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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 교성리 유적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00519
한자 鎭川校成里遺蹟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교성리 26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박중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분
양식 횡구식 석곽묘|수혈식 석곽묘|석실묘
건립시기/연도 삼국시대
소재지 주소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교성리 26 지도보기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교성리에 있는 삼국~조선시대 유적.

[개설]

교성리 유적에서는 삼국시대·고려시대·조선시대의 유구가 발굴되었다. 고분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석축묘 25기는 삼국시대 중 신라와 관련된 것이고, 토광묘 1기는 고려시대, 토광묘 5기는 조선시대에 속한다. 삼국시대 유구는 교성리 유적 발굴의 계기가 되었고, 실제 발굴을 통해서도 가장 많은 유구가 확인되었다.

[건립경위]

삼국시대 25기의 유구 중 24기는 석곽묘[돌덧널무덤]이고, 1기는 석실묘[돌방무덤]였다. 24기의 석곽묘 가운데 구조의 판별이 가능한 11기 중 10기는 횡구식[앞트기식]이고, 1기는 수혈식[구덩식]이었다. 이상의 세 종류 유구는 별다른 시간 차이 없이 비슷한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생각된다. 수혈식을 제외한 대부분의 석축묘는 할석으로 축조되었다.

석곽의 최하부는 주로 가로쌓기를 하였고, 그 위로는 가로쌓기와 세로쌓기를 혼합하였지만, 가로쌓기를 위주로 하였다. 석곽의 장축은 대체로 등고선과 직교하도록 결정되었다. 이에 따라 횡구부는 석곽벽 중 가장 고도가 낮은 경사면 아래쪽에 마련되었다. 부장품이 놓인 방식은 다양하게 나타났다. 그렇지만 안쪽 단벽에 놓는 방식이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는 양쪽 장벽에 놓는 방식이 선호되었다.

[형태]

유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토기류는 회청색 경질로서 절대 다수는 유개고배[뚜껑있는 굽다리접시]이다. 이외에 대부장경호[받침 달린 목 긴 항아리]·대부완[굽접시]·뚜껑 등이 출토되었다 유개고배는 단각고배[짧은 굽다리접시]로서 2단투창고배·1단투창고배·무투창고배가 모두 출토되었는데 이중에서 무투창고배가 가장 많았다. 대부장경호는 대부분 구연이 한 번 더 꺾여 벌어진 부가구연장경호[입술부분이 ㄴ 처럼 꺾인 목 긴 항아리]이다. 뚜껑은 안턱식도 있기는 했지만 바깥턱이 있고 환형 손잡이가 달린 유형이 주류를 이룬다.

한편 철기류는 수량이 매우 적고 도자와 낫·환두도[둥근 고리칼] 조각 등으로 종류가 제한되었다. 요컨대, 교성리 유적은 중부 내륙 지역인 미호천 유적 일대에서 확인된 큰 규모의 석곽묘 유적으로서 유구와 유물들로 볼 때 전형적인 신라 후기의 특징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교성리 유적은 6세기 후반 진천 지역이 신라에 편입된 직후 거주하게 된 귀족계층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위치]

교성리 유적은 교성리 원동마을과 미력마을이 갈라지는 표지판에서 500m 정도 못 미친 곳의 오른쪽에 형성되어 있는 좁고 긴 골짜기에 해당한다. 현재 공사가 중단된 부지와 폐가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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