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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01341
한자 靈水寺三聖閣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영구리 542[영구리길 60-125]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장현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찰 전각
양식 겹처마 맞배집
건립시기/일시 조선 후기
정면칸수 3칸
측면칸수 2칸
소재지 주소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영구리 542[영구리길 60-125]지도보기
소유자 영수사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영구리 영수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전각.

[개설]

삼성각(三聖閣)은 보통 사찰의 주불전 뒤편에 위치하는데 칠성(七星)·독성(獨聖)·산신(山神)을 함께 모신다. 하지만 삼성을 따로 모실 때에는 칠성각·독성각·산신각을 별도의 전각으로 구성한다. 칠성은 수명을 관장하는 북두칠성을 뜻하고, 독성은 나반존자(那畔尊者)를, 산신은 한국의 토속신인 산신령을 의미한다.

두타산 깊숙한 계곡에 위치한 영수사(靈水寺)의 창건에 관한 자세한 문헌은 없으나, 사찰에서 전해오는 중수기에 의하면 1624년(인조 2)에 벽암대사가 중건, 1831년(순조 30)에 승려 묘익(妙益)이 중수하였으며, 이후 수차례의 중건을 거치다가 1983년 혜철화상의 중창에 의해 현재에 이르렀다고 한다.

[위치]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으로 가는 지방도에서 우측으로 2㎞ 정도 두타산(頭陀山) 쪽으로 오르면 영수사의 일주문이 나타난다. 영수사의 경내에 위치한 삼성각은 서향하고 있는 대웅전의 북동쪽 언덕 위에 있다.

[변천]

삼성각은 관음보전으로 사용되다가 1983년 지금의 자리로 옮기면서 삼성각이 되었다. 이건 시 발견된 상량문에 918년(태조 원년) 증통국사의 창건 기록과 300여 년 전 중건 기록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형태]

삼성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대웅전과 같이 서향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측면에 풍판이 달린 겹처마 맞배집이다. 석축 위에 자연석 기단을 축조하고 막돌 초석을 놓았으며 초석 위에는 민흘림이 있는 원기둥을 세워 지붕을 받치게 하였다. 전면 공포는 일출목이 있는 이익공 양식으로 익공에는 연봉[막 피려고 하는 연꽃의 봉오리]을 조각하였다. 전면 공포 위의 보머리에는 봉황을 조각해 끼웠으며, 각 기둥 간의 창방 위에는 연봉을 줄기와 함께 담아 놓은 바구니 모양의 화반을 두었다.

후면 각 칸의 창방 위에는 판대공 형태의 간략한 화반을 두어 기둥 사이를 보완하였다. 내부의 보이는 전면과 후면을 다르게 처리하였는데, 전면은 연봉으로 장식하였고 후면은 장식 없이 단순하게 처리하였다. 후면의 공포는 출목 없는 익공식으로 처리하였으며, 삼성각의 지붕가구는 종보 위에 동자대공을 놓고 종도리를 받치도록 한 5량가 형식이다. 창호는 살대를 45도 방향으로 엮은 빗살문으로 각각 2분합문이다.

[현황]

영수사 삼성각 내부에는 근래에 석고로 조성한 치성광여래좌상과 칠성탱, 독성탱, 산신탱이 봉안되어 있다. 이 가운데 칠성탱은 1904년 금호약효(錦湖若效) 스님이 조성한 것으로 원래는 온양의 용운암(龍雲庵)에 봉안되었던 것이다. 현재 영수사는 중심부에 대웅전이 서향으로 배치되어 있고 북측에 관음보전, 남측에 요사채를 두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집으로 내부에는 주불인 석가모니불과 함께 문수보살, 보현보살을 모셨다. 삼성각의 북측에는 높다란 괘불대를 설치하였고 최근에 괘불대 후면에 작은 석불을 모셨다.

[의의와 평가]

삼성각은 영수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여러 차례의 중건 및 중수를 거치면서 많이 변형되었지만, 지붕가구의 구성 및 치목 기법, 고색창연한 단청 등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건물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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