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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많던 군대 이야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A030103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구산동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윤정아

[6·25전쟁 때 의용군 갔다가 수갑 차고 50리를 끌려갔지]

6·25전쟁이 일어났을 때 진천군은 매우 위험한 지역이었다. 임필수 할아버지도 문상국민학교[현 문상초등학교] 고등과를 다니던 시절 2차 의용군에 뽑혀 18세의 나이에 군대를 가게 되었다.

당시는 이제 막 전쟁이 발발한 때여서 군대 생활은 평탄치 않았다. 할아버지는 특히 군 생활을 하면서 폭격을 맞은 이야기며, 마을이 전쟁을 겪었던 이야기들을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나 열여덟에 의용군으로 뽑혀 가서, 광나루 가서 폭격을 맞았어. 광나루 가서. 제트기가 4대가 오더니 삭 폭격하잖어. 그래서 이 머리를 쭉 짜겠지. 여기를. 그래 가지구서 그때는 뭐 의복도 없구. 뭐냐면 중의적삼 있었어. 아주 뭐 새까맣지. 연탄 공장 가서 자구, 학교 가서 자구 광나루까지 갔었는데, 저녁에 사람이 한 거기서 많이 죽었어. 아주, 그 제트기가 와서 폭격해 가지고 많이 죽구. 그날 저녁에 또 모여 가지고 가는데 비행기가 오더니 막 퍼붓는겨. 그냥 제트기가 아니구, B-29인가 뭐 막 퍼붓는데, 또 여기를 짜갰거든, 거기서 도망 왔어.”

임필수 할아버지는 전쟁이 나자 어쩔 수 없이 의용군에 뽑혀 끌려갔다. 그러나 쉼 없이 쏟아지는 폭격을 피하다가 머리를 두 번이나 다쳤지만 구사일생으로 살아서 도망쳤다고 한다. 그렇게 인민군들 틈에서 피난을 나와 집으로 간신히 돌아왔는데, 당시 구산동마을은 전쟁이 할퀴고 간 상처로 곳곳이 황폐화되어 있었다. 할아버지의 표현에 따르면, 마을의 모습은 한마디로 엉망진창이었으며, 인민군 자의대가 들어와서 현물세를 받는 등 전쟁 중의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 마을 사람들 중 의용군에 뽑혀 간 사람이 6명이었는데, 마을로 돌아와 보니 벌써 세 사람이나 먼저 돌아와 있었다. 그 중 할아버지가 가장 늦게 돌아온 사람이었다. 6명 중 할아버지를 포함한 4명이 모두 건강하게 살아 돌아와서 신기하기도 했다는데, 하지만 나머지 2명은 전쟁 중에 실종되어 지금까지 생사를 알 수 없다며 매우 안타까워했다.

의용군 갔다가 마을로 간신히 돌아온 것도 잠시, 할아버지는 더 큰 시련을 맞이했다. 의용군을 갔다가 다시 돌아왔다는 이유로 군인들에게 잡혀 가 곤혹을 치르게 된 것이다.

“마을이 엉망진창이지. 뭐, 인민군 자의대가 뭐 여기서, 저 뭐여 인민공화국 때 현물세 받는다구 쉬었어. 쉬다가 8월 14일날 또 의용군 갔었어, 의용군 도망갔다 왔다구 또 나 잡으러 와서 문상학교까지 갔는데. 그 서울서 온 사람이 대한청년협회 청년단장했댜. 그 사람이 하는 얘기가 여기 5개리에 유지들 다 모여 가지고 암살하려고 했었댜. 유지들, 옛날 유지들 다 모아 가지고 암살을 할라고 했었는데 그 사람이 못 모이게 했었어. 대한청년단 회장하다가 또 여기서 인민공화국 위원장인가 했었어. 살라구. 그래서 그 사람이 못 모이게 해서 하나두 안 모였지 뭐. 그래서 인저 8월 15일 되니께 아군이 막 올러 닥치는겨. 인저. 그래서 나두 그때 의용군 갔다 왔다구, 아군들한테 잽혀서 기마병, 기마경찰이지 선발대, 와 가지구 자의대에 갔더니, 너 이 새끼 의용군 갔다 왔다구. 나를 수갑을 채워 가지구, 말, 말 있잖어. 말에 매달구 50리를 갔었어. 죽인다구. 그라구서 인제 이용만 씨가 자의대 대장인데, 그러니께 풀려나 줘서 그 자리서 도망갔지. 도망가서 안 들키구. 그래서 인제 있다가 군대 갔지 또. 아군 갔지”

어쩔 수 없이 의용군에 끌려갔던 할아버지는 억울하게 고초를 겪다가, 다행히 자의대 대장으로 있던 이용만 씨의 도움으로 풀려났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대한민국 군대에 입소했다. 그때가 1951년 12월 5일로 1·4후퇴 전이었다.

할아버지는 28연대 소속으로 전방에 배치를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군인에 의해 보충대로 뽑혀 갔다. 그리고 목적도 알 수 없는 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시험은 한문으로 치렀으며, 면접도 봤다. 특히 군대 이야기 중 할아버지가 가장 재미있고도 의아해 한 이야기가 바로 헌병대 가기 전 시험 이야기였다.

“헌병대 시험이 한문이여. 그래서 나한테 묻대. 영어는 몇 자 한국에서 쓰느냐구, 그래 26자에 24자 쓴다고 하니께 그러냐구. 세계 농업국가 어디냐고 그래서 덴마크라고 했더니 아 이 새끼 합격, 합격해 가지고 거기서 졸업했지 뭐. 그라구서 대구육군본부 헌병대에 있다가 보병핵교 헌병대에 있다가. 뭐 전라남북도 다 댕기구, 경상남북도두 거의 다 댕겼슈. 그러다 9사단 가서 졸업했지.”

전쟁 속에서 겪은 임필수 할아버지의 파란만장한 군대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 났다. 늘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현명하게 대처했기에, 혼란스럽고 무서웠던 전쟁을 이겨내고 이렇게 그 이야기를 추억으로 꺼내 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정보제공]

  • •  임필수(남, 1932년생, 구곡리 구산동마을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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