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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이후연이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에 있던 금계양유에서 관찰사를 맞이하며 지은 칠언율시의 한시. 만오(晩梧) 이후연(李厚淵)[1798~1863]은 광평대군(廣平大君)의 14세손으로, 아버지는 이의수(李義守)이다. 그는 학자로서도 명망이 있었지만, 특히 문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효행이 지극하였다고 전해진다. 유고집으로 『만오집(晩梧集)』이 전한다. 만승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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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신정기가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 논실마을에 있던 노은정 주변의 아름다움을 읊은 칠언율시의 한시. 이월면 노원리에 있는 논실마을은 1606년 개성유수를 끝으로 관직에서 물러난 독송재(獨松齋) 신잡(申磼)이 머물던 곳이다. 그 경치가 얼마나 빼어났던지 신잡은 이 마을 뒷산에 고색창연한 사당을 지어 노은영당(老隱影堂)이라 칭하고, 그 주변에 노은정(老隱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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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한원진이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농다리 위에 쌓인 설경을 읊은 칠언절구의 한시. 한원진(韓元震)[1682~1751]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덕소(德昭), 호는 남당(南塘)이다. 송시열(宋時烈)과 권상하(權尙夏)의 학통을 이어 정통 주자학의 입장을 충실히 계승·발전시켰으며, 권상하 문하의 강문8학사(江門八學士) 중 한 사람으로 호락논쟁(湖洛論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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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득신이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에 있는 두타산을 배경으로 읊은 오언절구의 한시. 백곡(栢谷) 김득신(金得臣)[1604~1684]은 조선 후기의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작품 「두타산(頭陀山)」은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과 괴산군 도안면의 경계에 있는 두타산의 다양한 모습과 나그네의 현재의 지친 마음을 그리고 있다. 가도가도 길은 한량이 없는데[行行路不盡] 이물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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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이운해(李運海)가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대문리에 있는 만뢰산에 얽힌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지은 칠언율시의 한시. 만뢰산(萬賴山)은 진천군의 주봉(主峰)으로, 백곡면 대문리와 진천읍 연곡리를 경계로 하여 진천군 내 하천 분포의 일대 분수령을 이루고 있는 산이다. 신라시대 김유신(金庾信)의 아버지인 김서현(金舒玄)이 만노군의 태수로서 북쪽으로는 고구려군과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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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남동희가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평산리에 있는 만암폭포를 보고 지은 칠언절구의 한시. 만암폭포(蔓巖瀑布)는 문백면 평산리에 있는 양천산(凉泉山)을 중심으로 골짜기마다 흐르는 99곡수(谷水)가 동쪽으로 흘러서 폭포가 되었다고 한다. 아픈 사람이 이 폭포에서 목욕을 하면 병이 나았다고 전해져 약수탕이란 별칭까지 붙었다고 한다. 하당(荷糖) 남동희는 이러한 전설과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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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안국이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교성리에 있는 진천향교 명륜당에서 읊은 칠언절구의 한시. 「명륜당(明倫堂)」은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1478~1543]이 지은 한시로, 진천향교의 명륜당에 기록되어 있는 『소학(小學)』의 뜻을 새겨 올바른 유자(儒者)로서 태평성대를 이룩하도록 힘써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진천향교는 조선 전기에 창건된 교육기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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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이완수가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사석리에 있는 문안산에 올라가 주변 풍경을 읊은 칠언율시의 한시. 문안산(文案山)은 진천읍 행정리에 있는 잣고개의 서편에 있는 산으로, 제(帝)자 형의 모습을 하고 있다. 다전(茶田) 이완수에 대해 알려진 것은 없다. 꽃은 동쪽에 만발하더니 술은 서편에 있었구나[花俄百陌酒西隣] 깎아지른 듯한 산봉에 올라가니 한계가 새롭구나[及到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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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이후연이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에 있던 백원서원에 대해 읊은 칠언율시의 한시. 백원서원(百源書院)은 1606년 개성유수를 끝으로 관직에서 물러난 독송재(獨松齋) 신잡(申磼)이 낙향한 뒤 세종 대의 효자 김덕숭(金德崇)과 이여·이부(李阜)를 제향하기 위해 1608년에 세운 서원이다. 1871년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으며, 현재는 사적비만이 남아서 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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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채지홍이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 봉암마을을 예찬한 칠언율시의 한시. 봉암(鳳巖) 채지홍(蔡之洪)[1683~1741]은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 봉암마을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재능과 지혜가 출중하여 8세에 이미 한시를 지어 세인들을 놀라게 할 정도로 성리학적 소양이 높았다. 한때 충청도사 등의 관직을 지냈으나, 당시의 당파 싸움에 혐오를 느껴 관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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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문신 이승소가 진천현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지은 칠언율시의 한시. 이승소(李承召)[1442~1484]는 조선 성종 때 예조판서를 지낸 문신이자 학자로, 신숙주(申叔舟) 등과 함께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를 펴내기도 하였다. 「산 형세 돌고 돌아」는 이승소가 진천현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지은 한시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수록되어 있다. 혼자서 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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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박제형이 진천현의 관아인 삼수헌을 소재로 하여 지은 칠언율시의 한시. 삼수헌(三秀軒)은 진천현감의 손님맞이 응접실인 내동헌(內東軒)을 가리킨다. 작가인 판교(板橋) 박제형(朴齊珩)은 「삼수헌」을 통해 공사간의 분망한 삶 속에서도 삼수헌을 들렀던 인연들과의 정을 잔잔하게 그려내고 있다. 공사간의 일로 모두가 바쁘기만 한데[公私緣業兩粉忙] 행장에 마음은 바로 잡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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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이황이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에 있던 상산관에서 지은 칠언율시의 한시. 「상산관(常山館)」은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수의(繡衣)[어사또]로서 이곳을 지날 때, 진천의 옛 지명인 상산(常山)의 객사(客舍)에 들러 이 고장 백성의 삶과 목민관으로서 위정자의 자세에 대하여 경구하는 의미로 지은 뒤 게판(揭板)한 한시이다. 상산관(常山館)은 현재의 진천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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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정해필이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에 있는 소두머니 앞에 펼쳐진 풍경을 읊은 칠언절구의 한시. 정해필(鄭海弼)[1831~1887]은 조선 후기의 학자로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경기(景箕), 호는 조암(照庵)이다. 1885년(고종 22) 추천에 의해 선공감감역(繕工監監役)을 지냈고, 후에 송달수(宋達洙)의 문인이 되었다. 저서로 『조암집(照庵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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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최명길이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건송리 두건마을에 있는 식파정의 경치를 읊은 오연율시의 한시. 식파정(息波亭)은 진천 건송리에서 태어난 이득곤(李得坤)의 호이자, 이득곤이 조선 후기에 세운 정자의 이름이기도 하다. “사람의 마음은 물결과 같아 바람이 일면 욕랑이 이니 마음의 욕랑을 절제하며 잠재워야 한다.”라는 금언의 내용을 담고 있는 식파정은 주변의 경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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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박제형이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에 있는 쌍오정에 올라 주변의 경관을 읊은 칠언절구의 한시. 쌍오정(雙梧亭)은 조선 후기 문신 회와(晦窩) 이인엽(李寅燁)[1656~1710]이 벼슬길을 버리고 초평으로 낙향하여 지은 정자로, 현재는 터만 남아 있다. 이인엽은 이시발(李時發)의 손자로, 숙종이 중전 민씨를 폐하려 하자 재야 서인 인사들과 더불어 반대소를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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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이승소가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에 있던 연정의 풍경을 읊은 한시. 이승소(李承召)[1442~1484]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양성(陽城)이고, 자는 윤보(胤保), 호는 삼탄(三灘)이다. 1447년(세종 29) 식년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한 뒤 집현전부수찬에 임명되었다. 이후 여러 벼슬을 거쳐 1467년 충청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이조판서와 형조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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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이인덕이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갈월리에 있는 엽돈치에 올라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이었던 홍계남의 위업을 읊은 칠언율시의 한시. 협돈령[脇呑嶺] 또는 엽돈고개, 엽둔재라고도 하는 엽돈치는 백곡면 갈월리와 충청남도 천안시 경계에 있는 고개로 매우 험준한 곳이다. 임진왜란 당시 안성 출신 홍계남(洪季男)이 의병 수천 명을 모아 접전하여 승전한 곳으로 전해진다. 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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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김기경이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행정리에 있는 잣고개에 올라 주변 풍경과 옛 성곽을 보며 읊은 칠언율시의 한시. 잣고개는 봉화산(烽火山)과 문안산(文安山)의 중간을 통하는 고개이다. 작자인 김기경(金起敬)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머리는 청색을 찌르고 발로는 구름을 밟으며 올라가 보니[頭觸靑天足躡雲] 막막한 이 고장 경계가 나뉘었구나[塵寰漠漠界相分] 우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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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이인덕이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구수리에 있는 장군봉을 삼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김유신의 기개에 빗대어 읊은 칠언율시의 한시. 범이 으르렁대듯 용이 서리듯 벽공에 솟았는데[虎踞龍盤竦碧空] 장군님의 위풍을 어느 누가 당하리[將軍威武孰能同] 삼국을 통일하신 그 위업 천추에 빛나고[三韓彌久聲名壯] 오악에 울려 퍼지는 높은 기세 웅장도 하구나[五嶽爲高氣勢雄] 만노에 뻗친 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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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한원진이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평산리 백사장 암벽 위에 있는 정자에서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읊은 칠언절구의 한시. 한원진(韓元震)[1682~1751]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덕소(德昭), 호는 남당(南塘)이다. 송시열(宋時烈)과 권상하(權尙夏)의 학통을 이어 정통 주자학의 입장을 충실히 계승·발전시켰으며, 권상하 문하의 강문8학사(江門八學士)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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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송시열이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로 송강 정철의 묘를 이장한 후에 지은 오언율시의 한시.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송시열(宋時烈)[1607~1689]의 본관은 은진이고 아명은 성뢰(聖賚),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암(尤庵)·우재(尤齋)·화양동주(華陽洞主)이다. 17세기 중엽 이후 붕당정치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서인 노론의 영수이자 사상적 지주로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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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박제형이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금곡리에 있던 지산서원과 최석정을 칭송하고 예찬하는 칠언절구의 한시. 지산서원(芝山書院)은 1722년(경종 2) 초평면 금곡리에 있는 현재의 초평초등학교 부지에 진사 이시진이 건의하여 건립한 곳으로, 이듬해 사액되었다. 여느 서원과 달리 명곡(明谷) 최석정(崔錫鼎) 한 사람의 위패만을 모신 서원이다. 판교(板橋) 박제형(朴齊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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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정기회가 충청북도 진천에 있는 창랑정에 올라 세상의 혼탁함에 대하여 읊은 칠언율시의 한시. 「창랑정(滄浪亭)」은 조선 후기에 활동했던 율산(栗山) 정기회(鄭基會)가 지은 한시이다. 창랑정에 올라 매화와 소나무 등 사군자와 물을 예로 들고, 혼탁한 세상에 지조와 절개를 지키며 살았던 옛 지인(知人)의 삶의 태도를 그리워하고 있다. 시정 깊어지니 이 마음 너그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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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형이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화산리 초평저수지의 아름다운 풍광을 읊은 한시. 「초평잡제」는 판교(板橋) 박제형(朴齊珩)이 지은 한시로 화산리의 초평저수지와 그 주변 일대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노래한 시이다. 모두 6수가 전해 내려온다. 칠언절구와 칠언율시, 오언절구 등의 한시로 되어 있다. 1. 칠언절구1 화랑호수를 어찌 산에 비유하리오/ 파아란 물 담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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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채지홍이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평산리에 있는 백사장의 빼어난 경관을 읊은 칠언율시의 한시. 봉암(鳳巖) 채지홍(蔡之洪)[1683~1741]은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 봉암마을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재능과 지혜가 출중하여 8세에 이미 한시를 지어 세인들을 놀라게 할 정도로 성리학적 소양이 높았다. 한때 충청도사 등의 관직을 지냈으나, 당시의 당파 싸움에 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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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학 단체. 포석회는 진천군 출신 문학인 포석 조명희에 대한 연구와 평가를 하고, 포석을 기리기 위해 문학에 관심 있는 지역 거주자를 중심으로 창립되었다. 포석 조명희의 문학을 기리기 위해 매년 다양한 행사와 교육을 하고 있다. 포석조명희문학제와 연계되어 개최되는 ‘전국 시 낭송 경연대회’를 위해 외부 시 낭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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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이후연이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무수동 근방의 복숭아꽃을 보고 그 아름다움에 반하여 지은 칠언율시의 한시. 만오(晩梧) 이후연(李厚淵)[1798~1863]은 광평대군(廣平大君)의 14세손으로, 아버지는 이의수(李義守)이다. 그는 학자로서도 명망이 있었지만, 특히 문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효행이 지극했다고 전해진다. 유고집으로 『만오집(晩梧集)』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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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이채가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에 있던 향은정에 올라 주변 풍경을 읊은 칠언율시의 한시. 향은정(香隱亭)은 읍내리의 진천읍사무소 북쪽에 있던 정자로서, 진천읍내의 모든 지역을 바라볼 수 있는 일종의 망루(望樓) 같은 역할을 했다고 한다. 또한 향은정 주변에 삼수원(三秀園)이란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정원도 있었다고 전해지나 지금은 모두 흔적조차 찾을 수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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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해운(海耘) 홍종익이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회죽리 회안계곡에 있는 회안반석에서 읊은 칠언율시의 한시. 지원 떠나 돌아오는 길에 회안반석 찾으려[祗園歸路約相尋] 신돌메하고 가도 가도 골짜기만 깊구나[蠟屐行行洞府深] 시냇가에 돌은 여기저기 흩어졌고 물은 얕은데[亂石當溪伋淺水] 떠다니는 구름 해가 지니 숲조차 서늘하구나[浮雲礙日又疎林] 새로 물든 단풍만이 저 혼자 청산 색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