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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죽리 어은마을 연일정씨 세거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00608
한자 -魚隱-延日鄭氏世居地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 어은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강민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세거지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 어은마을에 있는 연일정씨 세거지.

[명칭유래]

문백면은 조선 말기 문방면(文方面) 지역으로 22개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백락면(白洛面)의 15개리, 덕문면(德文面)의 차상리, 청안군 서면의 소백암리를 병합하고 문방의 ‘문’자와 백락의 ‘백’자를 따서 문백면이라 하였다. 봉죽리는 백락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어은리(漁隱里)·봉암리(鳳岩里)·대상리(垈上里)·석보리(石洑里)·옥산리(玉山里) 일부를 병합하면서 이루어진 마을이다. 어은마을은 달리 은골이라고도 한다.

[형성 및 변천]

연일정씨를 대표할 만한 인물은 단연 송강(松江) 정철(鄭澈)[1536~1593]이다. 송강 정철과 진천은 직접적인 관련성은 없었으나 1665년(현종 6) 묘소를 경기도 고양에서 진천으로 이장하면서 연일정씨의 진천 세거가 시작되었다. 그해 손자 정포(鄭浦)는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문백면 봉죽리 환희산(歡喜山)[402.3m] 동쪽에 잡아 준 자리로 송강 정철의 묘소를 이장하고 사당과 신도비 등을 건립하였다.

한편 정철의 손자 문절공(文節公) 정양(鄭瀁)[1600~1668]이 1658년(효종 9) 진천현감으로 부임한 것이 인연이 되어 세거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정양은 강릉부사를 지낸 정종명(鄭宗溟)의 아들로 1618년(광해군 10) 진사시에 합격하여 여러 관직을 거친 뒤 1668년(현종 9) 장령에 올랐으나 같은 해 세상을 떠났다.

정철의 현손인 정치(鄭治)는 천거로 관직에 나아가 여러 고을의 수령을 지내다가 1659년(현종 즉위년) 예송 때 문백면 봉죽리 어은마을로 낙향하였다.

정철의 8대손 정재경(鄭在褧)[1781~1858]은 과거에 나아가지 않고 학문에만 정진하였다. 1825년(순조 25) 『상산지(常山誌)』를 편찬하였고, 1851년(철종 2) 김유신(金庾信)의 위패를 모신 죽계사(竹溪祠) 중건을 주도하였다.

[자연환경]

봉죽리 서쪽에 솟은 환희산국사봉이 남북으로 충청남도와 경계를 이루고, 남류하는 미호천(美湖川) 지류 주변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어은마을정송강사(鄭松江祠)에서 흐르는 지천을 따라 내려오면 북쪽으로 트인 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다. 주변은 산으로 둘러싸여 경작지가 넓은 편은 아니다. 청주 방면으로 이어지는 국도 17호선이 남북으로 뻗어 있다.

[현황]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 어은마을로 가는 길은 문백면 사무소에서 서북쪽 문백초등학교 쪽으로 접근하는 길과 진천읍 지암리에서 정송강사 이정표를 따라 남쪽으로 접근하는 두 갈래의 길이 있다. 2010년 2월 28일 현재 봉죽리 어은마을에는 총 23가구에 64명[남자 31명, 여자 33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어은마을 북서쪽 1㎞ 지점에 충청북도 기념물 제9호인 진천 정송강사가 있고, 앞쪽에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87호인 진천 정철 신도비, 남서쪽 능선에는 충청북도 기념물 제106호인 진천 정철 묘소가 있다. 진천 정송강사 경내에는 유물전시관이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5.03.23 한자 항목명 수정 연일正씨->연일 鄭씨로 수정
이용자 의견
정** 한자 魚隱마을 延日正氏 世居地에서 正은 鄭의오타입니다. 수정바랍니다.
  • 답변
  • 디지털진천문화대전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적하신 사항은 수정완료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부탁드립니다.
2015.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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