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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01272
한자 常山學敎
이칭/별칭 광명학교,문명학교
분야 문화·교육/교육
유형 기관 단체/학교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 381지도보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황경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립 보통학교
설립연도/일시 1905년 10월 28일연표보기
폐교연도/일시 1911년 9월 5일연표보기
설립자 이상직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에 있었던 교육 기관.

[교육목표]

상산학교는 교육을 통해 인재를 양성하여 당시 기울어져 가는 국운을 바로 잡고자 설립되었다.

[변천]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어 외교권이 일본에게 박탈되자 국권을 회복하는 길은 구미 선진 국가의 교육 방법을 도입하여 문명인을 양성하는 길밖에 없다고 판단한 이상직(李相稷)은 같은 해 10월 28일 고향인 충청북도 진천으로 내려와 사립 상산학교를 창설하였다. 이상직진천군 진천읍 읍내리 381번지에 소재한 자택 객실을 개조해 교실을 만들고, 사재를 들여 교육 시설을 마련한 다음 학생을 모집하고 교사를 초빙해 신학문 교육을 실시함으로써 충청북도 진천에 처음으로 교육의 씨앗을 뿌렸다.

이상직 교장과 남진우 선생이 교육을 담당하여 학생 수가 점차 증가함에 따라, 교실이 협소하여 향교의 명륜당으로 전전하며 재정난을 겪기도 하였다. 이후 교명을 ‘널리 학생을 모집해 신학문을 가르치다’라는 뜻이 담긴 ‘광명학교’ 또는 ‘문명학교’라 부른 것으로 짐작된다.

1909년에는 당시 이택응 진천군수로부터 향교 재산 연 수입 조 40여 석과 옛날 현아의 터를 학교 부지로 제공받아 교사를 신축하였다. 그러나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일제가 사립 학교를 탄압함에 따라 1911년 6월 3일 공립보통학교로 설립인가를 받아 같은 해 9월 5일 문명학교를 폐지하고, 10월 2일 진천공립보통학교를 설립하였다. 진천공립보통학교는 오늘날 상산초등학교의 전신이 되었다.

[교육활동]

상산학교는 대한제국 말 일본의 국권 침탈이 본격화되던 시기에 충청북도 진천에 신학문을 가르치는 근대 학교의 효시로서 민족의 격동기를 함께 겪으며 걸어왔다. 일제강점기에는 일제의 황국 식민 정책으로 인해 한민족의 민족 문화 말살 정치 및 철저한 식민지 통치시대를 겪어야 했으며, 해방 후에는 3년간의 미군정과 6·25전쟁 중에도 교육활동을 꾸준히 이어 왔고, 지금까지도 진천의 초등교육기관의 견인차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개교 당시 생도로는 이철해·주익환 등 4명이었으며, 교육 내용으로는 종전에 서당에서 가르치던 학문 외에 국어·산수·지리·역사·법학·체조·가창 등을 가르쳤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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