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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강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01457
한자 -江邊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민요와 무가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장월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창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신민요
형성시기 1934년연표보기
출현음 솔|라|도|레|미
기능구분 유희요
형식구분 독창|제창|유절 형식
박자구조 세마치
가창자/시연자 이환이[문백면 장월리]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장월리에서 맺힌 한을 물에 띄워 보내고픈 심정을 읊은 노래.

[개설]

「노들강변」은 일제강점기에 새로이 창작된 유희적 성격이 강한 신민요로서 2절로 되어 있다. ‘에헤요 봄버들도 못잊을까 하노라’라는 후렴구가 각 절의 끝에서 반복되며, 3절로 되어 있는 서울·경기 지역의 「노들강변」보다도 후렴구가 짧다. 즉 진천 지역의 「노들강변」은 서울·경기 지역의 것에 비하여 단순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리듬은 세마치이고 18장단이며, 형식은 2절로 된 유절 형식(有節形式)이다. 선율의 구성음은 ‘솔·라·도·레·미’로 된 5음 음계로 평조의 선법에 해당한다. 끝나는 음은 ‘도’이며, 사설의 내용과 달리 선율은 경쾌한 느낌을 준다. 곡이 더없이 흥겨울 뿐만 아니라, 가사 전체를 통해 유유하게 흐르는 달관한 듯한 무상감은 「노들강변」의 독특한 멋이라 하겠다.

[채록/수집상황]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장월리 어룡마을[어링이마을]의 주민 이환이[여, 64]가 부르는 노래를 채록하였다.

[구성 및 형식]

독창 및 제창으로 부르며, 2절로 된 유절 형식을 가지고 있다.

[내용]

노들강변 봄버들 홰홰 늘어진 가지에다가/ 무정세월 하늘에 치잉칭 맺어나볼까/ 에헤요 봄버들도 못잊을까 하노라// 노들강변 백사장 모래마다 밟은 자국/ 신구명산 만장봉에 메메치나 날아올까/ 에헤요 봄버들도 못잊을 일이로다.

[생활민속적 관련사항]

「노들강변」은 진천 지역에서 새로이 창작되어 오랫동안 해를 거듭할수록 민요화한 노래이다. 무용곡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경쾌하면서도 애조(哀調)를 띠고 있으며, 마음에 맺힌 한(恨)을 물에 띄워 보내려는 듯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노들강변」의 곡명은 서울특별시 동작구에 소재하는 노량진과 관련이 깊다. ‘노량’은 백로 로(鷺)에, 징검돌 량(梁)이다. 예전에 노량진에서 양화진까지는 버드나무가 많았으며, 특히 노량진에는 백로들이 많이 날아와 ‘노들’이라고 불렸다. 여기에 ‘강변’을 더해서 곡명으로 삼은 것이다. 현재의 노량진은 조선시대에 한양과 남쪽 지방을 잇는 중요한 나루터였다. 서민의 애환이 깃든 나루터였던 ‘노들강변’이 자연스럽게 민요의 소재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현황]

「노들강변」은 서울·경기 민요로서 진천은 물론 전문 민요 창자들에 의하여 불리고 있으며, 음악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

[의의와 평가]

「노들강변」의 내용이 유흥적이고 다소 비도덕적인 것은 일제강점기에 창작되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일제 치하에서 서민이 느끼는 허탈감이나 무기력에서 비롯된 이런 정서는 민요가 상품화되어 녹음된 레코드가 팔리면서 심화되었다. 이런 사정은 일제강점기에 많이 불리던 「노랫가락」이라든지 「창부 타령」 등의 유희적인 민요나 많은 수의 신민요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1934년 2월에 발표된 「노들강변」은 이러한 신민요 정착에 획기적인 역할을 한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 경기민요 가운데서도 친숙하게 널리 알려져 있는 「노들강변」은 국악 방송에서도 종종 들을 수 있으며, 현재는 우리나라 전통 민요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이는 창작곡이 전통 음악으로 변화하는 실증적 사례라고 하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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