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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00467
한자 永濟院址
이칭/별칭 영주원(永酒院) 터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터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오갑리 500-1
시대 고려/고려,조선/조선
집필자 양기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원 터
원건물 건립시기/일시 고려시대
소재지 주소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오갑리 500-1 지도보기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오갑리에 있는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 원 터.

[변천]

원(院)은 고려·조선시대에 공무를 보는 관리가 묵을 수 있도록 역과 역 사이에 설치했던 공공 여관이다. 영제원은 고려·조선시대 진천현 소속의 원이었다. 조선 전기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진천현 역원조에는 영제원(永濟院)진천현 동쪽 14리에 있다고 하였다. 이곳은 지금의 오갑리 원터마을에 해당한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 진천현 방리조에는 산정면(山井面) 내의 영주원리(永酒院里)로 표기되어 있으며, 그 위치와 호구에 대해서도 진천군에서 15리에 있으며 편호 46호에 남자 171명, 여자 196명이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되어 있다. 이곳은 현재의 오갑리 영주원마을에 해당하는데, 조선 후기에 새로 교통로가 신설되면서 원을 이전한 것으로 추정된다. 원 제도는 임진왜란 이후 점차 쇠퇴하게 되는데, 영제원 역시 점차 쇠퇴하여 여인숙이나 주막 등으로 변모하게 되면서 영주원으로 부르게 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위치]

관련 유적과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진천군 초평면 오갑리에는 두 개의 원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영제원은 영주원마을 서남쪽 약 600m 정도의 원터마을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영주원은 오갑리에서 북쪽으로 200m 떨어진 덕산-초평 간 지방도 513호선 바로 서쪽 아래 논으로 경작되는 곳으로 보고 있다. 마을 사람들에 따르면, 이곳은 경지정리 전에 밭으로 경작되던 곳으로 지대가 현재보다 높았고, 경지정리 과정에서 많은 기와편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의의와 평가]

영제원 터광혜원면에 있는 동주원 터와 함께 충청북도 진천 지역 역원 제도의 모습과 변화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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