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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00511
한자 申大龜墓所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능묘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용덕리 용진마을 344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인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묘소
양식 원형 봉분의 부부 합장묘
건립시기/일시 묘소[1806]|묘비[1892]연표보기연표보기
관련인물 신대구(申大龜)[1745~1806]|함안윤씨(咸安尹氏)
소재지 주소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용덕리 용진마을 344 지도보기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용덕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신대구의 묘.

[개설]

신대구(申大龜)[1745~1806]는 본관이 평산(平山)이며, 자는 자원(子元), 호는 한수재(寒秀齋)이다. 아버지는 증사복시정(贈司僕寺正) 신건(申睷)이며, 어머니는 순흥안씨(順興安氏)로 동몽교관(童蒙敎官) 안중겸(安重謙)의 딸이다. 1777년(정조 1) 증광시(增廣試)에 병과로 급제, 가주서(假注書)가 되어 여러 차례 왕의 부름을 받고 학문에 대하여 질문을 받았는데 답변에 막힘이 없었다고 한다.

태상시주부(太常寺主簿)를 거쳐 종부시(宗簿寺)로 옮겼다가 예조좌랑이 되었고, 1787년(정조 11)에는 「황극탕평책(皇極蕩平策)」을 올려 치국의 도리를 건의하였다. 그 뒤 경모궁령(景慕宮令)·사헌부지평·사헌부장령·사간원정언·사간원헌납을 거쳐 병조좌랑·종부시정(宗簿寺正) 등을 역임한 뒤 양근군수·삭녕군수를 지냈다. 지방의 수령이 되어서는 구폐를 일소하고 애민하는 정치를 펴서 백성들에게서 칭송을 들었다. 1806년(순조 6) 병조참의에 올랐고, 예조참판에 추증되었다. 저서로 『한수재집(寒秀齋集)』이 있다.

[위치]

신대구 묘진천군 백곡면 용덕리 용진마을 앞 양백천 건너 평산신씨 선산에 있다.

[변천]

묘소는 1806년(순조 6), 묘비는 1892년(고종 29)에 세워졌다.

[형태]

묘소는 원형 봉분의 부부 합장묘로 앞에는 상석과 묘비, 향로석, 상석, 혼유석을 갖추고 있다. 묘비는 봉분의 전면 우측에 10m 정도 떨어져 있으며, 방형 대석 위에 높이 1.38m, 너비 0.54m, 두께 0.23m의 비신(碑身)을 세우고 가첨석[지붕돌]을 얹었다.

[금석문]

비신은 사면비로 비문은 형조판서 신정희가 썼는데, 앞면에 ‘증 가선대부 예조참판 겸동지경연 의금부사 홍문관제학 동지춘추관 성균관사 오위도총부부총관 행통정대부 병조참의 신대구지묘 증 정부인 함안윤씨 부좌(贈嘉善大夫禮曹參判兼同知經筵義禁府事弘文館提學同知春秋館成均館事五衛都摠府副摠官行通政大夫兵曹參議申大龜之墓 贈貞夫人咸安尹氏祔左)’라고 새겼다.

[현황]

신대구 묘는 용덕리 용진마을 앞 양백천 건너 낮은 구릉상에 위치하고 있으며, 봉분이 훼손됨 없이 관리가 잘되고 있다. 묘소 오른쪽 하단 낮은 구릉은 개간하여 밭으로 사용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 중기 이후 세거한 진천의 대표적 성씨인 평산신씨 인물로, 조선 후기 역대 무관을 배출한 가문에 대한 지역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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