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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C010104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삼덕리 2구 옹암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종호

[재빠른 신고로 그나마 피해가 적었지]

지금으로부터 약 10여 년 전인 1997년쯤의 어느 봄날이었다. 가뜩이나 건조하고 바람이 많은 봄 날씨였는데, 그날따라 평소와 다르게 바람이 몹시 심하게 불었다. 마을의 바쁜 오전이 지나고 평화로운 오후가 찾아올 12시에서 1시 사이쯤 소의 머리 형상에 해당하는 독바위 쪽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독바위 쪽에서 불이 난 것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삼덕리 옹암마을 사는 김춘자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제일 먼저 노인회관으로 달려가서, 산에 불이 난 것 같다며 마을 사람들에게 알렸다. 그런데 처음에는 연기가 그리 심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노인회관에 있던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잠시 지켜보는데, 갑자기 거센 바람에 건조하게 말라 있던 솔방울들이 ‘탁! 탁!’ 소리를 내며 마을의 여기저기로 불씨가 되어 튀어 나오기 시작했다. 얼마나 바람이 세게 불고 튀어 오르는 솔방울의 힘이 셌던지 산 바로 앞마을뿐만 아니라 마을 앞에 펼쳐져 있는 덕문이들까지 솔방울이 튀었다.

“처음에는 연기가 조금씩 솔솔 풍겼어. 그러다가 다시 보니까 몇 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불이 금방 퍼지더라구. 그래서 119에 신고하고 소방차가 3대나 왔었어.”

이렇게 소방차가 세 대나 왔는데도 불을 끄기가 매우 힘들었던 만큼 마을의 피해가 컸다. 일찍 발견하고 신고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과거의 초가집 형태로 지어진 집이었다면 아마 마을이 모두 타 버렸을 것이라고 말하는 마을 사람들의 말 속에서 그때의 거셌던 화재 사건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바람도 불고 건조하기까지 했던 그때 날씨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심지어 소나무의 솔방울에 불씨가 붙어, 이 솔방울이 바람에 날려 이집 저집으로 옮겨 붙어서 마을이 큰 피해를 입을 뻔했다고 한다.

하지만 화재를 발견한 김춘자 할머니 외에 다른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늘 고요하고 사건이 많지 않았던 마을이었던 터라, 화재 사건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집 안에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볼일을 보러 나갔다고 한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이 적극적인 협동심을 발휘하여 화재 사건은 더 커지지 않고 진압될 수 있었다.

[옛 모습을 잃어버린 마을 뒷산]

이렇게 마을을 순식간에 공포로 몰아넣었던 화재 사건 이후, 언제나 소나무가 무성했던 마을 뒷산은 옛 자취를 잃고 휑한 모습으로 변해 버렸다. 마을 사람들이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리기 위해 새로 나무를 심고 꽃을 심는 등 여러 가지 시도를 해 봤지만, 이내 칡덩굴에 뒤엉켜 제대로 자라지 못해 안타깝다고 하였다.

평화롭기만 했던 마을 뒷산에 화재가 난 이유에 대해 물어 보았는데, 누군가 독바위 근처에 갔다가 실수로 불을 놓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자연적으로 발생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무슨 이유로든 이렇게 불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붙어서 온 산이 다 탔는데도 그나마 마을이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은 산 입구에 있는 독바위 때문이라고 마을 사람들은 믿고 있었다. 소를 닮은 산에서 더 이상 화재가 커지지 않도록 독바위가 힘을 발휘하여 마을의 화를 막아 주었다고 사람들은 고마워했다.

삼덕리 옹암마을 사람들은 아직도 그 화재 사건만 생각하면 가슴을 쓸어내린다고 했다. 늘 평화롭던 마을 풍경을 화마가 앗아 버릴 뻔했으니 아직도 마을 사람들의 머릿속에 생생하게 기억되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것 같았다. 그리고 독바위와 소의 형상을 한 뒷산이 있었기에 더 큰 피해를 입지 않고 이겨 낼 수 있었다고 믿고 있는 마을 사람들에게 독바위와 마을 뒷산은 든든한 마을의 수호신들처럼 느껴졌다.

[정보제공]

  • •  김복남(여, 1940년생, 삼덕리 2구 옹암마을 주민)
  • •  김춘자(여, 1940년생, 삼덕리 2구 옹암마을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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