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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산신씨 사간공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00568
한자 平山申氏思簡公派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송두리
집필자 강민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세거지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송두리
성씨시조 신숭겸(申崇謙)

[정의]

신숭겸을 시조로 하고 신호를 파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성씨.

[연원]

평산신씨(平山申氏) 시조 신숭겸(申崇謙)은 전라도 곡성 사람으로 배현경(裵玄慶)·홍유(洪儒)·복지겸(卜智謙)과 더불어 왕건(王建)이 고려를 건국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신숭겸이 평산을 본관으로 삼은 까닭은 왕건과 동행한 평산에서 뛰어난 사냥 실력에 감탄한 왕건이 평산 지역을 본관으로 삼게 했기 때문이다.

왕건신숭겸을 개국원훈(開國元勳)으로 대접하였고, 대구 공산 동수전투에서 신숭겸이 자신을 위해 대신 죽자 춘천에 예장(禮葬)하도록 하고 벽상호기 태사 개국공 삼중대광 의경익대광위 이보지절 저정공신(壁上虎騎太師開國公三重大匡毅景翊戴匡衛怡輔底節底定功臣)에 추봉하였으며, 시호로 장절(壯節)을 내렸다.

파조인 신호(申虎)는 공양왕 때 지신사로 왕명의 출납을 맡아 보았다.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한 뒤 신호를 전리판서에 임명하였으나 불사(不仕)의 뜻을 밝히고 고향인 평산으로 돌아가 자손들에게 과거에 나가지 말고 좋은 벼슬을 취하지 말라고 하였다. 훗날 부음을 전해들은 태조가 슬퍼하며 호조판서를 추증하고 시호로 사간(思簡)을 내렸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평산신씨는 세를 떨쳐 상신(相臣) 8명, 대제학 2명, 공신 11명, 문과 급제자 186명을 배출하였다. 시조의 14세손에서 파계(派系)가 19개로 갈라졌으며, 그중 문희공파·정언공파·사간공파에서 많은 인물이 나왔다.

사간공파의 대표 인물로는 신호의 6세손 신점(申點)·신암(申黯) 형제가 있고, 신암의 후대에 신민일(申敏一)·신사철(申思喆) 등이 있다. 근세 인물로는 독립운동가로 국회의장을 지낸 신익희(申翼熙)가 있다.

[현황]

2000년 인구 조사 통계에 따르면 진천에 거주하는 평산신씨는 총 271가구 781명이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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