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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흥민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00558
한자 驪興閔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옥동리
집필자 강민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세거지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평산리
집성촌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평산리
입향시기/연도 고려 후기
성씨시조 민칭도

[정의]

민칭도를 시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성씨.

[연원]

여흥민씨(驪興閔氏)의 시조 민칭도(閔稱道)는 공자의 10제자 중 한 사람인 민손(閔損)의 후손으로, 고려 중엽에 사신으로 왔다가 귀화하여 여흥(驪興)에 정착하여 민씨의 시조가 되었다. 고려 인종 때 민칭도의 증손 민영모(閔令謨)는 문과에 급제하여 이부원외랑(吏部員外郞),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태자태사(太子太師)에 이르렀다. 그의 아들 민식(閔湜)은 형부상서(刑部尙書)를 지냈으며, 민공규(閔公珪)는 판병부사(判兵部事)와 태자소보(太子小保)에 올라 가세를 크게 일으켰다. 고려 후기 충숙왕 때 인물인 문인공(文仁公) 민귀(閔貴)와, 대제학을 지낸 문순공(文順公) 민적(閔頔)으로 양분되어 있다.

[입향경위]

진천군에 입향한 시기와 인물은 정확하지 않지만, 주로 민적의 후손들이 세거(世居)하였다. 진천군 문백면 평산리 평사마을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현황]

『상산지(常山誌)』에는 충신으로 절충장군에 추증된 민진동(閔鎭東)이, 학행에 민태중(閔泰重)이 보인다. 고려 충숙왕(忠肅王)조에 대제학(大提學) 벼슬을 한 민적의 후손이 이곳 평사에 내주(來住)한 이래, 1642년(인조 20) 사마(司馬) 벼슬에 합격한 민태중이 관로(官路)에 나가지 않고 고향인 이곳에 머물렀다.

민태중은 평사강상(平沙江上)에 낙진당(樂眞堂)과 영백정을 짓고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힘쓰면서 평생을 지내왔는데,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에게 수학하였다 한다. 송시열은 이곳에 자주 놀러 왔다고 전하며, 그 때 송시열이 마을 이름을 평사로 지어주었다 한다. 2000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진천군 관내에 거주하는 여흥민씨는 101가구 293명으로 나타났다. 현재 평사마을에 20여 가구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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