주·충주 소속의 군현들을 합하거나 나누어 편성하면서 명칭의 변경이 있었으나, 충숙왕 때는 양광도로 만들었다. 『고려사(高麗史)』권 56, 지(志) 제10 양광도조에 다...

  • 양구(養久)이시발(李時發)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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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양구(養久), 호는 벽오(碧梧)·후영어은(後潁漁隱). 고조할아버지는 이원(李黿)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이발(李渤)이며, 할아버지는 이경윤(李憬胤), 아버지는 진사 오촌(梧村) 이대건(李大建)이다. 어머니는 안동김씨로 김도(金燾)의 딸이다. 부인은 여흥민씨이고, 아들로 이분이 있다. 이대건과 이...

  • 양근함씨(楊根咸氏)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함혁을 시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성씨. 함씨(咸氏)는 중국계 귀화 성씨로 본관은 강릉(江陵) 외에 60여 본이 전하는데, 세거지를 뜻할 뿐 모두가 같은 뿌리에서 갈라졌다. 시조는 중국에서 귀화한 함혁(咸赫)으로, 당나라 무종(武宗) 때 대사마대장군으로 조서를 받들고 신라에 들어오자 문성왕이 익화자사(益和刺使)[익화는 지금의 양평]로 임명했다고 한다. 그 무렵 조양현(兆陽縣...

  • 양백리(兩白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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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상백리(上白里)와 하백리(下白理) 등을 통합하여 양백리(兩白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진천군 백곡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백리·하백리·이티리를 병합하여 양백리라 하고 백곡면에 편입하였다. 북동쪽으로 서운산(瑞雲山)[547m], 남서쪽으로 장군산(將軍山)[436m]이 솟아...

  • 양백리 절터(兩白里寺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양백리에 있는 시대 미상의 절터. 양백리 절터는 고문헌 기록이나 명문 자료가 없어 절터의 유래나 연혁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인근 마을에서는 양백리에 있는 절을 경기도 안성시 서운면 청룡리에 소재한 은적암의 산 너머에 있다 하여 속칭 ‘은적늠이절’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1970년대 말까지만 해도 양백리 절터에는 몇 가구로 이루어진 산촌마을이 있었으나 화전...

  • 양백리사지양백리 절터(兩白里寺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양백리에 있는 시대 미상의 절터. 양백리 절터는 고문헌 기록이나 명문 자료가 없어 절터의 유래나 연혁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인근 마을에서는 양백리에 있는 절을 경기도 안성시 서운면 청룡리에 소재한 은적암의 산 너머에 있다 하여 속칭 ‘은적늠이절’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1970년대 말까지만 해도 양백리 절터에는 몇 가구로 이루어진 산촌마을이 있었으나 화전...

  • 양백리사터양백리 절터(兩白里寺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양백리에 있는 시대 미상의 절터. 양백리 절터는 고문헌 기록이나 명문 자료가 없어 절터의 유래나 연혁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인근 마을에서는 양백리에 있는 절을 경기도 안성시 서운면 청룡리에 소재한 은적암의 산 너머에 있다 하여 속칭 ‘은적늠이절’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1970년대 말까지만 해도 양백리 절터에는 몇 가구로 이루어진 산촌마을이 있었으나 화전...

  • 양성이씨(陽城李氏)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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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수광을 시조로 하고, 이수보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성씨. 양성이씨(陽城李氏)의 시조 이수광(李秀匡)은 송나라 사람으로, 고려에 와서 문종 때 벼슬에 올라 삼중대광보국(三重大匡輔國)에 이르렀고, 양성군(陽城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양성을 본관으로 삼았다. 조선 연산군 때 이수보(李秀寶)가 경기도 양성에서 진천군 덕산읍 두촌리로 이주하면서 400여 년 이상 세거(...

  • 양숙(養叔)유득배(柳得培)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양숙(養叔), 호는 물재(勿齋). 현감 유헌민(柳獻民)의 6세손이다. 유득배(柳得培)는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특히 『소학(小學)』의 강론에 힘썼다. 덕성이 중후하고 문장이 뛰어나 고을에서 이름이 났다. 향공(鄕貢)으로 천거되었으나, 요절하여 고을 사람들이 모두 애석해하였다. 진천군에...

  • 양식업(養殖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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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해조류·패류·어류 등을 인공적으로 길러서 채포(採捕)하는 어업. 어업이란 행해지는 수계에 따라 내수면어업, 연역어업, 근해어업, 원해어업 등으로 나누어진다. 충청북도 진천군의 경우 호수, 늪, 하천 등의 지역에서 행해지는 내수면어업이 많이 행해지고 있다. 진천군의 어업은 백곡저수지를 비롯한 가두리 양식시설이 있어 어민 소득 증대에 기여하고 있으며, 초평저수지에...

  • 양주문(楊周文)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양주문(楊周文)은 부모를 섬기는 데 효도를 다하였다. 부모를 뵙기 위해 비바람을 무릅쓰고 밤마다 10여 리를 걸어 다녔다. 밤에 눈길을 걸을 때는 호랑이가 따르며 지켜 주었다. 양주문이 세상을 떠나자 호랑이가 앞뜰에 와서 앉아 있었으며, 호랑이의 눈빛이 하늘에 비쳐 집안이 환하였다. 새벽녘에 닭이 울자 밤새 집안을 환하게 비추던 호랑이가 돌아...

  • 양천산(凉泉山)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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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평산리·은탄리·사양리에 걸쳐 있는 산. 양천산(凉泉山)은 ‘찬물이 솟는 샘이 있는 산’이어서 붙인 이름이다. 양천을 양천(良泉)으로 보아, 산 정상에 좋은 샘이 있어 붙인 이름이라고도 하고, 양을 양씨(梁氏)의 양으로 보아, 양씨 성을 가진 사람 1,000명이 피난한 곳이라 하여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또한 양천(養千)으로 보아, 임진왜란 때 마을 사람을...

  • 양천산(養千山)양천산(凉泉山)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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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평산리·은탄리·사양리에 걸쳐 있는 산. 양천산(凉泉山)은 ‘찬물이 솟는 샘이 있는 산’이어서 붙인 이름이다. 양천을 양천(良泉)으로 보아, 산 정상에 좋은 샘이 있어 붙인 이름이라고도 하고, 양을 양씨(梁氏)의 양으로 보아, 양씨 성을 가진 사람 1,000명이 피난한 곳이라 하여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또한 양천(養千)으로 보아, 임진왜란 때 마을 사람을...

  • 양천허씨(陽川許氏)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허선문을 시조로 하고, 허정과 허병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 성씨. 양천허씨(陽川許氏)는 허선문(許宣文)을 시조로 하고, 조선 후기에 허병(許炳)이 진천군 이월면 신월리로 이주하면서 세거하기 시작하였다. 양천허씨의 시조 허선문은 가락국(駕洛國) 김수로왕비(金首露王妃)의 30세손으로 전한다.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 의하면 공암촌(孔巖村), 현재의 서울특별시 양...

  • 양푼바위옥동리 고인돌(玉洞里支石墓)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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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옥동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옥동리 고인돌은 진천군 덕산읍 옥동리 양암마을 75번지에 있다. 진천읍에서 국도 21호선을 따라가다가 점촌마을에서 오른쪽으로 지방도 513호선을 따라 남쪽으로 약 2.5㎞ 내려가면 양암마을이 나오는데, 옥동리 고인돌은 마을 안 옥동초등학교 동쪽의 지방도 513호선 옆에 위치하고 있다. 지금 위치는 1999년 4월에 이전한...

  • 어려움을 극복하고 얻은 값진 풍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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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년은 곡식이 잘 자라고 잘 여물어 평년보다 수확이 많은 해로 쌀을 많이 수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농촌 사람들에게는 하늘이 내린 선물과도 같다. 그런데 요즘의 우리 농촌은 풍년이라고 해도 예전처럼 풍악을 울리며 좋아하지 않는다. 쌀값이 올라가는 게 아니라 더 내려가기 때문이다. 삼덕리 하덕마을 이장 조래윤 씨는 논농사를 70마지기 정도 짓는다. 요즘은 농촌에 일손이 턱없이...

  • 어수천(御手泉)어천(御泉)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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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에 있는 샘. 문백면 구곡리는 내구마을[일명 안굴터]과 외구마을[일명 밖굴터]로 이루어져 있다. 연자봉(蓮子峰)을 뒤에 두고 좌우 굴곡 진 곳에 마을이 있고, 세금천(洗錦川)이 옆으로 흐른다. 내구마을은 진천에서 가장 오래된 상산임씨(常山林氏)의 세거지로서, 시조 임희가 낙향한 이래 후손들이 1300년 동안 살고 있다. 어천(御泉)은 어와 천으로 나뉜...

  • 어천(御泉)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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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에 있는 샘. 문백면 구곡리는 내구마을[일명 안굴터]과 외구마을[일명 밖굴터]로 이루어져 있다. 연자봉(蓮子峰)을 뒤에 두고 좌우 굴곡 진 곳에 마을이 있고, 세금천(洗錦川)이 옆으로 흐른다. 내구마을은 진천에서 가장 오래된 상산임씨(常山林氏)의 세거지로서, 시조 임희가 낙향한 이래 후손들이 1300년 동안 살고 있다. 어천(御泉)은 어와 천으로 나뉜...

  • 언론·출판(言論-出版)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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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이루어지는 언론 및 출판 활동의 총칭. 지리적으로 청주시와 인접한 진천군에서 별도의 신문이 생긴 것은 1994년 『진천신문』이 발행되면서부터이다. 이후 『진천군민신문』과 『진천시사신문』, 『진천자치신문』, 『진천매일신문』이 발간되었다. 현재는 인터넷 자치신문을 통해서 소식을 전하는 인터넷 신문과 진천매일 인터넷 신문이 있으나 진천군 지역에서의 언론 활동은 활발...

  • 언어(言語)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사용되는 언어 체계. 충청북도의 언어는 크게 단양 방언권, 청주 방언권, 영동 방언권으로 구분되며, 진천의 언어는 음성, 괴산, 청주, 청원과 함께 청주 방언권에 속한다. 진천은 지리적으로 충청북도의 중부에 자리 잡고 있으며, 북서쪽은 경기도와, 남서쪽은 충청남도와 인접해 있다. 이러한 영향으로 경기도 방언 및 충청남도 방언과 유사한 면을 보이기도 하나,...

  • 에덴농장(-農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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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삼용리에 있는 파프리카 재배 농장. 농촌과 지역 발전을 위해 노력해 온 정영식·이복기 부부는 논농사로는 농촌의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없다는 판단하에 한발 앞서는 농업의 필요성을 인식하여 시설을 이용한 새로운 과학 영농을 실현하고자 1998년 현 에덴농장의 모태인 장미 재배용 화훼 농장을 설립하였다. 2002년과 2004년, 2006년 수해로 인하여 큰 피...

  • 에덴농장(-農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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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삼용리에 있는 파프리카 재배 농장. 농촌과 지역 발전을 위해 노력해 온 정영식·이복기 부부는 논농사로는 농촌의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없다는 판단하에 한발 앞서는 농업의 필요성을 인식하여 시설을 이용한 새로운 과학 영농을 실현하고자 1998년 현 에덴농장의 모태인 장미 재배용 화훼 농장을 설립하였다. 2002년과 2004년, 2006년 수해로 인하여 큰 피...

  • 에버다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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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장관리에 있는 건설 기계 제조업체. (주)에버다임은 각종 건설 기계와 재난 현장에 필요한 소방·특장차를 만들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97년 7월 6일 한우티엔씨로 창립되었다. 2003년 중국 상하이법인인 한우공정기계유한공사를 설립하였다. 2005년 제2공장을 증설하였다. 2007년 (주)에버다임으로 상호를 변경하였다. 콘크리트 펌프트럭[CPT]·타워크레인...

  • 에이엠에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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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사양리에 있는 전자 카드 제조업체. (주)에이엠에스는 다양한 종류의 카드 제조는 물론, 주변 기기와 관련 소프트웨어 및 응용 프로그램을 자체 연구·개발하여 카드의 토탈 시스템화를 이루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88년 4월 (주)아주인터내셔널로 창립되었다. 1991년 1월 국내 최초로 국제 규모의 PVC카드 제조 공장을 설립하였다. 2000년 1월 (주)에이...

  • 여시(汝時)최석정(崔錫鼎)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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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초명은 석만(錫萬), 자는 여시(汝時)·여화(汝和), 호는 존와(存窩)·명곡(明谷). 증조할아버지는 최기남(崔起南)이고, 할아버지는 영의정 완성부원군(完城府院君) 최명길(崔鳴吉)이며, 아버지는 한성좌윤 완릉군(完陵君) 최후량(崔後亮)이다. 어머니는 안헌징(安獻徵)의 딸이다. 응교(應敎) 최후상(崔後尙)에게 입양되었다. 최...

  • 여차(汝車)허적(許積)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에 활동 흔적이 남아 있는 조선 후기의 고위 문신. 조선후기 현종·숙종 대 온건파 남인세력인 탁남(濁南)의 영수로 활약한 고위 문신이다. 본관은 양천(陽川)이며, 자는 여차(汝車)이고, 호는 묵재(默齋)·휴옹(休翁)이다. 허초(許礎)의 증손으로 조부는 허잠(許潛)이고, 아버지는 부사 허한(許僩)이다. 24세인 1633년(인조 11) 생원·진사시의 양시에 합...

  • 여천~용인길국도 17호선(國道-號線)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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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도하리와 광혜원면 실원리를 잇는 도로. 국도 17호선은 전라남도 여천시~경기도 용인시 간의 길이 407㎞의 일반국도이다. 충청북도의 총연장은 66.408㎞의 포장도로로서 2차선이 7.145㎞이고 2차선은 48.703㎞이며 6차선은 10.56㎞이다. 충청북도의 국도 17호선의 노견포장 길이는 좌우 모두 66.408㎞이고 시군별 노선의 길이는 청주시가 13.6...

  • 여치 집 만들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여치 집을 만들어 여치를 기르며 즐기는 놀이. 여치 집 만들기는 여름철에 흔한 밀짚이나 보릿짚을 이용하여 여치가 살 수 있는 집을 만들어 여치를 길러 보는 민속놀이이다. 여치는 보리나 밀을 타작하는 무렵에 많이 볼 수 있는데, 그 즈음에 여치가 살 수 있도록 여치 집을 만들어 추녀 밑에 달아매어 놓고 여치의 울음소리를 듣곤 하였다. 집 주변의 시원한 그늘...

  • 여화(汝和)최석정(崔錫鼎)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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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초명은 석만(錫萬), 자는 여시(汝時)·여화(汝和), 호는 존와(存窩)·명곡(明谷). 증조할아버지는 최기남(崔起南)이고, 할아버지는 영의정 완성부원군(完城府院君) 최명길(崔鳴吉)이며, 아버지는 한성좌윤 완릉군(完陵君) 최후량(崔後亮)이다. 어머니는 안헌징(安獻徵)의 딸이다. 응교(應敎) 최후상(崔後尙)에게 입양되었다. 최...

  • 여흥민씨(驪興閔氏)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민칭도를 시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성씨. 여흥민씨(驪興閔氏)의 시조 민칭도(閔稱道)는 공자의 10제자 중 한 사람인 민손(閔損)의 후손으로, 고려 중엽에 사신으로 왔다가 귀화하여 여흥(驪興)에 정착하여 민씨의 시조가 되었다. 고려 인종 때 민칭도의 증손 민영모(閔令謨)는 문과에 급제하여 이부원외랑(吏部員外郞),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태자태사(太子太師)에 이르렀다...

  • 역사(歷史)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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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역사. 진천은 삼국시대부터 중요한 요충지로 여겨져 왔다. 백제는 일찍이 한성시대에 진천을 자신의 세력권에 넣었으며, 백제의 세력이 쇠퇴하고 고구려가 남하정책을 추진하면서 남방진출의 교두보로서 진천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두었으며, 신라 역시 북방으로 영토를 확장하면서 진천을 장악하였다. 후삼국시대에는 후백제와 고려의 세력이 부딪...

  • 역사테마공원진천역사테마공원(鎭川歷史-公園)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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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장관리에 있는 역사테마공원. 충청북도 진천군은 주민의 체력 증진 및 휴식 공간을 제공하기 위하여 2000년 진천역사테마공원 조성 공사를 시작하여 2005년 12월 완공하였다. 총 사업비는 61억 7400만 원이 투입되었다. 2005년 9월에는 진천역사테마공원 내에 진천종박물관이 건립되었다. 진천역사테마공원의 총면적은 71,521㎡이다. 배구장·농구장·족구장...

  • 연곡리(蓮谷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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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보련리(宝蓮里)의 ‘연(蓮)’자와 상곡리(上谷里)의 ‘곡(谷)’자를 따서 연곡리(蓮谷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진천군 서암면(西岩面)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곡리·보련리·비립리를 병합하여 연곡리라 하고 군중면에 편입하였다. 1917년 군중면을 진천면으로 개칭하였고, 197...

  • 연곡리 느티나무(蓮谷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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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연곡리에 있는 수령 327년의 보호수. 연곡리 느티나무는 높이 18m, 가슴높이 둘레 5.3m, 뿌리 부분 둘레 7.8m, 나무갓 너비 26m이다. 연곡리 느티나무는 1982년 11월 11일 노거수로서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나무 아래는 자갈로 되어 있고, 사면이 트여 있다. 나무 안쪽에 돌 의자와 표지판이 있고 바깥쪽으로 건물과 도로가 있다. 나무 어귀에...

  • 연곡리 백비진천 연곡리 석비(鎭川蓮谷里石碑)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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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연곡리에 있는 고려 전기 석비. 진천 연곡리 석비(鎭川蓮谷里石碑)는 고려 전기인 10세기경에 세워진 비석이다. 비신에 아무런 명문이 새겨져 있지 않아 ‘연곡리 백비’라고도 부른다. 건립경위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진천에서 국도 17호선을 따라 청주 방향으로 가다가 사석삼거리에서 국도 21호선을 따라 천안 방면으로 가다보면 오른쪽으로 두 갈래 길이 나...

  • 연곡리 삼층석탑(蓮谷里三層石塔)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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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연곡리에 있는 고려 전기의 석탑. 연곡리 삼층석탑은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연곡리 483번지[김유신길 641] 비선골마을의 폐사지에 신축된 보탑사 지장전의 좌측에 모셔져 있다. 어느 때인지는 알 수 없으나 무너졌던 석탑 부재들을 모아 다시 세운 것으로 보이는데, 결실된 부분이 많다. 규모가 작은 탑으로 기단은 이중기단이고, 3층과 상륜부는 결실되었다. 초층...

  • 연곡리 절터(蓮谷理寺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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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연곡리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연곡리 비선골마을의 만뢰산(萬賴山) 남쪽 기슭에 있다. 지금은 보탑사(寶塔寺)가 들어섰다. 연곡리 절터에 대한 고문헌 기록이 없고, 비문이 전혀 새겨지지 않은 고려 전기의 석비인 보물 제404호 진천 연곡리 석비(鎭川蓮谷里石碑)가 남아 있어 일찍부터 눈길을 끈 곳이다. 석비에 명문이 없어 사지의 이름과...

  • 연곡리 절터 석조비로자나불좌상(蓮谷里-石造毘蘆舍那佛坐像)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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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연곡리 보탑사에 있는 고려시대 석조 불상. 진천군 진천읍 연곡리 588번지 보탑사 경내에 있는 화강암 소재의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연곡리 절터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보탑사 삼층목탑 뒤 속칭 약수산 암반 위에 안치되어 있는, 118㎝ 높이의 결가부좌한 불상이다. 불상은 나발(螺髮) 형태의 머리 위에 육계(肉髻)가 있으며, 목에는...

  • 연곡저수지(蓮谷貯水池)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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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연곡리에 있는 농업 관개용 저수지. 연곡저수지(蓮谷貯水池)는 1984년 충청북도 진천읍 연곡리 지역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하여 축조되었다. 연곡저수지의 제당 형식은 중심코아형으로, 제방의 길이는 130m, 높이는 25.8m이다. 유역 면적은 635㏊, 수혜 면적은 132.9㏊, 만수 면적은 11.3㏊, 홍수 면적은 11.3㏊이다. 총저수량은 91만 3,0...

  • 연극(演劇)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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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배우가 희곡 속의 인물로 분장하여 몸짓·동작·말로써 연희 장소에서 창출해 내는 종합 예술. 연극은 삶의 근원적이고 총체적인 경험에 기원을 두고 있어 다른 어떤 문화적 산물 못지않은 역사적·지역적·민족적 소산이다. 이에 비해 영화는 제작 과정에 창조적 요소와 기계적·기술적·경제적 요소가 합쳐져 만들어진다. 따라서 한 편의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제작자·스튜디오...

  • 연꽃(蓮-)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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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서식하고 있는 쌍떡잎식물 미나리아재비목 수련과의 여러해살이 수초. 뿌리는 둥근 막대형으로 옆을 향해 길게 뻗으며 마디가 많다. 연녹색을 띠는 둥근 형태의 잎은 지름 약 40㎝이고 뿌리줄기에서 나와 물 위를 향해 1~2m 정도 높이 솟는데 물에 젖지 않는다. 잎맥은 방사상으로 뻗어 있다. 연한 분홍색 또는 흰색의 꽃은 7~8월경 꽃대 1개에 1송이씩 핀다. 꽃받...

  • 연꽃이 가득한 몽촌방죽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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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몽리 몽촌마을 입구에서 길을 따라 쭉 올라가다 보면 정자가 보이는데, 바로 그 앞으로 신기할 만큼 아름다운 연꽃이 하나 가득 핀 연꽃 방죽이 펼쳐져 있다. 조선 후기 채진형 선생이 마을을 일구면서 만들었다는 두 개의 방죽 중 하나이다.  몽촌마을이 아름다운 것은 어쩌면 이 연꽃 방죽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연꽃이 수놓은 방죽의 풍경은 환상적이었다. 몽촌마을 토박...

  • 연꽃정식(-定食)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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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연곡리 보련골 연꽃마을에서 연을 이용해 만든 향토음식. 보련마을 뒤편에 커다랗게 자리하고 있는 만뢰산은 예로부터 골짜기마다 물이 흐르는 곳으로, 보련마을에 위치한 논에는 물 마를 일이 없었다고 한다. 현재는 논다랑이마다 거의 연꽃을 기르고 있는데, 만뢰산 골짜기에서 흐르는 물을 이용해 사시사철 물 부족함이 없이 연꽃들이 자라고 꽃을 피우고 있다. 이러한 마...

  • 연날리기(鳶-)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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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명암리에서 음력 정월 초부터 대보름까지 바람을 이용하여 연을 하늘에 띄우며 즐기는 놀이. 연날리기는 오랜 옛날부터 전승되어 오는 민족 전래의 기예(技藝)의 하나로서, 음력 정초가 되면 해마다 장관을 이루었던 민속놀이이다. 연날리기는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많이 즐겼으며, 연줄을 서로 닿게 하여 다른 사람의 연줄을 끊는 연싸움도 즐겼다. 정월 초하루부터 대...

  • 연담리(連潭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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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생긴 이름으로, 연담리(蓮潭里)는 연화(蓮花)와 우담(牛潭)에서 한 자씩 따서 생긴 지명이다. 연화는 지형이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이라서 붙여진 이름이고, 우담은 ‘반여울’ 서북쪽에 있는 큰 못으로 ‘소두머니’라고도 한다. 못이 ‘소 대가리’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이라서 붙...

  • 연보정(蓮寶井)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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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에 있는 신라시대 우물 터. 연보정(蓮寶井)은 자연석을 이용하여 만든 원형 우물로서, 김유신(金庾信)[595~673]이 사용했던 우물이라 전한다.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 계양마을은 김유신의 아버지 김서현(金舒鉉)이 만노군태수로 부임하여 살던 곳으로, 큰 담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후대에 담안밭이라고도 불렸다. 이외에 김유신과 관련한 우물로는...

  • 연삼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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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벽암리·행정리에 걸쳐 있는 논. 전하는 말에 따르면 조선 초기 기름진 넓은 평야를 지주(地主) 세 사람이 거의 소유하여 붙인 이름이라고도 하고, 연삼을 연삼(連三)으로 보아 들이 읍내리·벽암리·행정리 등 3개 마을에 걸쳐 있어서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1911년 조선총독부가 펴낸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서 ‘연삼아들’에 ‘연삼하평(連三下坪...

  • 연싸움(鳶-)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명암리에서 연실을 마주 걸어 상대편의 연실을 끊어 버리는 민속놀이. 연싸움은 백곡면 명암리에서 정월 초에 방패연을 만들어 날리면서 서로의 연줄을 끊는 싸움을 통해 어느 연이 더 세고 강한 지를 가리는 놀이이다. 연날리기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놀이이다. 다만 우리나라 고유 풍속에서는 음력 정월 초하루부터 대보름까지만 날리는 것으...

  • 연안김씨(延安金氏)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김섬한을 시조로 하고, 김자남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성씨. 연안김씨(延安金氏)의 시조는 고려 명종 때 사문박사(四門博士)를 지낸 김섬한(金暹漢)이다. 김알지(金閼智)의 후예인 두 왕자가 왕에게 직간을 하다가 형은 북빈경(北濱京)[지금의 강릉]에, 아우는 시염성(豉鹽城)[연안(延安)의 옛 지명]에 유배되었는데, 아우의 후손이 바로 김섬한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후손들이...

  • 연일정씨(延日鄭氏)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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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백호를 시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 성씨. 연일정씨(延日鄭氏)는 영일정씨(迎日鄭氏) 혹은 오천정씨(烏川鄭氏)라고도 한다. 영일은 경상북도 포항시의 동해안 일대를 일컫는 지명으로, 고려 초에는 연일이라 불렸다. 지금은 각각 포항시 연일읍과 오천읍이며, 본관을 각각 연일·영일·오천으로 쓰고 있다. 2000년 현재 연일정씨 21만 6,510명, 영일정씨 1만 263명, 오천정씨...

  • 연재(衍齋)이승연(李升淵)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이자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초명은 뇌연(雷淵), 자는 문계(文階)·태초(太初), 호는 연재(衍齋). 세종의 별자(別子)인 광평대군(廣平大君)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군위현감 이의화(李義和)이며, 어머니는 통덕랑 유언(兪彦)의 손녀이다. 이승연(李升淵)[1767~1829]은 유서 깊은 가정에서 시(詩)와 예(禮)의 교육을 받아 선행을 닦고 배우...

  • 연정기(延廷夔)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곡산(谷山). 진사 연정희(延廷禧)의 8세손이다. 연정기(延廷夔)는 아흔 살의 아버지가 천식증이 생겼는데, 의원이 술이 좋다고 하자 더위와 추위를 무릅쓰고 매일처럼 술을 구해다 드렸다. 겨울에 아버지가 물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자 냇가에 나가 하늘에 빌어 잉어 세 마리를 구해다 드렸다. 또한 아버지가 꿩고기를 원하여 사방으로 꿩을 찾아...

  • 연주현씨(延州玄氏)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현담윤을 시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성씨. 연주현씨(延州玄氏) 시조 현담윤(玄覃胤)은 고려 의종 때 장군이 되었고, 명종 때 조위총(趙位寵)의 난을 토벌한 공으로 문하시랑평장사로서 연산군(燕山君)에 봉해졌다. 연주와 연산은 평안도 영변(寧邊)의 옛 이름으로, 이후 후손들이 현담윤을 시조로 하고 연주(延州)를 본관으로 삼았다. 현담윤의 세 아들 현덕수(玄德秀)·현이후(玄利厚)...

  • 열녀(烈女)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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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남편에 대한 정절을 지켜 포상을 받은 여자. 열녀(烈女)는 한마디로 ‘절개가 굳은 여성’을 지칭한다. 이 말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남편을 위해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정절을 지켜낸 여성을 뜻한다. 대부분의 열녀들은 남편에 대한 정절을 지키기 위해 남편이 죽으면 수절하거나 남편을 따라서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이러한 열녀들의 행적은 멀리는 순장 제도에서...

  • 엽둔재(葉屯-)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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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갈월리 서수마을과 충청남도 천안시 입장면을 연결하는 고개. 엽둔재(葉屯재)[344m]는 엽둔과 재로 나뉜다. 엽둔은 엽돈의 변화형으로 엽전(葉錢)을 말한다. 조선시대에는 도적 떼들이 들끓어 엽전을 지니고 다니는 사람은 모두 털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엽둔고개·엽둔재고개·엽둔치·엽둔티·협탄티[脇呑티]·협돈령[脇돈嶺]으로도 불린다. 협탄티는 이곳에...

  • 엽둔치(葉屯峙)엽둔재(葉屯-)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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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갈월리 서수마을과 충청남도 천안시 입장면을 연결하는 고개. 엽둔재(葉屯재)[344m]는 엽둔과 재로 나뉜다. 엽둔은 엽돈의 변화형으로 엽전(葉錢)을 말한다. 조선시대에는 도적 떼들이 들끓어 엽전을 지니고 다니는 사람은 모두 털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엽둔고개·엽둔재고개·엽둔치·엽둔티·협탄티[脇呑티]·협돈령[脇돈嶺]으로도 불린다. 협탄티는 이곳에...

  • 엿기름소화제(-消化劑)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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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소화 불량에 민간요법으로 쓰이는 치료제. 엿기름은 배젖 조직을 분해하는 여러 가지 효소가 발아할 때 생산되는 당화제를 겸한 녹말 원료로, 맥주, 위스키, 엿, 식혜 등을 제조할 때 주로 사용된다. 진천 지역에서는 엿기름을 그대로 또는 분말 형태로 만들어 소화제로 사용하였다. 엿기름은 그 명칭과는 달리 기름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학계에서는 엿기름이라는 단어가...

  • 영(嶺)고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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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 있는 산등성이 봉우리 사이의 낮은 부분. 국토의 70%가 산지인 한반도에서는 예부터 도보나 우마로 산을 넘어 통행할 수 있는 고갯길이 곳곳에 발달하여 중앙과 지방, 지역과 지역 사이를 그물코처럼 연결하였다. 오늘날에는 등산 기지 또는 관광지로서 가치가 크며, 철도의 통과에도 이용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고개는 북한의 함경산맥(咸鏡山脈)에 있는 금패령...

  • 영구리(永九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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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에 속하는 법정리. 영구리(永九里)는 영구물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약 500년 전에 노승이 마을을 지나다가 주민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마을 이름을 영구물이라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또는 지형이 거북이 엎드려 있는 형국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라고도 한다. 영구천(靈亀泉)이란 지명도 함께 쓰이는 것으로 미루어 영구물은 영구우물에서 ‘우’자...

  • 영구물영구리(永九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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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에 속하는 법정리. 영구리(永九里)는 영구물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약 500년 전에 노승이 마을을 지나다가 주민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마을 이름을 영구물이라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또는 지형이 거북이 엎드려 있는 형국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라고도 한다. 영구천(靈亀泉)이란 지명도 함께 쓰이는 것으로 미루어 영구물은 영구우물에서 ‘우’자...

  • 영서거사(潁西居士)임로(任魯)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에 유배된 문신.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득여(得汝), 호는 영서거사(穎西居士). 판서 임방(任埅)의 현손으로 아버지는 사간원대사간 임종주(任宗周)이다. 임로(任魯)[1755~1828]는 어려서부터 학문에 뜻을 두어 세상의 명리화색(名利貨色)에는 일절 욕심이 없었다. 1777년(정조 1) 음서로 관직에 나갔으나 아버지가 당대의 세도가 홍국영(洪國榮)에게...

  • 영수사(靈水寺)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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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영구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 사찰. 영수사는 918년(태조 1년)에 증통국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나 확실한 문헌 기록이 없고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도 절 이름이 나타나 있지 않다. 다만 조선 말기인 1871년(고종 8)에 간행된 『호서읍지(湖西邑誌)』에 처음으로 기록이 나타나는데 간단히 위치만 소개되어 있다. 1937년 간행된 『조...

  • 영수사 목조관음보살좌상(靈水寺木造觀音菩薩坐像)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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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영구리 영수사에 있는 조선 후기 목조 불상. 진천군 초평면 영구리 산 542번지 영수사 관음보전에 봉안된 목조관음보살좌상은 백련암에서 옮겨온 것이라 하며,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이다. 높이 90㎝의 영수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은 목불로 도금이 되어 있고, 불두에는 근래에 제작한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으며, 다리는 결가부좌를 한 채 앉아 있는 불상이다. 얼굴은 방...

  • 영수사 삼성각(靈水寺三聖閣)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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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영구리 영수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전각. 삼성각(三聖閣)은 보통 사찰의 주불전 뒤편에 위치하는데 칠성(七星)·독성(獨聖)·산신(山神)을 함께 모신다. 하지만 삼성을 따로 모실 때에는 칠성각·독성각·산신각을 별도의 전각으로 구성한다. 칠성은 수명을 관장하는 북두칠성을 뜻하고, 독성은 나반존자(那畔尊者)를, 산신은 한국의 토속신인 산신령을 의미한다. 두타산 깊...

  • 영신쿼츠주식회사(永信-株式會社)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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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회죽리에 있는 산업용 유리 제조업체. 영신쿼츠주식회사는 반도체 제조용 석영 유리 제품인 Q’TZ WARE를 전문적으로 생산·제작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85년 2월 5일 반도체 및 광통신용 석영 유리 제품을 생산하는 독일 헤라우스(유)와 일본 신에쓰쿼츠(주)·한국 카리화학(주)이 합작 투자하여 영신쿼츠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1994년 12월 제2공장을...

  • 영월망월(望月)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정월 대보름날 즈음에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비는 풍속. 망월은 백곡면 명암리와 덕산면 구산리 등지에서 음력 1월 14일~1월 16일 사이에 만월(滿月)이 되는 날 저녁 마을사람들이 횃불을 들고 가까운 산꼭대기에 올라가 달을 보며 소원을 빌었던 풍속이다. 이를 영월(迎月), 달보기, 달맞이, 망월에 절하기, 망우리 등으로도 불렀다. 농군은 농사가 잘 되어 풍...

  • 영은암대흥사(大興寺)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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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원덕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 사찰. 대흥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되었다가 폐쇄된 후 중창되었는데, 『상산지(常山誌)』 신편에 따르면 찬의 조중우가 충청북도 진천으로 내려와 머물렀을 때 절을 건축하여 영은사로 일컫고 승도 수인을 두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광무 11년, 즉 1907년(순종 1)조창호가 중건하였다고 하는데 그 관계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조중우...

  • 영일정씨연일정씨(延日鄭氏)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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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백호를 시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 성씨. 연일정씨(延日鄭氏)는 영일정씨(迎日鄭氏) 혹은 오천정씨(烏川鄭氏)라고도 한다. 영일은 경상북도 포항시의 동해안 일대를 일컫는 지명으로, 고려 초에는 연일이라 불렸다. 지금은 각각 포항시 연일읍과 오천읍이며, 본관을 각각 연일·영일·오천으로 쓰고 있다. 2000년 현재 연일정씨 21만 6,510명, 영일정씨 1만 263명, 오천정씨...

  • 영일제약 진천공장(-製藥鎭川工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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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신정리에 있는 영일제약(주)의 의약품 제조 공장. 영일제약(주)은 1971년 1월 19일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수동에서 영일약품공업(주)으로 설립되었다. 1974년 경기도 하남으로 본사 및 공장을 이전하였다. 1985년 2월 유망 중소기업으로 선정되었으며, 1987년 9월 전문 치료제 ‘메모비스’ 신제품을 개발하였다. 2005년 7월 영일약품공업(주)에서 영...

  • 영제원 터(永濟院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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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오갑리에 있는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 원 터. 원(院)은 고려·조선시대에 공무를 보는 관리가 묵을 수 있도록 역과 역 사이에 설치했던 공공 여관이다. 영제원은 고려·조선시대 진천현 소속의 원이었다. 조선 전기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진천현 역원조에는 영제원(永濟院)이 진천현 동쪽 14리에 있다고 하였다. 이곳은 지금의 오갑리 원터마을에...

  • 영주원(永酒院) 터영제원 터(永濟院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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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오갑리에 있는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 원 터. 원(院)은 고려·조선시대에 공무를 보는 관리가 묵을 수 있도록 역과 역 사이에 설치했던 공공 여관이다. 영제원은 고려·조선시대 진천현 소속의 원이었다. 조선 전기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진천현 역원조에는 영제원(永濟院)이 진천현 동쪽 14리에 있다고 하였다. 이곳은 지금의 오갑리 원터마을에...

  • 영택(永澤)정안립(鄭安立)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연일(延日). 본명은 정영택(鄭永澤), 호는 학주(學輈), 자는 성장(性長)이다. 1873년(고종 10) 12월 3일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태락리에서 출생하였다. 구한말 애국계몽운동을 하다 합방이 되자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였다. 만주사변 뒤에는 상해에서 동아국제연맹을 조직, 활동하다 체포되었다. 광복후에도 남북통일기성회 회장으...

  • 영혼을 깨우는 소리, 세상을 밝히는 울림, 진천종박물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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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천종박물관은 한국 종의 연구·수집·전시·보존은 물론 기획 전시, 박물관 교육 및 다양한 활동 등을 통해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한국 종의 예술적 가치와 우수성을 알리고자 2005년 9월 개관하였다. 특히 국내에서 가장 앞선 것으로 조사된 진천 석장리 유적이 있는 진천에 건립되어 그 의미가 깊다. 불교가 전래된 뒤 삼국시대 범종은 한국적인 조형미를 정립하여 우리만의...

  • 영화(映畵)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일정한 의미를 갖고 움직이는 대상을 촬영하여 영사기로 영사막에 재현하는 종합 예술. 인류 최초의 영화는 흔히 「중국인 세탁소에서 생긴 일」 또는 「정거장의 기차 도착」을 꼽는다. 초기의 영화는 단지 신기한 볼거리에 지나지 않았는데, 조르주 멜리에스는 영화를 이야기를 전달하는 도구로 이용하는 데 크게 공헌하였고, 이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화가 예술의 한 장르로...

  • 예배당개신교(改新敎)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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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분리되어 활동 중인 그리스도교의 분파. 개신교는 1517년 루터(Luther)의 종교개혁으로 로마 가톨릭교회[天主敎, 舊敎]에서 분리된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교파를 말한다. 이를 ‘예배당’, ‘기독교’ 등이라고도 한다. 개신교는 처음부터 각각 독자적인 교회로 출발하였기 때문에 다양한 교파로 형성되어 오늘날에는 300여개의 서...

  • 오갑리(五甲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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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말기 진천군 산청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마무리·영신리·태하리·영주리·삼태리의 각 일부, 방동면 화성리 일부를 병합하여 오갑리(五甲里)라 하고 덕산면에 편입하였다. 1930년 초평면에 편입되었다. 알랑산[209m]이 북동 방향으로 뻗어 있고, 미호천(美湖川)과 한천천(閑川川)이 마을 앞에서 합류하...

  • 오곡밥 먹기(五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명암리에서 음력 정월 열 나흗날에 먹는 절식 풍습. 오곡밥 먹기는 음력 1월 14일에 보통 때보다 이른 오후 3시경쯤 저녁을 오곡밥으로 장만하는 풍속이다. 오곡밥은 쌀·보리·조·콩·팥[기장] 등 5가지 곡식으로 밥을 짓고 이웃과 나누어 먹으면 좋다고 한다. 또한 이 날에는 묵은 나물을 삶아 고춧가루를 넣지 않고 무쳐 복쌈으로 먹기도 한다. 복쌈은 김이나 마...

  • 오독바위독바위마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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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삼덕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마을에 천연적으로 생긴 항아리 모양의 바위인 독바위가 있어 붙인 이름이다. 마을에서 오씨가 번성했을 때는 오독바위라 하였다. 마을의 지명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 온다. 아주 오랜 옛날 마을에 할아버지·할머니·아들·며느리·손자·손자며느리 등 여섯 식구가 다정하게 살았는데, 인심이 무척 후하여 진천을 찾는 행인이면 누구나...

  • 오동나무 삶은 물(梧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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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자생하는 오동나무를 이용한 민간요법. 오동나무 삶은 물은 초평면에서 신장염 치료제나 산모가 체했을 때에 사용하는 민간요법이다. 오동나무는 머귀나무, 백동나무, 조선오동나무라고도 일컫는다. 오동나무 삶은 물은 높이 15m 정도의 크기로 자라는 낙엽 활엽수인 오동나무의 껍질과 잎을 이용한다. 가구재, 약용, 조경용, 풍치림 등으로 쓰이는 오동나무는 여러 병의 치료...

  • 오리목살참숯불구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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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신계리에서 오리 고기를 참숯에 구운 향토음식. 오리를 주재료로 하여 만드는 음식은 매우 다양한데 특히 보양식으로 잘 알려진 것은 한약재를 이용하거나 오리 자체를 푹 고아 만든 오리탕 혹은 백숙이다. 진천군 이월면 신계리에 있는 할머니집 식당에서는 저렴하고 맛있은 오리의 목살 부위를 진천군 백곡면의 특산물인 참숯에 구워 내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오리목...

  • 오상근(吳尙根)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1909년 신민회 계열의 항일비밀청년결사단체인 대동청년단을 조직, 항일독립운동을 하였다. 또한 천도교와 기독교의 연합에도 노력하였다. 오상근(吳尙根)은 1909년에 신민회(新民會) 계열의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한 항일 비밀청년결사 단체인 대동청년단(大東靑年團)을 남형우(南亨祐)·안희제(安熙濟)·신팔균(申八均)·신채호(申采浩)·김동삼(金東三...

  • 오이풀 달여 먹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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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자생하는 오이풀을 이용한 민간요법. 오이풀 달여 먹기는 오이풀을 채취해 두었다가 설사, 복통, 과음, 지혈 등에 사용하는 민간요법으로 문백면 평산리에서 전해 내려 오고 있다. 오이풀은 지유자(地楡子), 지유, 지아, 산홍초, 외순나물, 수박풀이라고도 일컫는다. 오이풀은 여러해살이풀로 크기는 1m~1.5m, 꽃은 검붉은 색으로 7~9월에 핀다. 원 줄기는 곧게...

  • 오창~살미길지방도 510호선(地方道-號線)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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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진암리와 용기리를 잇는 도로. 지방도 510호선[오창~살미]은 청원군 오창면 가좌리와 충주시 살미면 공이리 간의 전용연장 85.3㎞로서 1차선 포장도로 7.3㎞, 2차선 포장도로 61.1㎞, 4차선 포장도로 8.9㎞, 미포장도로 8.0㎞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노견포장은 좌우 각각 13.6㎞이다. 지방도는 도내의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간선 도로망으로서 도지사...

  • 오천정씨연일정씨(延日鄭氏)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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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백호를 시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 성씨. 연일정씨(延日鄭氏)는 영일정씨(迎日鄭氏) 혹은 오천정씨(烏川鄭氏)라고도 한다. 영일은 경상북도 포항시의 동해안 일대를 일컫는 지명으로, 고려 초에는 연일이라 불렸다. 지금은 각각 포항시 연일읍과 오천읍이며, 본관을 각각 연일·영일·오천으로 쓰고 있다. 2000년 현재 연일정씨 21만 6,510명, 영일정씨 1만 263명, 오천정씨...

  • 오행(吳珩)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해주(海州). 참찬관(參贊官) 오대남(呉大男)의 고손자이다. 오형(吳珩)[1710~?]은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 봉양에 뜻을 두고 극진하게 모셨다. 부모상을 당해서는 시묘를 살았다. 마을 사람들이 오행의 효행에 감탄하여 마을의 인재로 천거하였다....

  • 옥녀봉(玉女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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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명암리와 이월면 노원리 궁골마을에 걸쳐 있는 산. 옥녀봉(玉女峰)[457m]은 ‘옥녀가 금비녀를 꽂고 거문고를 타는 모습’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전국적으로 옥녀봉은 수백의 예가 있으며, 그중 어떤 것은 신선봉(神仙峯)과 병용되는 것도 있다. 유래 또한 옥녀가 거문고를 타는 형국의 명당인 옥녀탄금형(玉女彈琴形), 옥녀가 비단을 짜는 형국의 명당인 옥녀직금...

  • 옥녀봉 산성(玉女峰山城)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명암리와 이월면 노원리에 걸쳐 있는 삼국시대 토축 산성. 『한국지명총람』에 옥녀봉산성은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명암리 동암 북쪽 해발 260m의 산 위에 있는 성터로 옛날 군사들이 진을 쳤던 곳으로 전해 온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동암마을의 동북쪽에 위치하며 고도는 해발 456.5m로 많은 차이가 있다. 고문헌 기록에 나타나지 않고 학술 조사도 실시...

  • 옥동교(玉洞橋)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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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옥동리에 있는 다리. 진천군 관내의 군도 2호선[인산~두성]은 총연장 8.6㎞의 2차선 포장도로이며 군도 교량은 26개소로 총연장은 1.3㎞이다. 덕산읍 관내에는 국도 교량 3개소의 총연장 0.2㎞, 지방도 교량 1개소의 총연장 0.06㎞, 군도 교량 1개소의 총연장 0.055㎞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옥동교(玉洞橋)는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옥동리에 위치...

  • 옥동리(玉洞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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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물 걱정을 하지 않아 옥 같은 쌀이 생산된다고 하여 옥동리(玉洞里)라 하였다. 마을 입구에 기름진 옥밭이 있어서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조선 말기 진천군 산정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양암을 병합하여 옥동리라 하고 덕산면에 편입하였다. 이후 덕산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덕산읍에 속하게 되었다....

  • 옥동리 고인돌(玉洞里支石墓)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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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옥동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옥동리 고인돌은 진천군 덕산읍 옥동리 양암마을 75번지에 있다. 진천읍에서 국도 21호선을 따라가다가 점촌마을에서 오른쪽으로 지방도 513호선을 따라 남쪽으로 약 2.5㎞ 내려가면 양암마을이 나오는데, 옥동리 고인돌은 마을 안 옥동초등학교 동쪽의 지방도 513호선 옆에 위치하고 있다. 지금 위치는 1999년 4월에 이전한...

  • 옥동리 유적(鎭川玉洞里遺蹟)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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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옥동리에 위치한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의 유적지. 옥동리 유적(鎭川 玉洞里 遺蹟)에서는 석곽묘[돌덧널무덤] 1기, 토광묘[널무덤] 9기, 수혈유구 10기 등 20기가 조사되었다. 유물은 토도류 4점, 금속류 12점 등 16점이 출토되었다. 옥동리 석곽묘는 벽석 축조 양상이 인근 산수리 석곽묘의 축조 수법과 상이하며, 출토된 유물이 없어 축조 시기를 판단하...

  • 옥동리 지석묘옥동리 고인돌(玉洞里支石墓)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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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옥동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옥동리 고인돌은 진천군 덕산읍 옥동리 양암마을 75번지에 있다. 진천읍에서 국도 21호선을 따라가다가 점촌마을에서 오른쪽으로 지방도 513호선을 따라 남쪽으로 약 2.5㎞ 내려가면 양암마을이 나오는데, 옥동리 고인돌은 마을 안 옥동초등학교 동쪽의 지방도 513호선 옆에 위치하고 있다. 지금 위치는 1999년 4월에 이전한...

  • 옥동초등학교(玉洞初等學校)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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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두촌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다양한 경험으로 균형 있게 성장하는 개성 있는 어린이를 기르는 개성인, 기초 능력을 기르고 창의적인 능력을 갖는 어린이를 기르는 창조인, 폭넓은 학습 경험으로 다양한 일을 스스로 할 수 있는 어린이를 기르는 자주인, 전통문화를 이해하고 애호하는 어린이를 기르는 문화인, 기본 생활 습관을 익히고 착한 일을 실천하는 어린이를 기르...

  • 옥동학교설립송덕불망비(玉洞學校設立頌德不忘碑)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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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옥동리 옥동초등학교에 있는 장학비. 조광호는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석장리에서 가난한 농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배움이 적었는데 조광호는 이 점을 매우 안타까워하였다. 가난을 이기고자 열심히 상업에 종사한 조광호는 가세를 일으키게 되는데 이때 번 돈을 교육 사업에 기부하기로 결심한다. 10㎞ 이상 떨어진 읍내 학교에 다니는 어린이들을 위하...

  • 옥성리(玉城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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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옥산리(玉山里)의 ‘옥(玉)’자와 두성리(豆城里)의 ‘성(城)’자를 따서 옥성리(玉城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진천군 백락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능동리·두성리·판랑리·취라리·옥산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옥성리라 하고 문백면에 편입되었다. 북쪽으로 봉화산(烽火山)[411m...

  • 옥성리 보루(玉城里堡壘)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 오미마을에 있는 고려시대 방어 시설. 옥성리 보루는 9세기 이후 충청북도 진천과 청주 사이의 옛길을 방어하기 위하여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옥성리 보루는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 오미마을 입구에 있는 해발 91.8m의 독립된 봉우리에 위치한다. 태산천 동측에 솟아 남북의 교통로를 차단한 위치에 축성되어 있으며, 국도 37호선의 동편에 자리한다....

  • 옥성리 사지탑(玉城里寺址塔)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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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에 있었던 고려시대 석탑. 옥성리 사지탑은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 동북쪽 산 아래 옥성리 절터에 있었다. 현재는 도난당하여 정확한 형태를 알 수 없으나, 옥성리 절터를 1963년 처음으로 조사한 정영호 교수의 글을 전재하면 다음과 같다.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 옥산 부락에서 골짝으로 약 1㎞쯤 올라가면 노변 밭둑에 삼층석탑과 석불좌상이 유존한다...

  • 옥성리 석불좌상(玉城里石佛坐像)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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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에 있는 조선시대 석조 불상. 옥성리 석불좌상은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 429번지 느랭이마을에 있으며 조선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106㎝ 높이의 옥성리 석불좌상은 마멸이 심하여 전체적으로 판별하기가 쉽지 않다. 불두의 나발(螺髮)이나 육계(肉髻)·백호(白毫) 부분의 구분이 어려우며, 상호(相好)의 눈·코·입·귀가 모두 마멸되어 윤곽조차 나타나지...

  • 옥성리 석조약사여래좌상옥성리 석불좌상(玉城里石佛坐像)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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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에 있는 조선시대 석조 불상. 옥성리 석불좌상은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 429번지 느랭이마을에 있으며 조선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106㎝ 높이의 옥성리 석불좌상은 마멸이 심하여 전체적으로 판별하기가 쉽지 않다. 불두의 나발(螺髮)이나 육계(肉髻)·백호(白毫) 부분의 구분이 어려우며, 상호(相好)의 눈·코·입·귀가 모두 마멸되어 윤곽조차 나타나지...

  • 옥성리 유적(鎭川玉城里遺蹟)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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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에 있는 삼국~고려시대 보루. 1992년 청주박물관에 의해 문백면 오미마을에서 회청색 경질토기 등이 채집되었다. 채집 유물과 입지 조건을 고려할 때 누각이나 정자 등의 건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어 2002년 발굴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 옥성리 유적은 고려시대에 일시적으로 사용된 방어 시설, 즉 보루로 추정되었다. 유적 내에서는 저장 시설과 용도 미상...

  • 옥성리 전적지(玉城里戰蹟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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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에 있는 의병장 한봉수의 항일 전적지. 한봉수(韓鳳洙)[1883~1972]는 충청북도 청원군 북일면 세교리에서 태어났다. 1907년 7월부터 1910년까지 충청도와 강원도 등지에서 34회에 걸쳐 일본군과 싸워 승리를 거둔 청주 지역의 대표적인 의병장의 한 사람이다. 1910년 한봉수는 중국으로 망명하려다 서울 남대문역에서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 옥성리 절터(玉城里寺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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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옥성리 절터는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 옥산마을에서 북쪽으로 약 700m 지점에 있는 골재 채취 공장 맞은편에 위치한다. 옥성리 절터의 주변이 모두 논으로 경작되고 있어 유구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절터에 대한 조선시대 이전의 문헌 기록은 없으나 일제강점기에 편찬된 『상산지(常山誌)』에 의하면, “높이 5장이나 되는 오...

  • 옥성리사지옥성리 절터(玉城里寺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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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옥성리 절터는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 옥산마을에서 북쪽으로 약 700m 지점에 있는 골재 채취 공장 맞은편에 위치한다. 옥성리 절터의 주변이 모두 논으로 경작되고 있어 유구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절터에 대한 조선시대 이전의 문헌 기록은 없으나 일제강점기에 편찬된 『상산지(常山誌)』에 의하면, “높이 5장이나 되는 오...

  • 옥성저수지(玉城貯水池)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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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에 있는 농업 관개용 저수지.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는 본래 진천군 백락면(白洛面)에 속해 있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능동리(陵洞里)·두성리(豆城里)와 판랑리(板郞里)·취라리(吹羅里)·옥산리(玉山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옥산(玉山)과 두성(豆城)의 이름을 따서 옥성리라 하여 문백면에 편입되었다. 문백면사무소 소재지이며, 지역...

  • 옥정리고개옥정현(玉井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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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신계리 고갯새울마을과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옥정리를 연결하는 고개. 옥정(玉井)은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옥정리를 가리킨다. 따라서 옥정현(玉井峴)은 ‘옥정리로 넘어가는 고개’라서 붙은 이름이며, 달리 옥정리고개로도 부른다. 옥정은 전국적으로 발견되는 지명이다. 그리고 거의 예외 없이 ‘좋은 우물’로 풀이한다. 특히 충청남도 당진군 송악면 한진리의 옥정마을은...

  • 옥정현(玉井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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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신계리 고갯새울마을과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옥정리를 연결하는 고개. 옥정(玉井)은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옥정리를 가리킨다. 따라서 옥정현(玉井峴)은 ‘옥정리로 넘어가는 고개’라서 붙은 이름이며, 달리 옥정리고개로도 부른다. 옥정은 전국적으로 발견되는 지명이다. 그리고 거의 예외 없이 ‘좋은 우물’로 풀이한다. 특히 충청남도 당진군 송악면 한진리의 옥정마을은...

  • 온새미로학교(-學校)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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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벽암리에 있는 청소년 방과후 아카데미. 온새미로학교는 방과 후 보호가 필요한 청소년들의 문화 체험 활동과 복지, 보호 지도를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학교와 가정, 지역 사회가 연계하여 공교육을 보완하는 방과 후 활동을 통한 공적 서비스 기능 강화와 청소년의 건강한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진천군의 방과 후 아카데미 학교의 명칭인 온새미로는 ‘자연...

  • 옹암(甕岩)독바위마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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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삼덕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마을에 천연적으로 생긴 항아리 모양의 바위인 독바위가 있어 붙인 이름이다. 마을에서 오씨가 번성했을 때는 오독바위라 하였다. 마을의 지명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 온다. 아주 오랜 옛날 마을에 할아버지·할머니·아들·며느리·손자·손자며느리 등 여섯 식구가 다정하게 살았는데, 인심이 무척 후하여 진천을 찾는 행인이면 누구나...

  • 옹암마을독바위마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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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삼덕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마을에 천연적으로 생긴 항아리 모양의 바위인 독바위가 있어 붙인 이름이다. 마을에서 오씨가 번성했을 때는 오독바위라 하였다. 마을의 지명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 온다. 아주 오랜 옛날 마을에 할아버지·할머니·아들·며느리·손자·손자며느리 등 여섯 식구가 다정하게 살았는데, 인심이 무척 후하여 진천을 찾는 행인이면 누구나...

  • 옹암마을 화재 사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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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으로부터 약 10여 년 전인 1997년쯤의 어느 봄날이었다. 가뜩이나 건조하고 바람이 많은 봄 날씨였는데, 그날따라 평소와 다르게 바람이 몹시 심하게 불었다. 마을의 바쁜 오전이 지나고 평화로운 오후가 찾아올 12시에서 1시 사이쯤 소의 머리 형상에 해당하는 독바위 쪽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독바위 쪽에서 불이 난 것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삼덕리 옹암마을 사는 김춘자 할머니였다...

  • 완위각 터(宛委閣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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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에 조선 후기 문인화가 이하곤의 고택이 있던 터. 완위각(宛委閣) 터는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양촌마을에 위치하며, 조선 후기의 문인화가이며 장서가였던 담헌(澹軒) 이하곤(李夏坤)[1677~1724]이 거주하였던 고택임과 동시에, 조선 후기 4대 장서각 중 하나였던 완위각(만권루)이 자리하였던 곳이다.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의 진천 초평농공단지가...

  • 왜 구말장인지 알려 주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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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산읍의 중심부이기도 한 용몽리 시장마을은 예전에 구말장이라고도 불렸던 덕산장이 크게 번성했던 곳이다. 진천장과 규모를 나란히 했었다는 덕산장의 중심부인 시장마을은, 다시 한 번 화려했던 옛 시절의 영광을 재현할 날을 꿈꾸고 있다. 구말이 무엇일까? 구말장으로도 불렸다는 이 마을은 바로 덕산읍 용몽리에 있는 시장마을을 말한다. 진천문화원에서 편찬한 『내고장 전통 가꾸기』에 의하면...

  • 왜가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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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 보호 지역에서 서식하는 왜가리과에 속하는 조류. 몸길이는 90~100㎝, 날개길이는 42~48㎝, 꼬리길이는 16~18㎝이다. 몸무게는 1.1~1.3kg인데 다리와 부리가 길다. 정수리·목·가슴·배는 흰색, 등은 청회색을 띠며 머리에서 뒷목에 이르기까지 검은 줄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부리와 다리는 계절에 따라 노란색이나 분홍색을 띤다. 왜가...

  • 왜가리와 백로의 영원한 안식처 진천 노원리 왜가리 번식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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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은 떠나고 돌아오고 또 떠나는 일의 연속이며 그 여정에 다름 아니다. 프랑스의 석학 자크 아탈리는, 인류는 끊임없는 이동 속에서 문명을 탄생시키고 제국을 건설했으며 600만 년 인류사에서 정착민의 역사는 고작 0.1%에 불과함을 역설한 바 있다. 사람뿐만 아니라 새 중에도 떠나고 돌아오는 일을 반복하는 새가 있으니, 그것들을 일러 철새라 한다. 제비가 그렇고 왜가리가 그러하거니와...

  • 왜초(倭草)담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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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생산되는 담배. 담배의 원산지는 아메리카 대륙으로 알려져 있으며, 멕시코의 마야족이 최초로 담배를 피웠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1605년 나가사키에서 처음으로 담배를 재배하였다고 하며, 우리나라에는 1616년(광해군 8) 일본에서 들어왔다. 당시 일본에서 들어온 담배를 남초(南草)·왜초(倭草)라 하였고, 중국 베이징이나 기독교인들이 들어온 담배를 서초(西草)라고...

  • 외구마을에 있던 문백광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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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천읍 방향에서 구곡리 방향으로 가다가 가장 첫 번째로 만날 수 있는 곳이 구산동 외구마을이다. 그리고 이곳에는 약 60여 년 전까지도 문을 열었던 문백광산이 있다.  외구마을 입구에서 마을길을 따라 약 200m를 올라가면 외구마을 뒤편으로 그리 높지 않은 산이 보인다. 산허리는 현재 밭으로 이용되고 있는데, 예전에는 광산으로 이용되던 곳이기 때문에 산세가 험하지 않아 광산 입구...

  • 외국인근로자한마당잔치(外國人勤勞者-)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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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매년 10월경 진천문화원 주관으로 개최되는 행사. 외국인근로자한마당잔치는 진천 관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화합의 장을 제공해 줌으로써 타국 생활의 어려움을 위로하고 공동체 의식을 증대하여 군의 이미지를 제고시키는 것은 물론, 근로 의욕 고취와 안정적인 생활 정착을 유도하고, 진천 지역 주민과 외국인 근로자들이 한데 어울려 서로의 벽을 허물고 한...

  • 외딴 산골 도둑 피해 산의 품으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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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서대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듣다가 임필수 할아버지에게 피서대가 어디쯤에 있는지 물어 보았다. “다리 건너 넘어 산인데 피서대가, 지금도 보이지. 그런데 지금은 물 땜에 못 가. 산 밑에 벌판이 있었는데 그 벌판이 잠겼어.”라며 피서대가 지금은 초평저수지 때문에 물에 잠겨 버렸다는 말을 해 주었다. 우리는 초평저수지에 잠긴 피서대를 직접 보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천년의...

  • 용구(用九)채성구(蔡聖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평강(平康). 자는 용구(用九), 호는 지비재(知非齋) 또는 지비자(知非子). 증조할아버지는 채흥선(蔡興先)이고, 할아버지는 채정간(蔡廷侃)이다. 아버지는 진사 채진형(蔡震亨)이며, 어머니는 김몽정(金夢禎)의 딸이다. 1612년(광해군 4) 아버지 채진형이 우거한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용몽리 몽촌마을이 가문의 근거지이다. 채성구(蔡聖...

  • 용기리(龍基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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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용전(龍田)의 ‘용(龍)’자와 신기(新基)의 ‘기(基)’자를 따서 용기리(龍基里)라 한 것으로 여겨진다. 조선 말기 청안군 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수의리·조중리·신기리·대주리·칠암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용기리라 하고 청주군 북이면에 편입되었다. 1945년 4월 1일 청주...

  • 용기리 구암 고인돌(龍基里龜岩支石墓)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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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용기리 구암 고인돌은 진천군 초평면 용기리 구암마을 774-3번지에 있다. 진천읍에서 국도 34호선을 따라가면 용정리 생목마을 삼거리가 나오고, 이곳에서 우회전하여 약 15㎞ 가면 오른쪽으로 지방도 510호선과 만난다. 이 도로를 따라 2㎞ 정도 가다가 나오는 구암마을 노인회관 뒤쪽 언덕 밭 가운데에 있다. 2009년 현재...

  • 용기리 구암 지석묘용기리 구암 고인돌(龍基里龜岩支石墓)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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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용기리 구암 고인돌은 진천군 초평면 용기리 구암마을 774-3번지에 있다. 진천읍에서 국도 34호선을 따라가면 용정리 생목마을 삼거리가 나오고, 이곳에서 우회전하여 약 15㎞ 가면 오른쪽으로 지방도 510호선과 만난다. 이 도로를 따라 2㎞ 정도 가다가 나오는 구암마을 노인회관 뒤쪽 언덕 밭 가운데에 있다. 2009년 현재...

  • 용기리 느티나무(龍基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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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기리에 있는 수령이 310년의 느티나무. 느티나무는 산기슭이나 마을 부근에서 자란다. 굵은 가지가 사방으로 갈라지고, 가지가 고루 퍼져서 둥근 나무 모양을 만들며 잎이 많아서 좋은 나무 그늘을 만들기 때문에 정자나무로 가장 많이 심는다. 나무껍질은 회백색이나 회갈색으로 다소 밋밋하며 비늘처럼 떨어지고, 껍질눈은 옆으로 길어진다. 잎은 어긋나고 긴 타원형이...

  • 용기리 방죽안 고인돌군(龍基里支石墓群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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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기리 방죽안마을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고인돌은 우리나라 청동기시대 무덤의 일종으로, 세계 곳곳의 선사 및 고대 거석 기념물(巨石 記念物) 건립과 비슷한 맥락에서 축조의 사회적 배경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나라 고인돌은 외형에 따라 크게 탁자식(卓子式)[북방식], 기반식(碁盤式)[남방식], 개석식(蓋石式)[무지석식], 위석식(圍石式)[제주도식] 등...

  • 용기리 방죽안 지석묘군용기리 방죽안 고인돌군(龍基里支石墓群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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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기리 방죽안마을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고인돌은 우리나라 청동기시대 무덤의 일종으로, 세계 곳곳의 선사 및 고대 거석 기념물(巨石 記念物) 건립과 비슷한 맥락에서 축조의 사회적 배경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나라 고인돌은 외형에 따라 크게 탁자식(卓子式)[북방식], 기반식(碁盤式)[남방식], 개석식(蓋石式)[무지석식], 위석식(圍石式)[제주도식] 등...

  • 용기리 버드나무(龍基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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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기리에 있는 수령 200년의 보호수. 버드나무는 개울가나 산기슭에서 많이 자라며, 높이 20m에 이른다. 나무껍질은 암갈색이나 어린 가지는 황록색을 띤다. 잎은 어긋나며 피침 모양이고 길이 5~12㎝, 너비 7~15㎜이다. 가장자리에 안쪽을 향해 굽은 톱니가 있다. 잎 앞면은 녹색이며 털이 없고, 뒷면은 흰빛이 돌며 가운데 잎맥을 따라 털이 있으나 점차...

  • 용기리 용전 고인돌(龍基里龍田支石墓)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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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용기리 용전 고인돌은 진천군 초평면 용기리 용전마을 643-1번지에 있다. 진천읍에서 국도 34호선을 따라가면 용정리 생목마을 삼거리가 나오고, 이곳에서 우회전하여 15㎞ 정도 가면 오른쪽으로 지방도 510호선과 만난다. 이 도로를 따라 약 2㎞ 가다가 왼쪽으로 넓은 논이 보이면서 나오는 용전마을 동쪽 들판에 위치하고 있다...

  • 용기리 용전 지석묘용기리 용전 고인돌(龍基里龍田支石墓)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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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용기리 용전 고인돌은 진천군 초평면 용기리 용전마을 643-1번지에 있다. 진천읍에서 국도 34호선을 따라가면 용정리 생목마을 삼거리가 나오고, 이곳에서 우회전하여 15㎞ 정도 가면 오른쪽으로 지방도 510호선과 만난다. 이 도로를 따라 약 2㎞ 가다가 왼쪽으로 넓은 논이 보이면서 나오는 용전마을 동쪽 들판에 위치하고 있다...

  • 용덕리(龍德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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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용진리(龍津里)의 ‘용(龍)’자와 덕가리(德加里)의 ‘덕(德)’자를 따서 용덕리(龍徳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진천군 백곡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용진리·덕가리·유곡리를 병합하여 용덕리라 하고 백곡면에 편입하였다. 북동쪽으로는 무제산(武帝山)[574m] 줄기인 백석봉(白石...

  • 용덕리 느티나무(龍德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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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용덕리에 있는 수령 약 330년의 보호수. 느티나무는 낙엽 활엽 교목으로, 홍주수·정자나무·귀목 등으로도 불린다. 어린 나무는 나무껍질이 반들반들한 반면, 늙은 나무는 거북등처럼 갈라진다. 길이 2~7㎝ 정도인 잎은 황록색으로 변하며, 4~5월 한 나무에 암꽃과 수꽃이 따로 핀다. 피목(皮目)[껍질눈]은 길어지며 잔가지는 가늘고 어린 것은 잔털이 있다. 부...

  • 용두산(龍頭山)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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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도하리에 있는 산. 약 200년 전 도하리에 마음씨 착하고 인정 많은 삼천석꾼 유 부자가 살고 있었다. 유 부자는 집에 오는 손님들을 잘 대접하였으므로 항상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유 부자의 자손이 장성하여 며느리를 본 뒤로는 더욱 손님을 잘 대접하여 이웃 마을 사람은 물론 인근에 사는 사람들까지 밤낮으로 찾아들었다. 며느리는 몇 달이 지나도 손님이 끊...

  • 용몽리(龍夢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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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용소리(龍沼里)의 ‘용(龍)’자와 몽촌리(夢村里) ‘몽(夢)’자를 따서 용몽리(龍夢里)라 하였다. 용소[일명 용소말]는 묘봉골 북쪽에 있는 마을로, ‘용이 승천한 못이 있는 마을’로 풀이한다. 몽촌은 면소재지가 있는 마을로, 1914년 이전에 발간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구말로 나오며 몽촌리(夢村...

  • 용몽리 농요단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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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천군 덕산읍에는 유명한 것이 있다. 바로 용몽리 농요이다.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용몽리 556-16번지에 위치한 ‘진천군 용몽리 농요보존회’는 자갈마당이 있는 건물에 사무실이 있다. 이곳의 건너편에는 세왕주조[옛 덕산양조장]가 자리하고 있다. 찾아가는 사람을 언제나 호탕한 웃음으로 맞이하여 주는 조평희 농요보존회장은 용몽리 토박이다. 4년간 사우디아라비아 국립농업대학교를 다니...

  • 용몽리 은행나무(龍夢里銀杏-)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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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용몽리에 있는 수령 310년의 보호수. 용몽리 은행나무는 높이 15m, 가슴높이 둘레 4.5m, 뿌리 부분 둘레 1.5m, 나무갓 너비 21m이다. 용몽리 은행나무는 1982년 11월 11일 노거수로서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관리면적은 8㎡이고, 채건병이 관리를 하고 있다. 나무 아래는 흙으로 되어 있고, 사면이 개방되어 있다. 안쪽으로 작은 비석이 하나 있...

  • 용산리(龍山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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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용대리(龍垈里)의 ‘용(龍)’자와 우산리(牛山里)의 ‘산(山)’자를 따서 용산리(龍山里)라 하였다. 용대는 용터의 한자 지명으로, 용이 승천한 곳이라는 뜻으로 붙은 이름이다. 우산은 소메·쇠매·소산 등의 한자 지명으로, 대체로 산의 형상이 와우형일 때 붙는다. 조선 말기 청안군 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

  • 용산리 고인돌군(龍山里支石墓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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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고인돌은 우리나라 청동기시대 무덤의 일종으로, 세계 곳곳의 선사 및 고대 거석 기념물(巨石 記念物) 건립과 비슷한 맥락에서 축조의 사회적 배경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나라 고인돌은 외형에 따라 크게 탁자식(卓子式)[북방식], 기반식(碁盤式)[남방식], 개석식(蓋石式)[무지석식], 위석식(圍石式)[제주도식] 등 네 가지 형...

  • 용산리 지석묘군용산리 고인돌군(龍山里支石墓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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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고인돌은 우리나라 청동기시대 무덤의 일종으로, 세계 곳곳의 선사 및 고대 거석 기념물(巨石 記念物) 건립과 비슷한 맥락에서 축조의 사회적 배경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나라 고인돌은 외형에 따라 크게 탁자식(卓子式)[북방식], 기반식(碁盤式)[남방식], 개석식(蓋石式)[무지석식], 위석식(圍石式)[제주도식] 등 네 가지 형...

  • 용소저수지(-貯水池)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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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회죽리에 있는 농업 관개용 저수지. 현재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회죽리는 본래 진천군 만승면에 속해 있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이목리죽동(梨木里竹洞)과 회안리(會安里)·중암리(中岩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회안(會安)과 죽동(竹洞)의 이름을 따서 회죽리라 부르게 되었다. 용소저수지는 1939년 12월 1일 저수지설치사업 인허가를 받아서...

  • 용신굿소두머니 용신제(-龍神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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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은탄리와 초평면 연담리 사이에 자리한 소두머니[牛潭]에서 매년 10월 용신(龍神)에게 올리는 의례. 소두머니 용신제는 무당들이 소두머니에서 용신굿을 하는데, 이때 마을 사람들이 농악을 앞세우고 농기구로 소박하게 거북을 만들어 마을의 안녕과 소원을 빌었다고 전해지는 데서 전래된 놀이이다. 이를 용신굿이라고도 한다. 어느 지역이든 물속에는 신이 있으며, 그 신...

  • 용왕제샘제(-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명암리에서 샘 주위를 돌며 비를 내리게 해 달라고 지내던 마을 제사. 샘제는 백곡면 명암리에서 가뭄이 들어 곡식의 피해가 심할 때 공동 우물에서 지내는 의식으로, 샘이 마르지 않고 물이 잘 솟도록 축원을 하고 비가 내리게 해 달라는 일종의 기우제이다. 이를 정주제(井主祭), 샘고사, 천제(泉祭), 용왕제(龍王祭)라고도 한다. 진천 지역의 샘제는 마을의 공동...

  • 용왕제정호제(井戶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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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구산리 상구부락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기 위해 지내는 마을 제사. 정호제(井戶祭)는 덕산읍 구산리 상구부락의 영천(靈泉)이라 불리는 동네 우물에서 정월 2일 밤 12시[子時]부터 3일 새벽 1시 사이에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이를 우물고사라고도 하며, 용왕을 신앙 대상으로 하는 마을 공동제(共同祭)로 『진천군지(鎭川郡誌)』에는 정주제(井主...

  • 용왕제용정리 정주제(龍亭里井主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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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부창부락의 우물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 용정리 정주제는 초평면 용정리 부창부락에 있는 옛날부터 사용되었던 동네 우물가에서 음력 정월 초 사흗날 정오에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기 위해 지내는 마을 제사이다. 이를 샘고사, 정호제(井戶祭), 용왕제(龍王祭), 천제(泉祭)라고도 부른다. 우물에 제사를 지내는 행사는 개인이...

  • 용이 승천했던 용소 터를 간직한 마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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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소’ 하면 ‘용이 승천한 연못’으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마을 사람들에 따르면, 옛날 용소마을 앞에 있는 큰 연못에서 용이 승천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고 한다. 『진천군 지명유래』라는 책을 보면, 용몽리 용소마을은 약 2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마을이다. 200년 전 마을 앞 들에 큰 연못이 있었는데, 어느 날 이 연못에서 용이 치솟아 오르더니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그...

  • 용정리(龍亭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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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용소(龍沼)의 ‘용(龍)’자와 쌍오정(双悟亭)의 ‘정(亭)’자를 따서 용정리(龍亭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진천군 초평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양촌리·지전리·부창리·생석리·연촌리를 병합하여 용정리라 하고 초평면에 편입하였다. 동남쪽으로 두타산(頭陀山)[598m]이 솟아 있...

  • 용정리 경주이씨 종가(龍亭里慶州李氏宗家)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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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에 건립된 경주이씨 종가. 용정리 경주이씨 종가는 진천읍에서 국도 34호선을 따라가다 초평면 용정리 초평삼거리를 지나면 나오는 초평면 내의 중앙부인 초평파출소[구 초평치안센터] 옆에 위치하고 있다. 도로에서 약 30m 정도 떨어져 있다. 경주이씨 가문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지관 두사충(杜師忠)이 진(陣)을 잘못...

  • 용정리 생곡 고인돌(龍亭里生谷支石墓)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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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용정리 생곡 고인돌은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생곡마을 612번지에 있다. 진천읍에서 국도 34호선을 따라가다 용정교를 지나면 초평면사무소가 있는 생곡마을에 이르는데, 용정리 생곡 고인돌은 초평면사무소 뒤 언덕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2009년 현재 존재만 확인되었을 뿐 발굴 조사는 진행되지 않았다. 1992년 국립청주박물관...

  • 용정리 생곡 지석묘용정리 생곡 고인돌(龍亭里生谷支石墓)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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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용정리 생곡 고인돌은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생곡마을 612번지에 있다. 진천읍에서 국도 34호선을 따라가다 용정교를 지나면 초평면사무소가 있는 생곡마을에 이르는데, 용정리 생곡 고인돌은 초평면사무소 뒤 언덕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2009년 현재 존재만 확인되었을 뿐 발굴 조사는 진행되지 않았다. 1992년 국립청주박물관...

  • 용정리 양촌마을 경주이씨 세거지(龍亭里陽村-慶州李氏世居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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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양촌마을에 있는 경주이씨 세거지. 용정리가 속한 초평면은 조선 말 31개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산정면(山井面)의 3개리와 문방면(文方面)의 오경리를 편입하고, 삼티리를 음성군 원남면에 넘겨 모두 5개리로 개편되었다. 그 후 덕산면 오갑리, 문백면 연담리, 청원군 북이면의 4개리를 편입하여 11개리가 되었다. 용정리는 1914...

  • 용정리 절터(龍亭里寺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에 있는 삼국시대 절터. 용정리 절터는 삼국시대 사찰이 있던 곳인데, 문헌 기록이나 명문 자료가 없어 절터의 명칭이나 내력은 전혀 알 수 없다. 용정리 절터는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생곡마을 북쪽의 야산에 위치한다. 초평면사무소 바로 뒤쪽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약 250m 가다 보면 커다란 느티나무가 서 있는데, 이곳이 용정리 절터이다. 용정...

  • 용정리 정주제(龍亭里井主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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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부창부락의 우물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 용정리 정주제는 초평면 용정리 부창부락에 있는 옛날부터 사용되었던 동네 우물가에서 음력 정월 초 사흗날 정오에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기 위해 지내는 마을 제사이다. 이를 샘고사, 정호제(井戶祭), 용왕제(龍王祭), 천제(泉祭)라고도 부른다. 우물에 제사를 지내는 행사는 개인이...

  • 용정리사지용정리 절터(龍亭里寺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에 있는 삼국시대 절터. 용정리 절터는 삼국시대 사찰이 있던 곳인데, 문헌 기록이나 명문 자료가 없어 절터의 명칭이나 내력은 전혀 알 수 없다. 용정리 절터는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생곡마을 북쪽의 야산에 위치한다. 초평면사무소 바로 뒤쪽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약 250m 가다 보면 커다란 느티나무가 서 있는데, 이곳이 용정리 절터이다. 용정...

  • 용허리에서 피가 나왔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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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곡리 농다리 건너에는 용의 허리같이 생긴 고개가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용고개 또는 살고개라 부르고 있었다.  용고개[살고개]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어 보기 위해 내구마을에 살고 있는 임기용 할아버지 댁을 방문하였다. 집에서 왕골을 이용해 수공예품을 만들고 계시던 임기용 할아버지가 우리들을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다. 마을의 지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용고개와 관련된 이...

  • 용화사(龍華寺)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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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신정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5교구 본사 법주사의 말사. 용화사(龍華寺)는 속칭 ‘걸미산 미륵당’이라 불린다. 용화사(龍華寺)는 1959년에 비구니 한자심이 신축한 절이다. 본래 고려시대의 절터로서 현재 거대한 석조미륵불입상이 남아 있다. 주변에서 석조여래입상이 발견되어 진천문화원으로 이전하였다가 최근 다시 경내로 이전해 왔으며, 인근의 한 민가에는 석...

  • 용화사 석불입상노원리 석조보살입상(老院里石造菩薩立像)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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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 궁동마을에 있는 고려시대 불상. 궁동마을 옥녀봉 동쪽 기슭에 있다. 전체 높이는 203㎝로 지상으로 드러난 부분의 크기를 보면 불두와 상체 부분이 1대 2.5 정도의 비율로 이루어져 있다. 머리 부분의 형태는 거의 정사각형이며, 머리에는 짧은 보관을 쓰고 있다. 양 눈썹 사이에는 백호공(白毫孔)의 흔적이 남아 있고, 미간에는 눈·코·입의 윤곽이 또렷...

  • 용화사 석조보살입상(龍華寺石造普薩立像)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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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신정리 용화사에 있는 고려시대 석조 불상. 진천군 진천읍 신정리 584-4번지 용화사 경내에 있는 용화사 석조보살입상은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측되며, 1980년 용화사 앞의 개울가에서 불두와 불신이 분리된 채 발견되었다. 그 후 복원되어 진천문화원 정원에 전시되었다가 다시 용화사 경내로 봉안되었다. 법주사에서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 높이 233㎝,...

  • 우물고사정호제(井戶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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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구산리 상구부락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기 위해 지내는 마을 제사. 정호제(井戶祭)는 덕산읍 구산리 상구부락의 영천(靈泉)이라 불리는 동네 우물에서 정월 2일 밤 12시[子時]부터 3일 새벽 1시 사이에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이를 우물고사라고도 하며, 용왕을 신앙 대상으로 하는 마을 공동제(共同祭)로 『진천군지(鎭川郡誌)』에는 정주제(井主...

  • 우석(于石)신헌(申櫶)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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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에서 개항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무신이자 외교가. 신헌(申櫶)은 1810년(순조 10) 출생하여 1884년(고종 21) 사망하였다. 근대로의 전환의 상징적 사건인 강화도조약 체결 당시 조선의 대표인 전권대신(全權大臣)으로 활약한 것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조선 후기 전형적인 무관 가문의 하나인 평산신씨 문중에서 태어나서 실학과 개화파의 영향을 받아 근대적인 군사제도의...

  • 우석(于石)신헌(申櫶)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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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에서 개항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무신이자 외교가. 신헌(申櫶)은 1810년(순조 10) 출생하여 1884년(고종 21) 사망하였다. 근대로의 전환의 상징적 사건인 강화도조약 체결 당시 조선의 대표인 전권대신(全權大臣)으로 활약한 것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조선 후기 전형적인 무관 가문의 하나인 평산신씨 문중에서 태어나서 실학과 개화파의 영향을 받아 근대적인 군사제도의...

  • 우여곡절 많던 군대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6·25전쟁이 일어났을 때 진천군은 매우 위험한 지역이었다. 임필수 할아버지도 문상국민학교[현 문상초등학교] 고등과를 다니던 시절 2차 의용군에 뽑혀 18세의 나이에 군대를 가게 되었다. 당시는 이제 막 전쟁이 발발한 때여서 군대 생활은 평탄치 않았다. 할아버지는 특히 군 생활을 하면서 폭격을 맞은 이야기며, 마을이 전쟁을 겪었던 이야기들을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나 열여덟에...

  • 우영메디칼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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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상신리에 있는 전기식 진단 및 의료기기 제조업체. (주)우영메디칼은 최상의 의료기기 제품 생산을 통하여 인류의 건강과 행복에 기여하고, 회사 구성원의 삶의 가치를 구현하며, 기업의 사회적 소명을 다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95년 1월~1996년 4월 의약품 주입기의 개발·완료에 이어 1996년 10월 1일 (주)우영메디칼을 설립하였다. 1996년 11월...

  • 우천(牛川)김적(金適)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호는 우천(牛川). 안찰사(按察使) 김사렴(金士廉)의 7대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김철(金轍)이고, 할아버지는 김석명(金碩鳴)이며, 아버지는 김효건(金孝騫)이다. 외조부는 이박(李璞)이며, 장인은 우희보(禹熙輔)이다. 김적(金適)[1564~?]은 1610년(광해군 2) 치러진 별시 을과에 1등으로 급제한 뒤 이조정랑에 보직...

  • 운명으로 타고난 천생연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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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덕리 하덕마을 김상근 할아버지 댁을 찾아간 날, 할아버지의 부인인 조숙자 할머니가 대문 앞에서 콩을 털고 있었다. 흔히들 부부는 살아가면서 닮는다는 말이 있다.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곳을 바라보고, 희로애락을 같이 하다 보면 그럴 수 있다고 옛 어른들은 말한다. 조숙자 할머니와 김상근 할아버지를 본 첫인상은, 모르는 사람이 보면 남매로 느낄 만큼 상당히 많이 닮았구나 하는...

  • 운석(雲石)이병화(李秉華)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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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군 출신의 육영 독지가. 이병화(李秉華)는 지금의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고학으로 한학(漢學)을 익혀 칠서(七書)를 섭렵하는 한편, 일찍이 약관의 나이 때부터 상업에 종사하여 거금을 모았다. 부모에게 효성을 다하고, 가난한 이웃에게 많은 도움을 베풀었다. 성공회의 임인재(任寅宰) 신부가 학원을 개설하여 가난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문맹...

  • 울진임씨(蔚珍林氏)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임팔급을 도시조로 하고 임우를 중시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 성씨. 도시조 임팔급(林八及)은 당나라에서 용도각한림학사·행병부상서를 지내다가 참소를 당하자 동료들과 함께 신라로 망명하여 평택현 용포리에 정착하였다. 적병이 침범하자 의병을 일으켜 이를 격파하였고, 그 공으로 평택군(平澤君)에 봉해졌다. 중시조 임우(林祐)는 부안임씨(扶安林氏)의 1대조 임계미(林季美)의 현손인...

  • 원광은혜의 집진천원광은혜의 집(鎭川圓光恩惠-)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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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태락리에 있는 노인 전문 요양 시설. 진천원광은혜의 집은 생활보호수급대상자 중 65세 이상의 치매, 중풍 등 중증 노인성 질환의 치료 및 간호를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2006년 7월 12일 기공, 이듬해인 2007년 3월 12일 건물이 완공되었다. 2007년 5월 22일 개원식을 거행했으며 2008년 1월 30일 사회복지법인 은혜원으로 허가받아 현재에 이르...

  • 원덕리(院德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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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원동(院洞)의 ‘원(院)’자와 덕배리(德培里)의 ‘덕(德)’자를 따서 원덕리(院德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진천군 남변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원동·현조동(玄鳥洞)·덕배리를 병합하여 원덕리라 하고 군중면에 편입하였다. 1917년 군중면을 진천면으로 개칭하였고, 1973년...

  • 원덕리 고인돌(院德里支石墓)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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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원덕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원덕리 고인돌은 진천군 진천읍 원덕리 원동마을 129번지[원동길 92]에 있다. 진천읍에서 진천상업고등학교 남쪽으로 난 길을 가다가 원동마을 어귀에서 남서쪽으로 약 400m 가면 오른쪽 밭 가운데에 서 있다. 2009년 현재 존재만 확인되었을 뿐 발굴 조사는 진행되지 않았다. 판석(板石)[널돌] 모양의 덮개돌이 크게 두 쪽...

  • 원덕리 지석묘원덕리 고인돌(院德里支石墓)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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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원덕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원덕리 고인돌은 진천군 진천읍 원덕리 원동마을 129번지[원동길 92]에 있다. 진천읍에서 진천상업고등학교 남쪽으로 난 길을 가다가 원동마을 어귀에서 남서쪽으로 약 400m 가면 오른쪽 밭 가운데에 서 있다. 2009년 현재 존재만 확인되었을 뿐 발굴 조사는 진행되지 않았다. 판석(板石)[널돌] 모양의 덮개돌이 크게 두 쪽...

  • 원불교 진천교당(圓佛敎鎭川敎堂)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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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교성리에 있는 원불교 충북교구 소속의 교당. 원불교는 불법을 주체삼아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 파란고해의 일체 생령을 광대 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기 위해 설립된 종교이다. 진천군에 설립된 교당 또한 이러한 근본적인 목적을 가지고 자신을 수양하고 참회하며 혼란한 시국 속에서 민족의 혼을 일깨우고, 땅에 떨어진 인륜의 정신을 바로 세우고자...

  • 원불교 진천교당(圓佛敎鎭川敎堂)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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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교성리에 있는 원불교 충북교구 소속의 교당. 원불교는 불법을 주체삼아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 파란고해의 일체 생령을 광대 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기 위해 설립된 종교이다. 진천군에 설립된 교당 또한 이러한 근본적인 목적을 가지고 자신을 수양하고 참회하며 혼란한 시국 속에서 민족의 혼을 일깨우고, 땅에 떨어진 인륜의 정신을 바로 세우고자...

  • 원일소발머리카락 태우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정초에 여인들이 빠진 머리를 모아 두었다가 태우는 풍속. 머리카락 태우기는 문백면 문덕리 미래마을에서 섣달 그믐날이나 설날 저녁에 그 해의 액을 막기 위해 지난 한 해 동안 모은 머리카락을 문 밖에서 태우는 풍속이다. 이를 ‘머리카락 사르기’라고도 하며, 한자어로는 원일소발(元日燒髮)이라고 한다. 옛날 사람들은 머리카락을 함부로 버리는 것을 꺼려 기름종이로...

  • 원장관 산신제(元長管山神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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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장관리 원장관부락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지내는 마을 제사. 원장관 산신제는 원장관부락 서편에 있는 상산(常山) 중턱에서 음력 정월 14일 자정에 지내는 마을 공동의 제사이다. 이를 산제사 또는 산제라고도 한다. 산신제는 마을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무나 행할 수 없으므로 반드시 제관을 선출한다. 산신제일로부터 3~4일[음력 정월 10~11일...

  • 원주변씨(原州邊氏)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변안렬을 시조로 하고, 변상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 성씨. 원주변씨(原州邊氏)는 노국공주(魯國公主)를 따라 입국한 무신 변안렬(邊安烈)을 시조로 하고, 조선 성종 때 변상(邊詳)이 진천군 진천읍 상신리로 이주하면서 세거하기 시작하였다. 변안렬은 공민왕과 왕비 노국공주를 배종하고 귀국하여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을 격퇴시켜 이등공신(二等功臣)으로 판소부감사(判...

  • 원편목(圓扁木)미선나무(尾扇-)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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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에서 서식하는 쌍떡잎식물 물푸레나무목 물푸레나무과의 낙엽 활엽 관목. 미선나무는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식물로 조선육도목(朝鮮六道木), 원편목(圓扁木), 시과육도목(翅果六道木), 단편목(團扁木)이라고도 한다. 미선나무의 학명 아벨리오필럼 디스티쿰(Abeliophyllum distichum)에서 아벨리오필럼은 댕강나무 잎을 닮아서 유래되었으며, 디스티쿰은...

  • 원황후궁 터(元皇后宮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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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에 있는 고려 후기 궁터.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 궁골은 원나라를 세운 쿠빌라이 황제의 황후였던 오씨(吳氏)의 출생지라고 한다.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 진천군 고적조에 의하면, 원황후궁 터는 원나라 황후 오씨가 자신의 부모를 위해 궁골에 지어 주었다는 궁터를 말한다. 그러나 학술적인 조사가 진행되지 못해 정확한 실체는 알 수 없다. 진천읍에서 장...

  • 월령세시풍속(歲時風俗)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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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한 해를 단위로 일정한 시기에 관습적·주기적·전승적·반복적·의례적으로 거행하는 행동 양식이나 생활 행위. 세시풍속은 음력 정월부터 섣달까지 같은 주기에 반복하여 거행하는 주기전승(週期傳承)의 의례적인 행위이다. 이를 세시(歲時), 월령(月令), 세절(歲節)이라고도 한다. 일 년 혹은 수년을 단위로 같은 시기에 반복되는 주기전승 의례이기에 시계성과 주기성·순...

  • 월성리(月城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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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월굴리(月屈里)의 ‘월(月)’자와 검성리(倹城里)의 ‘성(城)’자를 따서 월성리(月城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진천군 만승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하장리·강당리·월굴리와 광동리·광서리·검성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월성리라 하고 만승면에 편입하였다. 2000년 1월 1일...

  • 월성리 선돌(月城里立石)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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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월성리에 있는 선돌. 선돌은 고인돌과 함께 우리나라 선사시대를 대표하는 거석기념물(巨石記念物)로 알려져 있는데, 축조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는 것이 많다. 전국에 걸쳐 고루 분포하며 보통 1~2m 높이의 자연석을 그대로 혹은 일부를 다듬어 세운다. 대부분 단독으로 존재하지만 쌍을 이루기도 하는데 이 경우 윗부분이 뾰족하면 남성 선돌로, 둥글면 여성 선돌...

  • 월성리 선돌(月城里立石)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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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월성리에 있는 선돌. 선돌은 고인돌과 함께 우리나라 선사시대를 대표하는 거석기념물(巨石記念物)로 알려져 있는데, 축조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는 것이 많다. 전국에 걸쳐 고루 분포하며 보통 1~2m 높이의 자연석을 그대로 혹은 일부를 다듬어 세운다. 대부분 단독으로 존재하지만 쌍을 이루기도 하는데 이 경우 윗부분이 뾰족하면 남성 선돌로, 둥글면 여성 선돌...

  • 위당(威堂)신헌(申櫶)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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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에서 개항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무신이자 외교가. 신헌(申櫶)은 1810년(순조 10) 출생하여 1884년(고종 21) 사망하였다. 근대로의 전환의 상징적 사건인 강화도조약 체결 당시 조선의 대표인 전권대신(全權大臣)으로 활약한 것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조선 후기 전형적인 무관 가문의 하나인 평산신씨 문중에서 태어나서 실학과 개화파의 영향을 받아 근대적인 군사제도의...

  • 위당(威堂)신헌(申櫶)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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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에서 개항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무신이자 외교가. 신헌(申櫶)은 1810년(순조 10) 출생하여 1884년(고종 21) 사망하였다. 근대로의 전환의 상징적 사건인 강화도조약 체결 당시 조선의 대표인 전권대신(全權大臣)으로 활약한 것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조선 후기 전형적인 무관 가문의 하나인 평산신씨 문중에서 태어나서 실학과 개화파의 영향을 받아 근대적인 군사제도의...

  • 유계열(柳癸烈)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개항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부. 유계열(柳癸烈)은 남편 이규창(李奎昌)이 전사하자 시부모를 위안하고 효성을 다하여 봉양하였다. 시어머니가 괴질에 걸리자 매일 정화수를 떠 놓고 하늘에 기도하여 3개월이 지나자 차도를 보았다고 『진천군지』와 『진천향토지』 등에 기록이 전하고 있다. 1902년 군수로부터 표창을 받았으며, 1903년 2월 전국선행자표창위원회의 표창을 받았다....

  • 유교(儒敎)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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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의 유교의 연원과 전개 현황. 유교는 공자(孔子), 맹자(孟子), 증자(曾子) 등 유가(儒家)의 정치사상과 학문 수양, 그리고 의례 등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현세적 사상이자 종교이다. 또한 유교는 불교 및 기독교와 함께 한국 3대 종교의 하나로 한국의 역사에서 가장 오랜 연원을 가지고 있는 전통 종교라는 차원을 넘어 정치·경제·문화 등 한국 사회와 역사 전반...

  • 유기문(柳起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광전(光前), 호는 쌍청(雙淸) 또는 청당(淸堂). 문간공(文簡公) 유권(柳權)의 14세손이고, 정신공(貞信公) 유승(柳陞)의 11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유종수(柳宗壽)이며, 아버지는 유헌민(柳憲民)이다. 유기문(柳起門)은 1589년(선조 22) 생원시에 입격(入格)하였으며, 1601년(선조 34) 식년 문과에 병과...

  • 유두면밀국수 먹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음력 6월 15일에 밀가루로 국수를 만들어 먹는 풍속. 밀국수 먹기는 덕산읍 구산리에서 대개 음력 6월 15일 유두(流頭)에 새로 수확한 밀을 빻아 국수를 만들어 이웃끼리 나누어 먹는 풍속이다. 이를 유두면(流頭麵)이라고도 일컫는다. 지역에 따라서는 밀가루로 구슬 모양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6월조에는 “소맥(小麥)[밀가루]으로...

  • 유득배(柳得培)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양숙(養叔), 호는 물재(勿齋). 현감 유헌민(柳獻民)의 6세손이다. 유득배(柳得培)는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특히 『소학(小學)』의 강론에 힘썼다. 덕성이 중후하고 문장이 뛰어나 고을에서 이름이 났다. 향공(鄕貢)으로 천거되었으나, 요절하여 고을 사람들이 모두 애석해하였다. 진천군에...

  • 유만엽 처 이씨(柳萬葉妻李氏)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열녀. 이씨의 남편은 본관이 문화(文化)이며, 이름은 유만엽(柳萬葉)이다. 문화유씨의 시조인 유경(柳璥)은 고려 고종 때 최의(崔誼)의 무신 정권을 무너뜨림으로써 왕정을 회복하게 한 공으로 위사일등공신(衛社一等功臣)에 봉해졌다. 이 공로로 고향인 유주(儒州)를 식읍(食邑)으로 하사받으면서 유주, 즉 지금의 황해도 신천군 지역인 문화를 관향으로 삼게...

  • 유석 묘(兪晳墓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문봉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유석의 묘소. 유석(兪晳)은 진천군수 유희증(兪希曾)의 아들로 1625년(인조 2) 진천에서 태어났다. 자는 여백이며, 본관은 기계(杞溪)이다. 어려서부터 글과 말하기를 좋아하였다. 유석 묘는 진천군 덕산면 석장리에 위치하였으나, 중부 신도시 개발 사업으로 2009년 진천읍 문봉리 산19-16번지로 이전하였다. 유석 묘는 기계...

  • 유수응(柳秀應)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자화(子和), 호는 물기재(勿欺齋). 아버지는 유심원(柳心源)이다. 유수응(柳秀應)은 1864년(고종 1) 증광진사시에 3등 98위로 입격하였으며, 수직으로 동지(同知)에 올랐다. 전심으로 경학을 연구하였으며, 유고(遺稿)가 있다고 전해진다. 『상산지(常山誌)』에 관련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 유심(柳甚)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주(晋州). 정수(静叟) 문정공(文貞公) 유인숙(柳仁淑)의 7세손이다. 유심(柳甚)은 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하였고, 집에 있을 때도 항상 마음가짐과 몸가짐이 단정하고 예의에 벗어나는 일이 없어 군내 유림들이 고을의 효자라 하여 여러 차례 고을의 인재로 천거하였다....

  • 유심원(柳心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이자 유학자. 본관은 문화(文化). 현감 유헌민(柳獻民)의 8세손이다. 유심원(柳心源)은 어려서부터 품행이 어른스러웠는데, 일찍이 15세 때부터 부모님께 어른으로서 하는 효도를 행했다. 할머니가 70세가 되어 괴질을 앓았는데 의원이 뱀을 잡아먹는 메기를 먹어야 한다고 하자, 그물을 들고나가 냇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메기 한 마리를 잡아서 드시게 하...

  • 유언순(兪彦淳)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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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에서 활동한 효자.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경명(景明), 호는 태소재(太素齋). 할아버지는 의정부우참찬을 지낸 유명웅(兪命雄)이고, 아버지는 공릉참봉 유묵기(兪黙基)이다.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로 군수 이명승(李明升)의 딸이다. 유언순(兪彦淳)[1715~1748]은 7세의 어린 나이로 어머니의 죽음을 맞았음에도 장례를 치르는 태도가 어른과 같았으며,...

  • 유언순 효자문(兪彦淳孝子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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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석장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유언순의 정려 유언순은 7세 때 어머니의 죽음을 맞았는데, 장례를 치르는 것이 어른과 같고 슬퍼함이 지나쳐 병을 얻을 정도였다고 한다. 계모 조씨(趙氏)에게도 효성으로 최선을 다했으며, 16세 때 아버지가 병이 나자 직접 약을 달여 드리고, 아버지의 신체가 마비되어 움직이지 못하자 손가락을 베어 피를 마시게 하였다. 아버지가...

  • 유영제약 KGMP공장(-製藥-工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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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죽현리에 있는 유영제약의 의약품 제조 공장. 1981년 12월 (주)한중제약을 인수, 상호를 변경하여 (주)유영제약이 창립되었다. 1982년 6월 경기도 김포시 양촌면 양곡리 609-1번지[양곡로390번길 1]로 공장을 신축 이전하였다. 2010년 현재 자산 총계는 780억 8000만 원, 매출액은 716억 1700만 원이다. 회장은 이상원이며, 종업원...

  • 유인영(柳寅暎)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유인영(柳寅暎)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병석에 누운 아버지가 물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였지만, 병자년 그해 가뭄이 극심해 냇물이 모두 말라 물고기를 구할 수 없었다. 집을 떠나 멀리 큰물에 가면 물고기를 구할 수 있었겠지만, 병석의 아버지를 홀로 두고 멀리 갈 수 없어 하늘에 지성으로 기도를 올렸다. 그러자 이튿날 집 앞 냇가에서 작은...

  • 유재복(柳在福)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명(異名)은 유재창(柳在昶)이다. 1924년 4월 12일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 두성마을에서 출생하였다. 일본군에 강제 징집되었다가 탈출, 한국광복군에 편입되어 독립운동을 하였다. 유재복(柳在福)[1924~?]은 1943년 9월 진천에서 오상근(吳相根)과 같이 징집을 피해 도피하다가 일본군에 강제 징집되어 중국 산동성 제남현 덕...

  • 유재창유재복(柳在福)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명(異名)은 유재창(柳在昶)이다. 1924년 4월 12일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 두성마을에서 출생하였다. 일본군에 강제 징집되었다가 탈출, 한국광복군에 편입되어 독립운동을 하였다. 유재복(柳在福)[1924~?]은 1943년 9월 진천에서 오상근(吳相根)과 같이 징집을 피해 도피하다가 일본군에 강제 징집되어 중국 산동성 제남현 덕...

  • 유진장학회(-獎學會)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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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송두리에 있는 장학재단. 유진장학회는 사회 일반의 이익에 공여하는 「공익법인의 설립 운영에 관한 법률」의 규정에 따라 장학 지원 사업을 통하여 학생들의 면학 의욕을 고취함과 더불어 사회 발전 및 국가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인재로 양성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2004년 12월 21일 현금 3억 원의 기본 재산에 이사 5명, 감사 2명을 임원진으로 구성하여 설...

  • 유진풍(柳鎭豊)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문화(文化). 사헌부집의 유창국(柳昌国)의 6세손이다. 유진풍(柳鎮豊)[1773~?]은 어렸을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어릴 때 어머니가 병석에 누워 물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자, 그날 밤 꿈에 신령이 나타나 물고기를 구해 주었다. 유진풍은 이 물고기를 어머니에게 공양하여 병을 낫게 하였다. 이에 유림에서 여러 차례 영읍에 글을 올려...

  • 유창국(柳昌國)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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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문화(文化). 고려 고종 때의 대사성 유경(柳璥)의 후손이다. 유창국(柳昌國)은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가족들을 거느리고 진천 만노산성(萬弩山城)으로 피신하였는데, 이때 성에는 인근 7읍에서 모여든 수천 명의 피난민이 통솔자가 없는 무질서 상태에 있었다. 이에 유창국은 포의(布衣)의 신분이었으나 조감(趙感)과 함께...

  • 유창테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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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도하리에 있는 기계 장비 조립용 플라스틱 제품 제조업체. (주)유창테크는 국내 자동차 산업 발전에 전력투구하여 온 플라스틱 제품의 사출·도장 전문 회사로 고객에게 최대의 가치를 제공하는 신뢰받는 기업이 되기 위해 기업 활동의 모든 분야에서 결점이 발생하지 않도록 항상 최선을 다하고 있다. 1992년 11월 24일 삼화정밀로 설립되었으며 1994년 3월 (주...

  • 유촌(柳村)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진천군 출신의 문학가. 유촌(柳村)은 1907년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 355번지[봉죽길 76-11]에서 태어나 1961년에 세상을 떠났다. 유촌은 1927년 2월 청주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하고 그 해 진천군 이월면 서기 겸 기수로 근무하다가 1931년 8월 사임하였고, 1931년 9월부터는 제천군 농회 기수로 근무하다가 1934년 5월 사임하였다. 1934년 5월부...

  • 유치원(幼稚園)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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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에 있는 유아 교육 담당 기관. 충청북도 진천 지역 유아 교육 기관은 공립 유치원과 사립 유치원으로 나눌 수 있다. 2009년 현재 진천 지역에는 공립 유치원 15개와 사립 유치원 1개가 있으며 30개 학급에 원아 수는 총 525명이고 교원 수는 37명이다. 진천 지역 유치원은 1981년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보여 진다. 1981년 3월 1일 이월초등학교와 초평초등학...

  • 유풍노(柳豊魯)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무신. 유풍노(柳豊魯)는 철종 때에 무과에 급제하여 어영군초관(禦營軍哨官)으로 있다가 1871년(고종 8) 신미양요를 맞아 광성진(廣城鎭)전투에 참가하였다가 전사하였다. 신미양요 때 미군이 강화도 광성진에 침입하자 수비사령관 어재연(魚在淵) 장군 휘하의 어영군초관으로 군병을 이끌고 출전하였다. 먼저 총격을 가하여 군함 몇 척을 물리쳤으나, 뒤에서 응...

  • 유학원(柳學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문화(文化). 유인수의 후손이며, 효자 유희원(柳希源)[1769~?]의 동생이다. 유학원(柳学源)은 형 유희원처럼 효성이 지극하였다. 부모를 잘 섬기고 형의 뜻에 잘 따라 주변 사람들이 일문쌍효(一門䉶孝)라 칭송하였다. 유림들이 영읍에 유학원의 효행에 대한 글을 올려 동몽교관(童蒙教官)이 증직되었다....

  • 유형국 처 해주최씨(柳亨國妻海州崔氏)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에서 활동한 열녀. 본관은 해주(海州). 아버지는 최준(崔濬)이고, 오빠는 최유연(崔有淵)이며, 남편은 유형국(柳亨國)이다. 유형국 처 해주최씨는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벽암리에 살면서 1636년(인조 14) 한양에 있는 친정으로 근친을 갔다가 병자호란을 만나자, 승지를 지내던 오빠 최유연이 왕자와 비빈을 모시고 강화도로 피난 갈 때 함께 행렬을 따랐다. 그...

  • 유환익(柳煥益)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주(晋州). 진주군(晋州君) 유번지(柳藩之)의 후손이다. 유환익(柳煥益)은 집안이 곤궁하여 낮에는 품팔이를 하고 밤에는 집안일을 하며 부모 공양하는 일에 힘을 쏟았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병환이 나서 혼자 거동할 수 없게 되자, 어머니를 부축하여 일으키고 음식을 직접 떠서 드시게 하였다. 병수발을 든 지 십여 년이 지나 자신도 칠십의...

  • 유희원(柳希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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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문화(文化). 유인수의 후손이며, 유학원(柳学源)의 형이다. 유희원(柳希源)[1769~?]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의 뜻을 거역한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병환으로 자리에 눕자 책을 보면서 밤을 밝힌 채 잠시도 곁을 비우지 않고 간병을 하였다. 엄동설한에도 하늘에 기도하여 잉어를 구해다 봉양하였다. 상을 당해서는 죽과 채소만으로...

  • 유희원 효자문(柳希源孝子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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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유희원(柳希源)의 정려각. 유희원(柳希源)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남달라 부모의 뜻을 거역한 적이 없고, 부모가 노환으로 병석이 눕자 곁을 잠시도 떠나지 않고 뒷바라지를 하였다. 또한 엄동설한에도 앙천기도(仰天祈禱)하여 잉어를 구해 봉양하였다. 하지만 유희원(柳希源)을 모함하는 자들이 그가 불효막심하다고 관청에 거짓을 고하였다....

  • 육육당(六六堂)정해용(鄭海容)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연일(延日). 호는 육육당(六六堂). 증조할아버지는 정인환(鄭寅煥)이다. 정해용(鄭海容)은 성리학을 깊이 연구한 학자로 글과 그림에도 매우 뛰어났다. 『진천군지』에 정해용에 관한 기록이 실려 전한다....

  • 윤범국(尹範國)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칠원(漆原). 직제학을 지내고 청백리로 알려진 윤석보(尹碩輔)의 10세손이다. 윤범국(尹範國)은 어려서부터 부모를 섬기는 데 정성을 다하였다. 어머니 조씨가 병석에 누워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생선이 제일 좋다고 말하였다. 추운 겨울이라 냇가에는 얼음이 꽁꽁 얼어 물고기를 구할 길이 없자 얼음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눈물을 흘리며 빌었...

  • 윤병한(尹炳漢)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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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윤병한(尹炳漢)은 본관은 칠원(漆原), 호는 중암(重岩)이며, 1873년(고종 10) 3월 20일 충청남도 당진군 순석면 갈산리에서 출생하여 1932년 10월 4일 사망하였다. 대한제국 육군 참위인 윤병한은 일제가 강제로 군대를 해산하자 의병 항일전에 참여하다가, 한일병합 후 고향인 진천으로 돌아와 농민 계몽운동에 헌신하였다. 조림사...

  • 윤수(允壽)신팔균(申八均)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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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평산(平山). 호는 동천(東川), 자는 윤수(允壽)이다. 전통적인 무반 가문의 후예로서 구한말 시위대에서 근무하였다. 군대해산 뒤 만주와 북경, 상해 등에서 독립운동을 하였다. 신흥무관학교 교관이었으며, 대한통의부 군사위원장을 역임하였다. 신팔균(申八均)[1882~1924]은 판중추부사 신헌(申櫶)의 손자이며 한성부판윤 신석희(申...

  • 윷점치기(-占-)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음력 정월 초에 윷을 가지고 한 해의 운수나 풍흉을 점치는 풍속. 윷점치기는 백곡면 명암리에서 정초[음력 1월초]에 윷놀이를 하여 한 해의 운수를 점치는 풍속이다. 한자어로는 사점(柶占)이라고 한다. 윷점은 여러 사람이 편을 갈라 윷을 논 후 승부로 점을 치는 방법과 한 사람이 여러 번 윷을 던져 나온 결과로 점을 치는 방법이 있다. 집단적인 놀이는 어느...

  • 은성침례교회(-浸禮敎會)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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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용몽리에 있는 기독교한국침례회 소속의 교회. 한국침례회의 역사는 1889년 파송된 캐나다의 펜윅(Fenwick. M. C.) 독립 선교사로부터 시작된다. 1905년 교명을 대한기독교로 했으나 일제강점기인 1921년에 일제의 강압으로 동아기독교로 개명하는 등 수난을 겪다가 1944년에 교단이 해체되었다. 광복 후인 1949년 충남강경총회에서 대한기독교침례회로...

  • 은암리(隱岩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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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노은리(老隱里)의 ‘은(隱)’자와 소백암리(小白岩里)의 ‘암(岩)’자를 따서 은암리(隱岩里)라 하였다. 노은은 논[畓]에 대한 음차 표기로 여겨지며, 소백암은 진암리의 뱀골[일명 백암]보다 작아서 붙은 이름으로 여겨진다. 조선 말기 청안군 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노은리...

  • 은진송씨 얼을 기리는 열녀문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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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리서 보면 굴고개를 닮았다고 하여 굴테[일명 굴티]라고도 불리는 구산동마을은 크게 외구마을, 내구마을, 중리마을로 나뉜다.  진천읍에서 동남쪽으로 약 6㎞쯤 떨어진 양천산 연자봉 기슭에 터전을 잡고 있는 구산동마을은 왼쪽으로 미호천을 끼고 있다. 굴테 바깥쪽에 있다고 하여 밖굴테 혹은 바깥굴테라고 불리는 외구마을은 전주최씨의 600년 세거지로, 조선 개국원종공신인 최유경(崔有慶)...

  • 은진송씨 열녀문(恩津宋氏烈女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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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구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열녀 은진송씨의 정려. 은진송씨 열녀문(恩津宋氏 烈女門)은 조선 후기 호조참판이었던 임대철의 처인 은진송씨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은진송씨는 1845년(헌종 11) 남편이 죽자 장례를 치르기 전날 밤에 남편을 따르기 위해 30세의 나이로 죽음을 택하였다. 암행어사인 이승수(李昇洙)가 은진송씨의 열행을 듣고 감탄하여 감사에게 고...

  • 은탄리(銀灘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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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생긴 이름으로, 은탄리(銀灘里)는 은성(銀城)과 갈탄(葛灘)에서 한 자씩 따서 생긴 지명이다. 은탄리는 본래 진천군 백락면 지역이었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 정책에 따라 은성리·갈탄리·취라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은탄리라 명명하였다. 양천산[350m]과 불당산[288m]으로 뻗어 있고 동쪽에는 미호천이...

  • 은행나무(銀杏-)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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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을 상징하는 군목(郡木). 공손수(公孫樹)·행자목(杏子木)이라 하며 잎의 모양이 오리발을 닮았다 하여 압각수(鴨脚樹)라고도 한다. 연관종이 없는 특별한 종으로 은행나무문에 속하는 유일한 종이다. 열매가 살구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하여 살구 행(杏)자와 중과피가 희다 하여 은빛의 은(銀)자를 합하여 은행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진천군은 군을 상징하는 나무로 은행나무를...

  • 음식문화개선과 좋은 식단 우수군 선정(飮食文化改善-食單優秀群選定)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2008년 12월 충청북도 진천군이 보건복지부에서 선정한 음식문화 개선 및 좋은 식단 우수군 선정에서 포상을 받은 일. 보건복지부에서는 1992년 4월부터 음식의 낭비와 식량자원의 낭비를 막고 환경오염을 방지하기 위하여 ‘음식문화 개선 및 좋은 식단 실천사업’을 진행하였다. 매년 각 지역 시·군·구에서 ‘우수기관’이 선정되었고, 우수 공무원과 우수 업소 등도 포상을 받고 있다. 보...

  • 음식점(飮食店)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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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 있는 음식물을 조리하여 판매하는 곳. 충청북도 진천군은 예로부터 생거진천이라 할 정도로 살기 좋은 농촌마을로 생거진천 쌀과 함께 자연에서 나는 각종 농산물을 식재료로 사용하는 다양한 향토 음식점으로 유명한 곳이다. 특히 백곡저수지와 초평저수지 일대에 형성된 음식점들은 이곳에서 생산되는 수산물과 자연 재료를 이용한 다양한 음식을 판매하고 있다. 그리고 진천군의...

  • 음악(音樂)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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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소리를 소재로 사상과 감정을 나타내는 예술. 우리나라에서는 고대부터 악(樂)·가(歌)·무(舞)의 총체적인 개념이 음악의 일반적인 형태로 인식되어 왔는데, 여기에서 악이란 기악 음악을, 가는 성악을, 무는 춤을 가리킨다. 한국 음악은 한국 민족의 음악이다. 즉 우리말과 글을 쓰면서 민족 문화의 기본적인 동질성을 함께 누려 온 한국 사람의 음악인 것이다. 따라서...

  • 읍내리(邑內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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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에 속하는 법정리. 과거 진천군 남변면(南邊面) 지역을 읍내(邑內)라 부른 데서 유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리(上里)·하리(下里)의 각 일부와 남변면의 관문리·상장리를 병합하여 읍내리(邑內里)라 하고 군중면에 편입하였다. 1917년 군중면을 진천면으로 개칭하였고, 1973년 진천면이 진천읍으로 승격함에 따라 진천읍 읍내리가 되...

  • 읍면민속예술경연대회(邑面民俗藝術競演大會)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에서 매년 9~10월경 진천문화원 주관으로 개최되는 행사. 읍면민속예술경연대회는 충청북도 진천군의 사라져 가는 전통 민속예술[농악]을 발굴하여 전승·보존하고, 전통문화에 대한 군민들의 자긍심과 이해의 폭을 넓혀 민속 문화 발전에 기여함과 동시에 전 군민의 화합 및 정서 함양에 이바지하고자 2001년 처음 개최하였다. 읍면민속예술경연대회는 각 읍면별로 활동하고...

  • 의령군(義寧郡)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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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후기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행정구역 이름. 1269년(원종 10)에 진천임씨인 임연(林衍)이 김준(金俊)을 제거하고 최고 집정자가 되자, 왕이 임연의 고향인 진주[창의현(彰義縣)]을 고쳐 의령군(義寧郡)으로 승격시켰다. 지방관으로 지의녕군사(知義寧郡事)를 두었다. 『고려사(高麗史)』 권56, 지10 양광도 진주조를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1259년(고종 46) 임연...

  • 의령남씨(宜寧南氏)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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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군보를 시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성씨. 의령남씨(宜寧南氏)는 755년(경덕왕 14)에 안렴사(按廉使)로 일본에 다녀오다 풍랑을 만나 신라에 표류했던 중국 봉양부(鳳陽府) 여남(汝南) 사람 김충(金忠)이 신라에 정착하면서 비롯되었다. 경덕왕이 김충에게 남씨를 사성하고 영양현(英陽縣)을 식읍으로 내리자, 김충은 남민(南敏)으로 개명하였다. 남민의 7세손 남진용(南鎭勇)의 둘...

  • 의례복(儀禮服)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의례를 거행할 때에 입는 전통 의복. 진천 지역에는 각종 의례복에 관한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는 않다. 그러나 각 지역민들은 비교적 관혼상제에서 활용한 의례복의 모습을 잘 기억하고 있으며, 현대에도 전통적인 의례복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혼례복과 상복·수의(壽衣) 등을 중심으로 진천군 의례복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른 지역에 비해 뚜렷한 특징을 찾아...

  • 의병운동(義兵運動)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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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항기 충청북도 진천에서 전개된 항일 국권회복운동. 의병항일전은 외세 침략에 대한 민족으로서의 항쟁이며 생존권을 위한 저항으로 그 원류는 인간 본연적인 데 있으며, 한국사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것이다. 고려·조선 때 대거란전이나 대몽항쟁 그리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당시 의병 등의 오랜 전통이 개항기에 들어와서 부활한 것이다. 또한 구한말 의병항일전의 사상적 맥락의 하나는 민족적...

  • 의생활(衣生活)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몸에 걸치거나 입었던 의복 및 이와 관련한 생활 풍속.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평소 의복은 다른 지역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다양한 옷감을 사용하여 계절별로 의복을 구성하여 입었으며, 남자와 여자가 착용하는 의복의 구성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진천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복식에 사용된 옷감은 삼베, 무명, 명주 등이 있었다. 이는 진천군 내에서...

  • 이거이(李居易)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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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낙천(樂天), 호는 청허당(淸虛堂) 또는 청허자(淸虛子). 평장사(平章事) 이공승(李公升)의 6세손으로 문간공 이정(李挺)의 넷째 아들이다. 이거이(李居易)는 1348년(충목왕 4) 지금의 진천군 문백면 사양리에서 태어났다. 고려 말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갔으며, 관직이 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에 이르렀다...

  • 이거이 묘소(鎭川李居易墓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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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이거이의 묘소. 이거이(李居易)[1348~1412]의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낙천(樂天)이며, 호는 청허당(淸虛堂)이다.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사양리에서 태어났다. 고려 말 문과에 급제하고, 조선 건국에 공이 있으며, 1398년(태조 7년) 일어난 제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李芳遠)을 도와 공을 세워 일등정사공신이 되었...

  • 이경선(李慶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벽오(碧梧) 이시발(李時發)의 다섯째 아들이다. 이경선(李慶善)은 1624년(인조 2) 진사시에 합격하고, 1632년(인조 10) 문과에 급제하였다. 벼슬길에 나아가서는 성균관박사·저작·전적 및 호좌좌랑을 지냈다. 남포현감(藍浦縣監)으로 재직하던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충청감사 정세규(鄭世䂓)의 명령...

  • 이계창 선정비(李啓昌善政碑)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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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용몽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덕산면장 이계창의 선정비. 이계창(李啓昌)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진천군 덕산면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이계창은 1922년 덕산면 석장리 조광호가 사유지 22,070㎡를 희사해 옥동초등학교를 개교하였을 당시 면내 유지들로부터 1만여 원을 모금하였다. 이계창 선정비는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용몽리 덕산읍 행정복지센터 내에 위치하고...

  • 이공승(李公升)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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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달부(達夫), 호는 추월재(秋月齋). 고려 태조 때의 공신인 이희능(李希能)의 6세손이다. 이공승(李公升)은 어려서부터 총명하였으며 문장이 탁월하였다. 인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직한림원(直翰林院)이 되었으며, 뒤이어 우정언(右正言)을 지냈다. 1148년(의종 2)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로서 사신이 되어 금나라에 다녀...

  • 이교영(李敎永)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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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에서 현대의 충청북도 진천군 출신의 효자. 이교영(李敎永)은 본관이 성주(星州)로, 1890년(고종 27) 외가인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문암리에서 태어나 1976년 세상을 떠났다. 이교영은 평소 효성이 지극했는데, 42세가 되던 1931년 3월 어머니가 음성의 친정에 갔다가 병석에 누웠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달려가서 극진히 간호하였다. 한 달 여가 지나도 효험을 보이지...

  • 이교영 효자비(李敎英孝子碑)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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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명암리에 있는 효자 이교영의 효자비. 이교영[1890~1976]은 어머니 달성서씨가 친가에 갔다가 병이 나 위급하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달려가 극진히 간병하였으나 효험이 없었다. 다급해 왼쪽 장지를 끊어 어머니께 수혈하니 나았다. 그러나 그해 5월 다시 어머니가 병이 재발하자 왼쪽 무명지를 끊어 수혈하였으나 끝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교영 효자비...

  • 이근석 처 이씨(李根石妻李氏)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개항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열녀이자 효부. 이씨의 나이 20세 때 남편 이근석(李根錫)이 죽었다. 그 후 이씨는 머리도 덥수룩하게 하고 옷도 좋은 옷은 입지 않는 등 몸단장에 신경 쓰지 않고 시부모만을 기쁘게 해드리며 극진히 효도하였다. 5~6년이 지나서 시아버지가 병으로 죽고, 불과 3개월 만에 시어머니마저 죽었다. 이에 예를 갖추어 장례를 치르고 나서 시동생에게, “나는 벌써...

  • 이금회 배작목반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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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사곡리에 있는 배, 사과 등의 과일을 생산하는 작목반. 작목반은 농촌 소득 증대를 목적으로 작목별 및 지역별로 5명 이상의 구성원들을 묶어 만든 공동 생산·출하 조직이다. 이금회 배작목반은 2호의 농가를 구성원으로 하여 배, 사과 등의 과일을 공동 생산 및 출하하기 위해 만들어진 작목반이다. 이금회 배작목반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농산물 생산을 통하여 소...

  • 이대건 신도비(李大建神道碑)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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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이대건의 신도비. 이대건(李大建)의 본관은 경주로, 고려 후기 유학자로 명성이 드높았던 익재 이제현(李齊賢)의 후손이다. 사마시에 급제하였으나 25세라는 젊은 나이로 요절하였다. 아들이 후에 영의정으로 추증된 이시발(李時發)이다. 이시발이 임진왜란 때 의병장 박춘무(朴春茂)를 따라 공을 세운 데 이어 1596년(선조 29)에는...

  • 이덕수(李德壽)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이덕수(李德壽)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부모님이 병환 중에는 직접 변의 맛을 보아 병세를 살폈으며, 병이 위급해지자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낸 뒤 그 피를 먹여서 살려냈다고 전한다....

  • 이몽량(李夢良)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무신. 본관은 양성(陽城). 가계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전하지 않는다. 이몽량(李夢良)은 지금의 진천군 진천읍 건송리 두건마을에서 태어났다. 선조 때에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관직은 경상도병마우후에 이르렀다. 경상도병마우호로 근무하다가 선전관이 되어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명의 신종(神宗)이 사신들의 공로를 치하하며 금은을 하사하였는데, 이몽량은...

  • 이문구(李文求)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진천군 출신의 체육인. 이문구(李文求)는 1939년에 출생하여 상산초등학교·진천중학교·서울남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진천군의회 의장, 진천군 생활체육협의회 회장, 진천군 장학회 이사를 지내며 지역 발전을 도모하였다. 민주평화통일위원회 자문위원, 숭렬사 성역화 추진위원장, 진천중학교 총동문회장, 진천 상산국민학교 총동문회 부회장, 진천군 체육회 전문이사, 충북도 체육회 이사,...

  • 이민회 처 최씨(李敏會妻崔氏)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열녀. 이민회(李敏會) 처 최씨(崔氏)는 23세에 남편을 잃었는데, 바로 남편을 따라가려 하였으나 늙은 시아버지와 어린 아들이 있어서 목숨을 버리지 못하였다. 시아버지가 병으로 누워 있는 4년동안 지성을 다하여 약을 달여 드렸으며 산나물을 먹고 싶다 하자 눈 쌓인 산에 들어가 나무의 눈을 얻어 국을 끓여드리고, 또 물고기가 생각난다고 하자 얼음 구멍...

  • 이병화(李秉華)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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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군 출신의 육영 독지가. 이병화(李秉華)는 지금의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고학으로 한학(漢學)을 익혀 칠서(七書)를 섭렵하는 한편, 일찍이 약관의 나이 때부터 상업에 종사하여 거금을 모았다. 부모에게 효성을 다하고, 가난한 이웃에게 많은 도움을 베풀었다. 성공회의 임인재(任寅宰) 신부가 학원을 개설하여 가난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문맹...

  • 이병화 장학비(李秉華獎學碑)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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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에 있는 이병화의 공적을 기리는 비. 1930년 삼수초등학교의 전신인 신명심상소학교는 운영비가 크게 부족하여 문을 닫아야 하는 비운에 놓이게 되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이병화(李秉華)가 1938년 아들 이윤섭과 상의하여 전답 3만 50여 평[당시 소 한 마리가 2원일 때, 2만 원 상당] 100석지기를 기부하였다. 이로 인해 신명심상소학교는 사학(私...

  • 이부(李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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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자릉(子陵), 호는 행원(杏園, 杏院). 증조할아버지는 부정(副正) 이신(李晨)이고, 아버지는 사과(司果) 이금(李嶔)이며, 어머니는 사맹(司猛) 최윤태(崔允泰)의 딸이다. 이부(李阜)[1482~1555]는 지금의 진천군 진천읍 송두리에서 유복자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다. 외할...

  • 이부 묘(李阜墓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송두리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이부의 묘. 이부(李阜)[1482~1551]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고성(固城)이며, 자는 자릉(子陵), 호는 행원(杏園)이다. 사림파로서 조광조(趙光祖)와 교유하였고, 1519년(중종 14) 현량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병조좌랑·사간원정언을 역임하다가 병을 얻어 사직한 뒤 고향인 진천으로 낙향하였다. 기묘사화로 조광조...

  • 이부동삼합탕(鯉鮒鯟三合湯)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생산되었던 건강 보조 식품. 초평저수지는 미호천(美湖川) 상류를 가로막은 영농 저수지로 둘레가 29㎞에 이르는 중부권 최대의 낚시터이다. 붕어·잉어·가물치·뱀장어 등이 다량으로 서식하여 전국의 낚시 애호가들이 즐겨 찾고 있으며, 이러한 지리적 여건 때문에 저수지 주변에는 민물고기를 요리하는 음식점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1995년 충청북도의 맑은 물에서 잡히는...

  • 이사현(李思賢)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이사현(李思賢)은 어려서부터 효자라고 근동에 소문이 자자하였다. 부모의 상을 당하여 시묘를 살았으며, 효행으로 복호(復戶)[조선시대 충신, 효자, 군인 등 특정한 대상에게 부역이나 조세를 면제하여 주던 일]를 받았다. 학문에도 뛰어났으며, 평사(平沙) 민태중(閔泰重)과도 가깝게 지냈다....

  • 이상린 가옥(-家屋)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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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에서 증평 방향으로 국도 34호선을 따라가다 초평삼거리에서 우측으로 꺾어 내려가면 지전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지전교 방향으로 가서 다리를 건너면 양촌마을 입구가 나온다. 이상린 가옥은 이 양촌마을의 중심부 경사지에 위치한다. 이상린 가옥이 언제 처음으로 건립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가전(家傳)에...

  • 이상설(李相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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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순오(舜五), 호는 보재(溥齋)이다. 1870년(고종 7) 12월 7일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산척리 산직마을에서 이행우(李行雨)의 아들로 출생하였으며, 전 이조참판 이용우(李龍雨)의 양자로 입양되었다. 1894년(고종 31) 이상설(李相卨)은 조선 왕조 마지막 과거인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춘방시독관에 제수되고...

  • 이상설 생가(鎭川李相卨生家)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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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산척리에 있는 독립운동가 이상설의 생가. 이상설(李相卨)[1870~1917]의 자는 순오(舜五), 호는 보재(溥齋)이다.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정사로 파견되었으며, 전 생애를 바쳐 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썼다. 진천 이상설 생가는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산척리 134-2번지[이상설안길 10]에 있다. 중부고속도로를 이용할 때는 진천 나들목에서 좌회...

  • 이상설 유허비(李相卨遺墟碑)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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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산척리에 있는 독립운동가 이상설을 기리는 유허비. 이상설(李相卨)[1870~1917]의 자는 순오(舜五), 호는 보재(溥齋)이다.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조약의 폐기를 상소하였고, 일제강점기 국권 회복을 위해 노력하다가 1917년 3월 니콜리스크에서 세상을 떠났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광복장[현재의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1907년 헤이그 만국평...

  • 이상영 가옥(-家屋)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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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에 있는 전통 가옥. 진천군 진천읍에서 증평 방향으로 국도 34호선을 따라가다 초평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내려가면 지전삼거리가 나온다. 이상영 가옥은 지전삼거리에서 지전교를 건너면 나오는 양촌마을 남쪽 언덕배기에 위치하고 있다. 이상영 가옥은 안채의 대청마루 상부 종도리[마룻대]에 기록된 상량문으로 보아 일제강점기인 1915년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 이상직(李相稷)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자는 순유(舜有) 또는 민정(民庭). 1878년(고종 15) 3월 29일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381번지에서 출생하였다. 이상직(李相稷)[1878~1947]은 백부 이용우(李用雨)의 손에서 자라다가 이교중(李敎重)에게 입양되었고, 이상설(李相卨) 또한 이용우에게 입양된 관계로 그는 이상설을 종형이라 부르면서 숙식과 수학을 같이하고 추종...

  • 이석하(李錫夏)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가헌(可軒). 할아버지는 만오공 이후연(李厚淵)이다. 이석하(李錫夏)는 18세 되던 해 할아버지 이후연의 뜻에 따라 청야(青野) 임익상(林翼常)의 문하에 들어갔다. 공부를 하면서 책에서 본 것이나 실제로 본 좋은 행동을 실천에 옮기려고 애썼으며, 선행이나 좋은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어진 일을 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

  • 이성문(李成文)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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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중어(仲魚) 이타(李鼉)의 후손이다. 이성문(李成文)[1703~1728]은 지금의 진천군 백곡면 사송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타고난 성품이 용맹하고 효성스러워 고을에 이름이 났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가 청주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충청병사 이봉상(李鳳祥)이 의병을 모집하여 방어하려는 계책을 세우고 있다는...

  • 이성문 부부 충렬각(李成文夫婦忠烈閣)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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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사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성문 부부의 정려.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반란 때 의병으로 참가했던 이성문이 죽은 후 아내 정씨가 남편의 전사 소식을 듣고 달려가 시신을 찾았다. 그러나 운구할 길이 없어 울면서 목을 베어 치마에 싸서 귀향한 후 진천군 백곡면 사송리에 묻었다. 삼년상이 끝난 후에 남편의 무덤 앞에서 자결하여 남편을 뒤를 따라갔다. 이인좌...

  • 이성문 처 경주정씨(李成文妻慶州鄭氏)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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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열녀. 본관은 경주(慶州). 남편은 이인좌의 난 때 의병을 일으킨 이성문(李成文)이다. 이성문의 처 경주정씨[1707~1731]는 어릴 때부터 천자(天姿)가 정숙하였고 혼인해서는 시어머니께 효를 다하여 봉양하고 남편을 예로서 섬기었다. 남편이 난을 막으러 나갈 때는 힘을 다하여 충성하라고 하였다. 남편이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난으로 청주성에...

  • 이수현(李壽鉉)박기성(朴基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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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일본 유학 시절 항일운동을 하고, 1931년 상해로 망명하여 무정부주의 운동을 하였다. 중국 중앙군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광복군이 되어 해방될 때까지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박기성(朴基成)[1907~1991]은 1924년 일본 동경에서 개성중학교를 졸업하고 정찬진(丁贊鎭)·홍영유(洪永裕) 등과 함께 자유청년연맹(自由靑年聯盟)을 조직하여 한...

  • 이순곤(李順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중후(仲厚). 증조할아버지는 풍천부사를 지낸 이시득(李時得)이며, 할아버지는 승정원좌승지에 추증된 이경회(李慶會)이다. 아버지는 호조참판에 추증된 이인형(李寅馨)이고, 어머니는 순흥안씨로 진사 안여지(安汝止)의 딸이다. 부인으로는 김위(金煒)의 딸인 연안김씨와 진사 신필한(申弼漢)의 딸인 고령신씨(高靈申氏)가 있다. 형으로 이재곤(李載...

  • 이승연(李升淵)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이자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초명은 뇌연(雷淵), 자는 문계(文階)·태초(太初), 호는 연재(衍齋). 세종의 별자(別子)인 광평대군(廣平大君)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군위현감 이의화(李義和)이며, 어머니는 통덕랑 유언(兪彦)의 손녀이다. 이승연(李升淵)[1767~1829]은 유서 깊은 가정에서 시(詩)와 예(禮)의 교육을 받아 선행을 닦고 배우...

  • 이승종(李承宗)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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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군 출신의 학자이자 효자.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효백(孝伯), 호는 서암처사(西巖處士). 청허당(淸虛當) 이거이(李居易)의 8세손이다. 『청주이씨족보(淸州李氏族譜)』에 따르면 태사공 이능희(李能希) 이후에 본관을 청주로 정하였다고 한다. 이승종(李承宗)[1574~?]은 지금의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학행과 문장이 탁월하였으며, 좌...

  • 이시발(李時發)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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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양구(養久), 호는 벽오(碧梧)·후영어은(後潁漁隱). 고조할아버지는 이원(李黿)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이발(李渤)이며, 할아버지는 이경윤(李憬胤), 아버지는 진사 오촌(梧村) 이대건(李大建)이다. 어머니는 안동김씨로 김도(金燾)의 딸이다. 부인은 여흥민씨이고, 아들로 이분이 있다. 이대건과 이...

  • 이시발 신도비(李詩發神道碑)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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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이시발의 신도비. 이시발[1569~1626]은 인조 대의 문신으로, 1596년(선조 29) 이몽학(李夢鶴)의 난을 평정하였으며 북변(北邊)을 방비하기 위해 함경감사로서 포대와 성곽을 보수하였다. 이괄(李适)의 난 때에는 체찰부사(體察副使)로서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웠다. 남한산성의 축성을 감독하다가 순직하였으며, 영의정에...

  • 이야기 듣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농한기의 긴 겨울밤에 아이들이 이야기를 듣는 놀이. 이야기 듣기는 진천군 일대에서 정초와 대보름 사이에 아이들이 사랑방에 모여 밤참을 먹으며 이야기를 듣는 놀이이다. 농사일을 주로 하던 옛날에는 봄에 농사일을 시작하여 곡식이 무르익는 여름을 지나 가을에 오곡백과(五穀百果)를 거두는 수확의 계절이 되고 김장을 담그면 겨우살이 준비가 끝나게 된다. 이때부터 다...

  • 이여(李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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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긍확(肯穫), 호는 송애(松厓).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이사(李思)이고, 할아버지는 이공순(李公淳)이다. 아버지는 진사 이인로(李仁老)이며, 외할아버지는 박지생(朴枝生)이다. 부인은 이안민(李安民)의 딸이다. 형으로 이치(李菑)가 있다. 이여(李畬)[1503~1544]는 일찍이 모재(慕齋...

  • 이연제약주식회사 진천공장(-製藥株式會社鎭川工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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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한천리에 있는 이연제약주식회사의 의약품 제조 공장. 이연제약주식회사는 1955년 이연합성연구소로 설립되어 1964년 이연합성약품공업주식회사로 법인 전환을 하였다. 1965년 6월 국내 최초로 활성형 비타민B·아스파라긴산 외 의약품 등의 원료 합성에 성공하였다. 1983년 6월 카이스트(KIST)로부터 유망 중소기업으로 선정되었으며, 1986년 11월 2억...

  • 이영남(李英男)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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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무신. 본관은 양성(陽城). 자는 사수(士秀). 할아버지는 음죽현감(陰竹縣監)을 지낸 이계보(李季寶)이며, 아버지는 창신교위(彰信校尉)를 역임한 이사종(李嗣宗)이다. 이영남(李英男)[1563~1598]은 1563년(명종 18) 지금의 진천군 덕산읍 기전리에서 태어났다. 22세인 1584년(선조 17) 별시(別試) 무과에서 병과(丙科) 제163위(位)...

  • 이영남 장군 묘소진천 이영남 장군 묘소(鎭川李英男墓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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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기전리에 있는 조선시대 무신 이영남의 묘소. 이영남(李英南)[1547~1598]의 본관은 양성(陽城), 자는 사수(士秀)이다.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기전리에서 태어났다. 1584년(선조 17)에 무과에 급제하였고,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옥포만호로서 원균(元均)을 도와 전라좌수사로 있던 이순신에게 왕래하며 군사를 요청하는 등 여러 해전에 참전하여 많은...

  • 이영호(李榮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진천군 광혜원면에서 독립만세운동을 계획, 전개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영호(李榮鎬)[1899~1974]는 1919년 서울에서 일어난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파급되자, 진천군 일원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1919년 4월 2일 진천군 광혜원면 광혜원리에서 윤병한(尹炳漢)·정관옥(鄭寬玉)·오은영(吳殷泳) 등...

  • 이용위 선행비(李容偉善行碑)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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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석장리 선옥마을에 있는 일제강점기 선행가 이용위의 선행비. 이용위는 자선 선행가로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군계(君季)로 덕산읍 기전리에서 태어났다. 가세가 넉넉하여 마을의 가난하고 약한 사람을 돕거나 흉년이 들었을 때 난민을 여러 차례 구제하였기 때문에 그의 시혜사실을 기려 1924년 선행비를 세웠다.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석장리 선옥마을 입구 도로변...

  • 이우현(李宇鉉)박기성(朴基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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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일본 유학 시절 항일운동을 하고, 1931년 상해로 망명하여 무정부주의 운동을 하였다. 중국 중앙군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광복군이 되어 해방될 때까지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박기성(朴基成)[1907~1991]은 1924년 일본 동경에서 개성중학교를 졸업하고 정찬진(丁贊鎭)·홍영유(洪永裕) 등과 함께 자유청년연맹(自由靑年聯盟)을 조직하여 한...

  • 이원아트빌리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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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미잠리에 있었던 미술관. 이원아트빌리지는 침체된 지역 환경을 살리고 정체성을 재발견하기 위한 프로그램의 개발로 시작되었다. 또한 지역 문화를 살리고 관광자원을 개발하는 데 건축예술이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는다는 데 기초하여 지어진 복합 문화 공간이었다. 이원아트빌리지는 건축가인 원대연과 사진작가로 활동 중인 이숙경 부부가 직접 집을 짓고 생활하며 경험...

  • 이월 문화마을(梨月文化-)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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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내촌리에 있는 자연마을.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과 앞으로 태어나 살아갈 후손들에게 물려 줄 풍요롭고 행복한 삶의 보금자리인 문화마을을 만들고자 붙인 이름이다. 진천군은 취락 구조를 재정비하여 현대적인 생활환경을 만들고 문화 공간과 사회 공간을 조성하고자 1994년 약 27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이월면 내촌리에 145필지의 이월 문화마을 조성, 착공하여 19...

  • 이월 문화마을(梨月文化-)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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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내촌리에 있는 자연마을.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과 앞으로 태어나 살아갈 후손들에게 물려 줄 풍요롭고 행복한 삶의 보금자리인 문화마을을 만들고자 붙인 이름이다. 진천군은 취락 구조를 재정비하여 현대적인 생활환경을 만들고 문화 공간과 사회 공간을 조성하고자 1994년 약 27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이월면 내촌리에 145필지의 이월 문화마을 조성, 착공하여 19...

  • 이월게이트볼장(梨月-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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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송림리에 있는 게이트볼 경기장. 노인 인구의 증가로 건강한 신체활동에 대한 필요성이 증가함에 따라 노인들에게 적합한 운동인 게이트볼 동호인의 활동이 확대되었다. 이에 1995년 이월게이트볼장이 조성되었다. 600㎡의 면적에 실외구장 3면과 탕비실·화장실 등의 시설이 구비되어 있다. 현재 이월게이트볼클럽에서 사용하고 있으며 장순희 회장 외 15명의 회원이 건...

  • 이월농공단지(梨月農工團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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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에 있는 농공단지. 농공단지란 1983년 제정된 「농어촌소득원개발촉진법」에 따라 농촌 지역에 공업을 유치하여 농촌 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을 기하고, 나아가 지방 재정 확충 및 주민 소득 증대를 통한 도시와 농어촌 간의 지역 격차를 완화하기 위해 조성된 공업단지를 가리킨다. 이월농공단지는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지역의 고용을 창출해 지역 주민들의 소득...

  • 이월다리송림교(松林橋)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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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송림리에 있는 다리. 진천군의 군도 교량은 26개소로서 총연장은 1.33㎞인데, 이중 이월면의 군도 교량은 5개소로서 총연장은 289m이다. 송림리는 진천군 이월면의 면소재지로서 주민자치센터, 치안센터, 우체국, 시장, 학교 등이 있다. 송림교(松林橋)는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송림리에 위치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군도 교량으로서 연장 84m, 총 폭...

  • 이월들(梨月-)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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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장양리·노원리·중산리에 걸쳐 있는 들. 이월들은 이월과 들로 나뉘며, 여기서 이월은 이월면(梨月面)을 가리킨다. 이월면은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이곡면(梨谷面)의 ‘이’자와 월촌면(月村面)의 ‘월’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따라서 이월들은 ‘이월면에 있는 들’로 풀이된다. 진천읍 동부에 백곡천(栢谷川)이 서남류하면서 진천들을 형성하고, 진천읍 북부에...

  • 이월면(梨月面)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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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에 있는 행정구역. 1914년 이곡면(梨谷面)의 ‘이(梨)’자와 월촌면(月村面)의 ‘월(月)’자를 따서 이월면(梨月面)이라 하였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이곡면과 월촌면을 병합하여 이월면이라 하고 사곡리(沙谷里)·노원리(老院里)·중산리(中山里)·장양리(長楊里)·송림리(松林里)·신계리(新溪里)·송두리(松斗里)·가산리(佳山里)·동성리(東城里)·삼용리(...

  • 이월면 장학회(梨月面獎學會)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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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에 있는 장학 재단. 이월면 장학회는 사회 일반의 이익에 공여하는 공익 법인의 설립 운영에 관한 법률의 규정에 따라 교육 기회의 균등을 기하고 지역 사회 발전과 국가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인재 양성을 위하여 설립되었다. 1995년 12월 18일 2억 5000만 원을 기본 재산으로 하고 이사 15명과 감사 2명을 임원진으로 하여 이월면 장학회가 설립되...

  • 이월면사무소(梨月面事務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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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에 있는 이월면 관할 행정 기관. 이월면사무소는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14년 5월 12일 이곡면과 월촌면을 병합하여 이월면이 되었으며 같은 해 9월 19일 만승면[현 광혜원면]의 신계리를 편입하였다. 1982년 8월 28일 현 위치에 청사를 신축하였다. 1983년 1월...

  • 이월성당(梨月聖堂)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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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송림리에 있는 천주교 청주교구 소속의 성당.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지역에 천주교의 복음을 전달하고 미사 집전을 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이월성당은 진천성당이 관할하는 이월공소였다가 1995년 6월 24일 본당으로 승격하였다. 이월공소는 1956년 7월 9일 설립되어 이월 지역의 천주교 신자를 담당하였다. 이월성당의 건물은 1999년 4월 착공하여 2000년...

  • 이월장(梨月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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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송림리에서 매월 1일과 6일에 개시되는 오일장.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송림리에는 골말·굼티기·독지미·보뚝거리·송현·숫돈말·약방말[대말]·이월장터·큰골말·향림 등의 자연부락이 있는데, 그중 이월장터[일명 장양장터·주막거리]는 가장 규모가 큰 부락이다. 이월면 송림리의 이월장터에서 지명이 유래된 시장1리에는 125세대에 총인구 329명[남 168, 여 161...

  • 이월전기전자농공단지(梨月電氣電子農工團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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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신월리에 있는 농공단지. 농공단지란 1983년 제정된 「농어촌소득원개발촉진법」에 따라 농촌 지역에 공업을 유치하여 농촌 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을 기하고, 나아가 지방 재정 확충 및 주민 소득 증대를 통한 도시와 농어촌 간의 지역 격차를 완화하기 위해 조성된 공업단지를 가리킨다. 이월전기전자농공단지는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지역의 고용을 창출해 지역 주민들의...

  • 이월중학교(梨月中學校)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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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송림리에 있는 공립 중학교. 나라 사랑의 정신을 갖고 올바른 가치관을 실천하는 사람, 미래의 주인임을 인식하며 자기 주도적 학습에 정진하는 사람, 과학적 사고와 탐구하는 자세로 신지식을 창출하는 사람, 화랑정신을 간직하고 태권 무예로 단련된 건강한 사람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71년 12월 27일 이월중학교로 12학급 설립 인가를 받아 1972년...

  • 이월지방산업단지(梨月地方産業團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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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에 있는 산업단지. 이월지방산업단지는 신설·증설되는 공장을 수용하여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지역의 고용을 창출해 지역 주민들의 소득 증대와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기 위하여 조성되었다. 2000년 5월 부지 조성 공사에 착공하여 2006년 8월 완공되었다. 사업 시행자는 에스케이씨(주)이고, 관리 기관은 진천군이며, 사업비는 총 313억 원이 투입되...

  • 이월초교이월초등학교(梨月初等學校)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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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송림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기본 생활이 바르며 이웃과 나라를 사랑하는 예절인, 나보다는 우리를 먼저 생각하고 실천하는 공동체인, 근검절약 생활의 실천으로 지혜로운 경제인, 기초 학습 능력을 가지고 소질을 계발하는 능력인, 과학적 문제 해결력을 길러 정보화 사회에 대비하는 과학인, 몸과 마음이 튼튼하고 밝게 생활하는 건강인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 이월초등학교(梨月初等學校)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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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송림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기본 생활이 바르며 이웃과 나라를 사랑하는 예절인, 나보다는 우리를 먼저 생각하고 실천하는 공동체인, 근검절약 생활의 실천으로 지혜로운 경제인, 기초 학습 능력을 가지고 소질을 계발하는 능력인, 과학적 문제 해결력을 길러 정보화 사회에 대비하는 과학인, 몸과 마음이 튼튼하고 밝게 생활하는 건강인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 이을산성만노산성(萬弩山城)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연곡리와 백곡면 대문리 사이에 있는 신라시대 석축 산성. 만노산성(萬弩山城)은 문헌 기록에 만노성(萬弩城)·만뢰성(萬賴城)·이을성 등으로도 나타나는데, 현재는 만노산성 또는 만뢰산성으로 불린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기록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표기된 바에 따라 이을산성이라 칭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만노산성의 축조에 대한 정사의 문헌 기록...

  • 이을성만노산성(萬弩山城)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연곡리와 백곡면 대문리 사이에 있는 신라시대 석축 산성. 만노산성(萬弩山城)은 문헌 기록에 만노성(萬弩城)·만뢰성(萬賴城)·이을성 등으로도 나타나는데, 현재는 만노산성 또는 만뢰산성으로 불린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기록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표기된 바에 따라 이을산성이라 칭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만노산성의 축조에 대한 정사의 문헌 기록...

  • 이인(李仁)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자장(子張). 행원(杏園) 이부(李阜)의 고손이다. 이인(李仁)은 지금의 진천군 이월면 송두리에서 태어났다. 『진천향토지』, 『진천군지』 등에 학문이 높고 효성이 지극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향천(鄕薦)을 받아 참봉(參奉)과 주부(主溥)의 벼슬을 받았다....

  • 이인혁(李寅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중장(仲章), 호는 매산(梅山).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판서 벽오(碧梧) 이시발(李時發)이며, 아버지는 이조판서를 지낸 이경휘(李慶徽)이다. 생곡(生谷) 이인환(李仁煥)이 형이며, 동생으로는 이인욱(李璘煜)·이인찬(李寅燦)·이인희(李寅熹)·이인식(李寅烒)이 있다. 이인혁(李寅爀)[163...

  • 이인환(李寅煥)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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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문백(文伯), 호는 생곡(生谷).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후손이다. 증조부는 이대건(李大建)이고 할아버지는 벽오(碧梧) 이시발(李時發)이며, 아버지는 지제교(知製敎)·이조판서를 지낸 이경휘(李慶徽)이고, 어머니는 심대복(沈大復)의 딸이다. 큰아버지 이경연(李慶衍)에게 입양되었다. 동생으로 매산(梅山) 이인혁(...

  • 이정(李挺)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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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초명은 춘길(春吉), 호는 사암(思庵). 문정공(文貞公) 이공승(李公升)의 5세손으로 할아버지는 판도총랑(版圖聰郞) 이창우(李昌祐)이고, 아버지는 낭성군(琅城君) 이계함(李季瑊)이며, 어머니는 도첨의참리(都僉議叅理) 김련(金聯)의 딸이다. 부인은 통례부사(通禮副使) 김계초(金繼貂)의 딸이다. 아들로 이거이(李居易)가 있다...

  • 이정 부부 묘와 묘표석(鎭川李廷墓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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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사양리에 있는 고려 후기 이정 부부의 묘소. 이정(李挺)[1297~1361]의 본관은 청주(淸州), 초명은 춘길이다. 부인은 통례부사 김계초의 딸이다. 이정은 1326년(충숙왕 13)에 병과2등으로 급제하여 봉거직장(奉車直長)·경상도찰방(慶尙道察訪)에 나갔다가 낙향하여 10년간 진천군 문백면 사양리에서 은거하였다. 1353년(공민왕 2)에 성균관좨주에 탁용...

  • 이정영(李廷英)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임진왜란시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양성(陽城). 호는 회헌(晦軒). 이정영(李廷英)[?~1592]은 1592년(선조 25) 음죽현감으로 재직 중에 임진왜란을 맞았다. 4월 일본이 15만 8000명에 달하는 대군을 동원하여 침범해 왔다. 왜군은 조총을 가지고 북상하며 4월 24일 상주에서 이일의 군을 격파하고, 16일에는 조령을 넘어 이튿날 충주로 쳐들어 왔다....

  • 이정휘(李廷徽)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광주(光州). 대사성 이중호(李仲虎)의 7세손이자, 이조참판 이발(李潑)의 6세손이다. 이정휘(李廷徽)는 어머니가 종기가 심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자 5~6개월 동안 종기를 입으로 빨아서 고름을 뽑았으나 병세에 차도가 없자,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서 낸 피를 먹여 완쾌하게 하였다. 그 후 모친상을 당하자 3년 동안 지극정성으로 시묘하므...

  • 이종연 처 박씨(李鍾淵妻朴氏)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부이자 열녀. 이종연(李鍾淵)의 처 박씨는 시아버지가 종기로 자리에 눕자 입으로 종기를 빨아서 낫게 하였으며, 담종이 생겨서 3개월 동안 거동을 못하자 곁을 떠나지 않고 간병을 하였다. 이후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상장제용(喪葬祭用)을 마련하여 무사히 장례를 치렀다. 얼마 후 남편이 죽자 따라 죽으려고 물 한 모금도 마시지...

  • 이종천 공적비(李鍾千功績碑)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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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석장리에 있는 지역민에게 선정을 베푼 이종천의 공적비. 이종천(李鍾千)[1922~1985]은 진천군 덕산읍 기전리에서 태어나 해방 후 덕산읍의회의원 및 진천향교장의(鎭川鄕校掌議) 등을 역임하며 지역 발전을 위해 헌신하였다. 이종천은 덕산읍 석장리 선옥마을의 도로가 협소하여 이용하기 불편하자 도로 개선에 앞장섰다. 그의 사후 7개 마을 주민이 공적을 기려 1...

  • 이종춘(李鍾春)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교육자. 이종춘(李鍾春)[1925~1988]은 지금의 진천군 이월면 동성리 33번지에서 태어났다. 1945년 3월 24일 고창중학교를 졸업하였고, 1946년 8월 14일 경성사범학교 부설 중등교원양성소 국문과를 수료하였다. 1952년 9월 30일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학과를 졸업한 뒤 1963년 2월 28일 서울대학교 대학원 부설 교수연구원을 수료하였다....

  • 이종학(李鐘學)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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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후기 충청북도 진천에 유배된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중문(仲文), 호는 인재(麟齋). 증조할아버지는 찬성사(贊成事)를 지낸 이자성(李自成)이고, 할아버지는 대제학을 지낸 가정(稼亭) 이곡(李穀)이다. 외할아버지는 권중달(權仲達)이며, 아버지는 문하시중에 오른 목은(牧隱) 이색(李穡)이다.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형으로 이종덕(李種德)이 있다. 부인은 이춘부(李春富...

  • 이준홍(李俊弘)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양성(陽城). 자는 치영(稚英). 진사(進士) 이몽길(李夢吉)의 후손이다. 양성이씨(陽城李氏)의 시조 이수광(李秀匡)은 중국 송나라 사람으로 고려에 와서 문종 대에 벼슬길에 올라 삼중대광보국(三重大匡輔國)에 이르렀고, 양성군(陽城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갑자보(甲子譜)』 세록(世錄) 편에 의하면 능란한 외교술로 거란[契丹]과 외교를...

  • 이집(李楫)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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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고성(固城). 증조할아버지는 행원(杏園) 이부(李阜)이다. 이집(李楫)은 어려서부터 부모가 병으로 누워 있으면 옷을 벗지 않고 근심스러운 얼굴로 나날을 보내어 효자로 소문이 났다. 커서는 부모의 대변 맛을 보아 병을 짐작하고, 밤에는 밖에 나가 하늘에 기도하였다. 상을 당하여 3년 동안 죽만 먹고 날마다 묘소에서 슬프게 곡만 하였다....

  • 이집 묘갈(李輯墓所-墓碣)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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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사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이집의 묘갈. 이집(李輯)[1670~1727]은 본관이 고성(固城)으로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부모가 병으로 누워 있으면 옷을 벗지 않고 웃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며, 변을 맛보아 병을 짐작하고 밤에는 밖에 나가 하늘에 기도하였다고 한다. 부모상을 당해서는 삼년상을 치르면서 날마다 죽만 먹고 슬프게 곡하였다. 1717...

  • 이집두(李集斗)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진천군 출신의 조선 후기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는 중휘(仲輝), 호는 파서(琶西) 또는 구학(臞鶴)이다. 좌의정 이경억(李慶億)의 5대손이고 조부는 이석로(李錫老)이며, 감역 이진원(李進源)의 아들이고 부인은 권세모(權世模)의 딸이다.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태어나 거주하였다. 1774년[영조 50] 식년시를 통해 진사가 되었고, 이듬해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 이필용(李必容)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양녕대군(讓寧大君)의 후손이다. 이필용(李必容)이 어렸을 때 할아버지의 상을 당했는데, 갑자기 집 안에서 불이 나서 사당(祠堂)까지 불이 번지고 말았다. 이에 이필용이 큰소리로 천신(天神)을 부르자, 세찬 바람이 그치고 불꽃이 잦아들어 비록 사당은 불탔으나 신주(神主)는 온전하였다. 어느 날, 이필용이 볼일을 보러 가는...

  • 이하곤(李夏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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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유학자이자 장서가.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재대(載大)이며, 호는 담헌(澹軒)·소금산초(小金山樵)·무우자(無憂子)·금산병부(金山病夫)·담옹(澹翁)·담헌거사(澹軒居士)·담암(澹庵). 할아버지는 벽오(碧梧) 이시발(李時發)의 셋째 아들인 좌의정 이경억(李慶億)이며, 아버지는 문형(文衡)이었던 이인엽(李寅燁)이고, 어머니는 임천조씨(林川趙氏)로 인천부...

  • 이호신(李鎬臣)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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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육영독지가.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찬서(纘書). 『청주이씨족보(淸州李氏族譜)』에 청주이씨는 태사공 이능희(李能希) 이후 본관을 청주로 정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호신(李鎬臣)[1868~1943]은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서 자수성가하였으며, 많은 사회사업을 하였다. 특히 교육 부문에 힘썼는데, 처음 상산초등학교가 지금의 삼수초등학교 자리에 설립되었...

  • 이호신 장학비(李鎬臣先生獎學碑)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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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에 있는 이호신의 공적을 기리는 비. 이호신(李鎬臣)은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중산리에서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자수성가하여 천석지기의 부농이 되었으며, 많은 재산을 교육 사업에 바쳤다. 1940년 상산초등학교는 현재의 삼수초등학교 터에서 28년을 지내오는 동안 협소한 부지와 노후한 교실로 인해 학생을 더 이상 수용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교...

  • 이호주 처 양씨(李鎬周妻楊氏)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시대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열녀이자 효부. 양씨는 16세에 이호주(李鎬周)에게 시집을 갔다. 가난한 집안이었으나 양씨는 지극정성으로 시부모를 섬기고 남편에게 순종하였다. 그러나 얼마 후 시부모와 남편이 연이어 세상을 뜨면서 20세 때 청상과부가 되었다. 양씨가 절개를 지키며 아들 하나를 데리고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데, 이웃 마을의 장씨(張氏)가 양씨가 과부로 사는 것을 멸시하여...

  • 이호중(李昊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졸재(拙齋). 광평대군(廣平大君) 이여(李璵)의 13세손이다. 만오(晩悟) 이후연(李厚淵)이 중손(中孫)이다. 이호중(李昊中)이 공주 외가에 있을 때 어머니가 중병에 걸렸는데, 그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너의 모친 병이 위독하니 빨리 집으로 가서 잉어를 구해 드려라”고 말하였다. 그 길로 집으로 가다 잉어 장수를...

  • 이후(而厚)김익견(金益堅)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무신.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이후(而厚). 김익견(金益堅)[1599~1668]은 지금의 진천군 문백면에서 태어났다. 1624년(인조 2) 인조반정에 참여하여 공을 세운 이괄이 논공행상에 대한 불만과 자신에 대한 정치적 무고에 분노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이괄의 군대가 한양을 점령하자 인조는 공주로 피난하였는데, 이때 김익견이 임금을 호종하였다....

  • 이후연(李厚淵)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학자이자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만오(晩悟). 광평대군(廣平大君) 이여(李璵)의 후손으로, 졸옹(拙翁) 이호중(李昊中)의 중손(中孫)이다. 이후연(李厚淵)은 신와 정재경 문하에서 공부하였는데, 학문의 중심점을 캐어서 연구하였고 지식과 견문이 넓었다. 보고 들은 것이 많고 깨달은 바도 투철하여 정재경이 큰일을 맡을 만한 인물[大受之器]이라고...

  • 이희(李熺)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고성(固城). 행원(杏園) 이부(李阜)의 6세손이다. 수암(遂庵) 권상하(權尙夏)의 문하에서 공부를 했던 이희(李熺)는 어려서부터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근동에서 효자라고 소문이 자자하였다. 가난한 생활을 하였어도 부모가 좋아하는 음식을 떨어지지 않게 하였으며, 항상 부모의 모든 것을 친히 보살폈다. 부모의 상을 당하였을 때는 6...

  • 인구(人口)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충청북도 진천군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의 수. 인구는 어떤 시기 한 나라나 일정한 지역 등 특정 시간 및 공간 전체 또는 일부분과 관련된 사람의 수, 즉 시간과 지역을 한정한 범위 내의 사람의 총수를 양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인구의 크기와 구조는 인구의 구성원인 개인의 결혼·출산·사망 또는 이동 등에 영향을 받아 변화하지만 그 자체가 정치, 경제, 사회 등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 인동장씨(仁同張氏)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장금용을 시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 성씨. 인동장씨(仁同張氏)의 시조 장금용(張金用)은 옥산(玉山)[인동의 별호] 사람으로 고려 때 삼중대광신호위상장군(三重大匡神虎衛上將軍)을 지낸 인물로 태사공(太史公) 장정필(張貞弼)의 후손이다. 그러나 중간 세계(世系)가 실전되어 소목(昭穆)을 가리지 못하므로 후손들이 장금용을 시조로 하고, 시조의 출생지이자 후손의 세거지인 옥산을 본...

  • 인라인롤러 경기장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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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광혜원리에 있는 인라인 롤러스케이트 경기장. 2007년 제47회 충북도민체육대회 인라인롤러 경기장으로 활용하고 인라인 롤러스케이팅 인구의 저변 확대와 동호인들이 마음 놓고 운동할 수 있는 공간 및 시설을 확충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광혜원 공원 내에 면적 3,500㎡로 조성되었으며, 우레탄으로 시공된 200m 트랙에 6개 레인이 설치되어 있다. 음성IC에서...

  • 인문지리(人文地理)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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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지리적 요소. 중부고속도로의 개통으로 대도시와 교통이 편리함에 따라 종래의 미작 농업은 고품질 상품 생산과 원예 농업으로 전환되었고 공업화가 촉진되었으며 풍부한 관광 자원과 국토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지리적 이점 등으로 배후에 풍부한 관광 시장을 지니고 있다 충청북도 진천군은 충청북도 중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중부고속도로가 관통하는 농공병...

  • 인물설화(人物說話)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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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인물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인물설화는 역사적 인물과 관련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인물의 유형에는 ‘영웅적 인물’, ‘평범한 인물’, ‘모자라는 인물’ 등이 있다. 어떠한 유형의 인물이든 민중에게 각인되어 역사적·교훈적 의미를 부여하면 구비전승의 대상이 된다. 인물설화도 대부분 특정한 지역이나 사물과 관련되어 있다. 진천 지역의 인물설화의 특징은...

  • 인산리(仁山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