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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관 짚신 할아버지 이야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01614
한자 名地官-
영어의미역 Story of Famous Geomancer Straw Sandals-Grandfather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계산리
집필자 박명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담|풍수담
주요 등장인물 짚신 할아버지|어머니|아들|원님
모티프 유형 공덕을 많이 쌓은 모자|명당의 차지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계산리에서 명지관 짚신 할아버지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채록/수집상황]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계산리 주민 최원서[남, 74]가 구연한 것을 채록하여 1997년 서원대학교 호서문화연구소에서 출간한 『진천의 민속』에 수록하였다.

[내용]

옛날에 한 부부가 살았는데 슬하에는 아들을 하나 두었다. 아버지는 나이가 많이 들어 죽게 되자 “나 죽거든 저 건너 짚신 할아버지에게 가서 묏자리를 잡아 달라고 해라!” 하는 유언을 남겼다. 옛날에는 아버지가 죽으면 3년 동안 채봉을 한다. 관에 옷을 입힌 아버지 시체를 넣고 산의 양지바른 곳에 가서 오막나무를 밑구멍에 놓고 괴목을 놓은 후, 그 위에 아버지 시체를 올려놓아 영을 얽어 둘러싸서 덮어 놓고, 그 옆에 들어가서 은신할 만한 움막을 치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버지 시체 옆에 가서 자식이 아버지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3년 동안 하는데, 3년을 머리도 안 감고 수염도 안 깎고 지키고 있는 것이었다.

아들이 3년이 지나 장사를 지내려고 짚신 할아버지에게 가서 “아버지가 짚신 할아버지에게 가서 묘를 잡아 달라고 유언을 해서 왔습니다.” 하니 짚신 할아버지는 짚신을 삼으며 쳐다보더니 아무 말 없이 “적덕(積德)을 해야지!” 하는 것이었다. 3년이 지나 묘를 써야 하는데 ‘적덕을 해야지’ 이 소리만 하고 다시는 두말 안 하고 짚신만 삼는 것이었다.

아들은 집에 돌아와 어머니에게 “어머니, 짚신 할아버지에게 갔더니 적덕을 해야 된다고 합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그럼 됐다. 돈 둬 뭐하니. 땅 둬 뭐하니. 네 아버지 좋은 명당자리에 가면 그것이 제일 좋은 거니까 노비랑 전답 다 팔아라. 팔아 가지고 남을 줘라.” 하였다. 아들이 이 사람 저 사람 노비랑 전답을 다 파니 아무것도 없게 되어, 잘 먹고 잘살던 집이 이제는 식구 먹을 것조차 없게 되었다. 아들이 “아, 이제 아무것도 없으니 어머니, 어떡해요?” 하고 근심하며 물으니 어머니가 하는 말이 “가봐, 짚신 할아버지한테!” 하였다.

아들이 짚신 할아버지한테 가서 “저 왔습니다.” 하니 짚신 할아버지는 아들을 흘깃 쳐다보고는 “더 해야 돼!” 하는 것이었다. 아들은 좁쌀 한 톨도 없어 굶어 죽을 판인데 더 하라는 말을 들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짚신 할아버지는 그저 잠자코 짚신만 삼고 있었다.

아들은 집에 가서 어머니한테 또 물어보았다. 어머니는 “할 수 없다. 당장 우리가 오늘 아침도 못 끓여 먹었는데 무엇으로 적덕을 더 할 수 있니. 당장 너하고 나하고 먹고 살아야 할 테니 외삼촌 집에 다녀와라. 외삼촌네 가서 이런 사실을 얘기하면 당장 오늘 저녁에라도 끓여 먹을 걸 줄 테니까 외삼촌네 가서 얘기해라.” 하였다.

아들이 한 오십 리쯤 떨어져 있는 외갓집에 가니 외삼촌 하는 말이 “너희 아버지 장례도 모시지 않았는데 어떻게 여길 다 왔느냐?” 하고 물었다. 그래서 아들은 사실 그대로 이야기하였다. 그러자 외삼촌은 “네 힘에 알맞게 쌀 다섯 말만 줄 테니 가지고 가거라. 자고 내일 갔으면 좋겠지만 어머니가 혼자 끓여 먹지도 못하고 앉았으니 오늘밤이라도 가야 한다!”고 하며 쌀 다섯 말을 건네주었다.

날이 저물어 깜깜한 밤에 아들이 쌀 다섯 말을 짊어지고 집으로 가는데, 한 반쯤 가니까 길옆 어떤 외딴집에서 비명 소리가 났다. 아들은 일단 그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에서는 한 여자가 어린애를 해산하고 끓여 먹을 것도 없고 입을 것도 없어 다 죽어가고 있었다. 아들은 이 모습을 보고는 짊어지고 온 쌀로 밥을 지어 그 산모를 구원했다.

산모의 이야기를 들으니까 집이 하도 가난해서 아이 아버지가 품을 팔러 나갔는데 한 달이 넘어도 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린애를 낳고 산모가 먹지도 못하고 있으니, 어린애도 죽고 산모도 죽고 둘 다 죽을 판이었다. 이러한 상황에 지나가던 이가 밥을 지어 먹였으니 산모는 그 고마움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산모의 사연을 다 들은 아들은 외삼촌에게서 받은 쌀을 모두 남겨 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새벽녘에 아들이 집에 들어가니 어머니는 “어떻게 된 게냐? 빈 몸으로 들어오다니!” 하며 크게 실망하였다. 아들이 “어머니, 외삼촌이 쌀 다섯 말을 주셨는데 나보다 더 곤궁한 사람이 있어 그 사람에게 주고 왔어요.” 하니 어머니 하는 말이 “너 그거 잘했다. 그게 활인공덕이다. 사람 둘을 살린 것이다!” 하며 칭찬하는 것이었다.

아들은 다시 짚신 할아버지한테 가보겠다며 집을 나섰다. 아들이 “저 왔습니다.” 하고 인사를 하니 짚신 할아버지가 “이제 묏자리를 잡아 줘야지!” 하며 가볍게 일어나더니 “요기다 쓰면 삼정승이 날 거다.” 하며 묏자리를 잡아 주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돈 있는 사람은 호화롭게 장사 지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초라하게 장사를 지냈다. 아들이 그럭저럭 동네 사람들을 모아 장사를 지내고 하관을 하려고 하는데, 그때 마침 원님의 행차가 지나갔다. 원님이 가다 보니 그 묏자리가 군사 천 명이 모여서 묘를 쓸 자리인데, 이렇게 사람 한두 서넛이 모여 초라하게 땅을 파고 장사를 지내는 것이었다.

원님은 “행차를 멈춰라!” 하고는 묏자리에 올라가서 “이 묏자리는 누가 어떻게 잡은 것이냐?” 하고 물었다. 자리가 하도 좋으니까 원님이 그걸 보고 올라간 것이었다. 아들은 “사실은 이러쿵저러쿵 짚신 할아버지가 잡아 주셔서 여기 장례를 모십니다.” 하고 아뢰었다. 원님이 다시 “그런데 왜 이렇게 사람이 없느냐! 네 이름이 뭐냐?” 하고 물으니 아들은 “성이 군가요, 이름이 천명이외다.” 하고 아뢰었다. 아들의 이름을 들은 원님은 ‘네 이름으로 군사 천 명을 당했다는 것이로구나!’ 생각하고는 아무 소리 안 하고 내려와서 행차를 돌려 짚신 할아버지한테로 쫓아갔다.

이렇게 아는 양반이 짚신만 삼고 앉았으니 어떻게 된 일인가 궁금하여 직접 찾아간 것이었다. 짚신 할아버지를 만난 원님은 “그 묏자리를 영감님이 잡아 준 겁니까?” 하고 물었다. “그거 내가 잡아 줬지. 그 묏자리 내가 잡아 줬어.” 하니 원님은 “그렇게 잘 아는 양반이 여기다 집을 짓고 짚신만 삼고 있습니까?” 하였다. 짚신 할아버지는 “그건 모르는 소리다. 내 팔자가 짚신만 삼아서 한 푼 두 푼 내 것만 먹고 살 팔자지. 내가 돈 벌려고 하는 사람은 아니다.” 하는 것이었다.

원님이 다시 “그러기에 좋은 집터를 잡지 여길 잡았어요?” 하고 물으니 짚신 할아버지는 “알지도 못하는 소리! 여기 집터가 원님이 왕림할 자리다!” 하는 것이었다. 그 앞에서 원님은 ‘내가 원님이다!’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짚신 할아버지는 역시 명지관이었던 것이다. 이후 한두 달이 지난 뒤 원님이 다시 그 짚신 할아버지를 찾아가니 짚신 할아버지도 사라지고 집도 사라져 집터의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모티프 분석]

「명지관 짚신 할아버지 이야기」의 주요 모티프는 ‘공덕을 많이 쌓은 모자’와 ‘명당의 차지’이다. 명당은 반드시 덕(德)과 선(善)을 쌓아야 차지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최고의 명풍수(名風水)를 초빙해서 명당을 잡는다 할지라도 그 땅을 쓸 사람이 생전에 악행을 많이 했으면 소용없는 허혈(虛穴)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예로부터 ‘명당은 주인이 따로 있다’고 한다. 「명지관 짚신 할아버지 이야기」는 공덕을 많이 쌓아야 명당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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